가랑비, 가랑
우리 국어에는 비와 관련된 단어가 유난히 많다.
가랑비, 가을비, 궂은비, 꿀비, 눈비, 는개, 단비, 목비, 못비, 보슬비, 줄비 등 40여 단어를 헤아리니 가히 우리 민족은 비에 관심이 많았던 민족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이들 비 이름은 대체로 그 모양, 상태, 역할, 시기 등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명명의 관점이 분명하니 그 이름의 유래도 쉽게 드러난다. 빗줄기가 실(絲)과 같아서 실비, 오랫동안 끄느름하게 내린다고 해서 궂은비, 필요할 때 알맞게 온다고 해서 단비, 이슬과 같다고 해서 이슬비, 안개와 같다고 해서 안개비이다.
그러면 가랑비는 어떤 비일까? 가늘게 내리는 비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유래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가랑비의 15세기 어형을 잘 분석해 보고 사용 예를 찬찬히 살펴보면 가랑비의 명명의 근거와 그 유래도 어렵지 않게 밝혀진다.
가랑비는 15세기의 월인석보(月印釋譜)에 로 나온다. 이것은 가랑과 비(雨)로 분석된다. 비(雨)가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유성음화된 사실을 반영한 표기이다. 이에 따라 가랑비의 비가 우(雨)라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진 셈이다. 문제는 선행요소 의 정체이다. 혹자는 지금의 가루(粉)이 15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가루와 같은 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가루(粉)와 관련시킬 수 있는 비에는 가랑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슬비, 이슬비 등과 같은 여타의 가느다란 비도 있기 때문이다. 또 가를 가랑(分)의 어간 로 간주해 가랑비를 갈라진 비로 해석하기도 하나 이 또한 믿을 수 없다. 비 이름에 가랑(分)을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랑비를 가랑(分)과 연결시켜 이해한 것은 실제와 관계가 있는 가랑머리(두 가랑이로 땋은 머리), 가랑비녀(머리에서 나란히 두 가랑이가 진 비녀), 가랑이(원몸의 끝이 갈라져 나란히 벌어진 부분) 등의 가랑에 유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가랑은 안개(霧)의 뜻이다. 두시언해(杜詩諺解)의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看)에 나오는 가랑이 바로 무(霧)의 그것이다. 두시언해 초간본 속의 무는 중간본에는 안개로 바뀌어 나온다. 이로써 가랑비가 안개비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리고 모양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가랑이 안개비라는 사실은 지금 가랑비를 안개비라 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15세기의 가랑은 17세기의 석어유해(譯語類解)에 로 변하여 나온다. 의 가랑은 `가`에 접미사 ‘-앙’이 결합된 어형으로 파악된다. 이 는 18세기 이후 가랑비로 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랑비’에 대한 엉뚱한 어원 설이 나오게 된 것은, 그 어형이 많이 달라졌고 또 무(霧)의 가랑이라는 단어가 안개라는 단어에 밀려나 일찍 사라졌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가르치다, 갈다, 치다
우리말 가르치다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 가르치다의 중세어는 그르치다 인데 여기서의 `그르`는 가루를 뜻하는 말인 `글-그르‘와 맥을 함께 한다고 풀이한다.
가루를 만드는 이치 그대로 문질러서 갈면 물건을 마음에 맞게 다듬을 수 있는 갈(칼의 옛말)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면 열매가 맺게 되고 사람을 갈면 미욱함을 슬기로움으로 갈게 할 수 있기도 하다. 갈다라는 중세어는 말하다-이르다는 뜻도 지니고 있었다. 남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마음 밭을 갈고자 함이었음을 이갈다 라는 말은 말해 준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뜻을 갖는 갈-그르에 치다가 붙어서 이뤄진 말이 오늘날까지 쓰여 내려오는 가르치다 이다. 훈몽자회에 육(育)자를 칠 육, 영(養)자를 칠 양이라 했듯이 치다는 기르다는 뜻을 갖는다. 오늘날 쓰이는 치다는 양치기, 소치는 아이 하는 식으로 동식물에 국한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부모 봉양한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도 쓰였다. 가르치다의 치다에는 그렇게 사람의 정신을 양육한다는 뜻이 깃들어 있다. 갈고, 치고하는 가르치다 이니 겹겹으로 깊은 덕육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자면 뜻글자인 한자의 가르칠 교(敎)자보다도 우리말 가르치다는 뜻이 더 깊다. 이 교(敎)자는 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줌과 애써 배움을 합친 회의문자이다. 그렇다 할 때 우리말 가르치다의 깊은 뜻에는 미치지 못함을 알겠다.
- 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가물치, 가물
물고기 중에 가물치가 있다. 이 중에 치는 물고기 이름을 나타내는 접미사임은 누구나 다 안다. 꽁치, 넙치, 준치, 멸치 등등 많다. 그런데 가물이란 무엇일까. 천자문을 배울 때,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한다. 물론 지금은 검을 현이라고도 한다. 가물은 오늘날의 검을에 해당한다. 옛날엔 검다를 감다라고 했다. 그래서 가물치는 감-+ -을 + -치로 구성되어 있지요. 결국 검은 고기란 뜻이다. 출처 : 우리말 어원
가시버시, 갓, 가시
사전을 찾아보면, 가시버시는 부부의 낮춤말이라고만 적혀 있다. 갓이나 가시는 우리 중세어에서 아내를 이름이었다. 표준말에 수록만 안됐다 뿐이지, 남도(南道)로 내려가면, 동물을 교미시킬 때에 ‘갓붙이다’라는 말을 쓰는데, ‘갓’이나 ‘가시’는 여자 쪽을 이르는 말이었다. 윗녁에서 ‘갓나이’ 하는 ‘갓’이 그것이며, 아랫녘에서 ‘가시내’ 하는 ‘갓’이 그것이다. 이젠 죽은 말로 돼 잃어버린 지 오래이지만 중세어에서의 ‘갓어리’는 ‘계집질’을 이름이었다.
처가(妻家)를 이르면서는 ‘가시집’이라고도 한다. 그와 같이, 장인(丈人)은 ‘가시아비’요, 장모(丈母)는 ‘가시어미’, 처조부(妻祖父)는 ‘가시할아비’요, 처조모(妻祖母)는 ‘가시할미’라고도 한다. 물론 장인·장모에 악부(岳父)·악모(岳母)나 처조부·처조모 같은 양반스런 말이 있는 터여서, 그저 푸대접받는 상놈의 말 신세이긴 했어도 말이다. 그랬으니, 가시버시도 어린애들이 놀려댈 때 쓰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버시’엔 특별한 뜻을 담기보다는 ‘가시’에 운(韻)을 맞추는 짝씨(疊語)로 썼던 것이나 아닐까 싶어지는데, 어떤 이는 그 옛날 불을 일으키는 기구로 쓰였던 ‘부시’쪽에 갖다 대면서, 그 부시가 ‘버시’나 ‘보시’ 따위로 말하여졌던 게 아니냐고, 그럴듯한 노란 해석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근거가 박약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시아버지를 버시아비, 시어머니를 버시어미라고도 이르고 있으니 버시에도 가시 비슷한 뜻이 있다는 것인지. 그는 그렇더라도, 가시는, 달리 또 극(棘)이라는 뜻을 갖는 말이 있어서, 생각 따라 재미가 있기도 하다. 아무리 남존여비(男尊女卑)에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세상이었다고는 해도, 가시 (女·妻)란 역시 가시(棘) 같은 존재였다는 것일까? 미국말 woman(우먼)이 남성(man)을 괴롭히는(woe) 존재하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과 견줄 때, 여기나 저기나 여성은 사내에게 있어서 가시였더라는 말인가.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가차없다
임시로 빌어 온 것을 "가차"라고 한다. 그러니 "가차없다"는 것은 임시로 빌어 올 게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도저히 사정을 봐줄 수 없다는 뜻이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간이 부었다
"간이 크다"는 말은 실제로 간이 크다는 것이 아니라, 추진력과 결단력이 놓아 배짱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배짱이 크다 못해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을 "간이 부었다"고 한다. 출처: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갈매기살, 가로막살
이문(利文)이 남기로는 먹는 장사가 으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늘어만 가는 것이 음식점이다. 새로 생겨난 음식점을 보면 쇠고기, 돼지고기를 파는 고깃집이 유난히 많다. 그것도 정육점을 끼고 있다. 정육점에서 신선한 고기를 직접 공급하겠다는 주인의 적극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고깃집에서는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는다. 불고기같이 양념한 것을 구워서 먹기도 하고, 생고기를 직접 불판 위에서 구워 먹기도 한다. 이때 고기는 손님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쇠고기를 먹을 것인가, 돼지고기를 먹을 것인가는 물론이고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어느 부위를 먹을 것인가까지 지정하여 주문할 수 있다. 그만큼 고깃집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부위는 아주 다양하다. 쇠고기는 머리, 목정, 업진, 등심, 꾸리, 사태, 우족, 안심, 채끝, 갈비, 양지머리, 홍두깨, 대접살, 도가니,우둔, 설낏, 꼬리 등의 17부위로 나누어진다.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은 등심, 사태, 안심, 갈비, 양지머리,도가니 등이다.
한편, 돼지고기는 머리, 어깨살, 앞다리, 등심, 갈비, 삼겹살, 방아살, 뒷다리 등의 8부위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은 갈비와 삼겹살이다.
갈매기살은 갈매기의 살? 그런데 얼마 전부터 고깃집에 가면 이들 여러 부위의 고기 말고도 갈매기살이라는 아주 특이한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갈매기살이라는 고기가 고깃집에 처음 등장하자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파는 고깃집에서 웬 갈매기와 같은 새고기를 파느냐고 수군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갈매기도 먹는 새냐고 묻기까지 하였다. 갈매기살은 바다에 날아 다니는 갈매기의 고기가 아니다. 이것은 돼지 내장의 한 부위, 즉 횡격막(橫膈膜)에 붙어 있는 고기이다. 횡격막은 포유류의 배와 가슴 사이에 있는 근육성의 막인데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면서 폐의 호흡 운동을 돕는다. 이 횡격막을 우리말로는 가로막이라고 한다.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을 가로막살 또는 안창고기라고 한다. 가로막살은 얇은 껍질로 뒤덮여 있는 근육질의 힘살이다. 그러니 다른 부위의 고기보다 질길 수밖에 없다. 이 고기를 기피한 이유를 알 만하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가로막살을 모아 껍질을 벗긴 뒤 팔기 시작하였다. 그 담백한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갑자기 인기가 올랐다. 그러자 가로막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고깃집이 이곳 저곳에 생겨났고 급기야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경기도 성남시 여수동 일대와 마포 등이 그 대표적인 지역이다. 그런데, 가로막살을 팔면서 이 고기를 가로막살이라고 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갈매기살이라고 불렀다.
가로막살이 갈매기살로 변해 이 갈매기살이라는 명칭은 가로막살이라는 본래의 명칭에서 변형되어 나온 것이다. 가로막살로부터 갈매기살까지의 변화 과정은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가로막살이 가로마기살로 변하였을 것이다. 제3음절 ‘막’에 접미사 ‘-이’가 붙은 것이다. 다음으로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가로마기살이 가로매기살로 변하였다. 이어서 가로매기살이 갈매기살로 변하였다. 가로매기가 갈매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단지 가로매기가 갈매기와 비슷한 음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매기의 어원을 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과 음이 비슷한 ‘갈매기’를 연상하여 그것과 연계해서 엉뚱하게 만들어낸 단어가 갈매기살인 것이다. 결국, 지금의 갈매기살은 가로막살이 가로마기살로 변하고 이어서 이것이 가로매기살로 변한 뒤에, 갈매기와의 연상 작용을 거쳐 변형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갈보, 화냥년, 빈대
갈보는 웃음을 팔고, 그러다가 돈에 매여 몸을 파는 계집을 말한다. 그렇건만, `화냥년`과는 조금 다르다. 화냥년이라 해서 몸 팔고 웃음 팔고 하지 않은 건 아니나, 갈보처럼 간판 내건 것이 아니고, 본디는 안해야 할 처지의 계집이 품행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된다는 쪽에 좀더 중점이 있기 때문이다. 화냥년은 서방질하는 계집이다. 슬쩍슬쩍 남의 눈을 기이면서 할 수도 있는 일이어서, 갈보처럼 내놓고 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갈보`라는 우리말은 기생(妓生)같은 말과 같이, 일본으로 수출된 말이기도 한데, 그들의 책에 더러 한자로 갈보(蝎甫)라 표기하고, 우리 사람들도 그와 같이 표기했던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상`을 외상(外上)으로 `마감`을 마감(磨勘)으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갈보`라는 토박이말의 취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갈보`란 말은 `가르보`라는 여자 배우 이름에서 온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그는 스웨덴 테생의 미국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이다. 1920~30년대 특히 그 미모로 해서 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간장을 녹여낸 여배우다. 그런데 그가 맡은 역 가운데는 갈보 같은 구실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슨무슨 영화에서의 가르보(갈보) 같은 년..." 어쩌고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 일반을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이 어원설 주창자의 해설이다.
그럴듯해 뵈지만 그렇지는 않다. 소리가 비슷해서 잠깐 피의자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레타 가르보는 1906년 태생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으로 한국학에 관심이 높았던 이마무라의 <조선풍속집>에 `갈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은 1914년에 나왔으니까 그레타 가르보가 여덟살 되던 해이다. 그러니 그 가르보로 해서 갈보라는 말이 생겼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왔을까. 바꾼다는 뜻의 `갈다`에 뚱뚱보, 털보, 울보... 할 때늬 그 뒷가지 `-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내를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바꾸기 잘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되겠기에 말이다. 울보는 울기를 잘하듯이 갈보는 갈기(바꾸기)를 잘한다. 그런 출발의 갈보 아니었을까 하는 말이다. 빈대의 속어가 갈보라는 것도 덧붙여 두고자 한다. 지금이야 빈대라는 물것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둥글납적하게 생긴 이 물것 성화에 잠 못 이룬 과거를 가진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 암수 가릴 것 없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이 빈대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피를 빤다는 점에서 `사람 갈보`와 공통된다. 갈보는 사내의 가슴에 빈대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정신의 피, 돈의 피를 빨아댄다. 빈대가 피를 빠는 것과 같다. 사람 갈보는 여자지만 빈대는 수놈까지도 그만 갈보로 되고 만다. 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갈치
우리에게 친숙한 생선인 칼치는 갈치가 바른 말이다. 강원. 경남. 전남. 충북 등지에서 방언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칼치는 그 모습이 칼처럼 생겼다 해서 한자로 도어(刀魚)라 불리기도 한다.
칼(刀)의 옛말 `갏`에서 `ㅎ`이 탈락한 뒤 물고기나 물고기 이름을 나타내는 접미사 `치(넙치.날치.꽁치.버들치)`가 붙어 만들어진 `갈치`가 표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중앙일보
감질나다
몹시 먹고 싶거나 갖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 생기는 걸 ‘감질나다’라고 하는데 그 말은 애태우는 모습이 마치 감질에 걸린 아이의 증세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감쪽같다
꾸민 일이나 고친 물건이 조금도 흠집이 없다는 뜻이다. 원래 곶감의 쪽을 먹는 것과 같이 날쌔게 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곶감의 쪽은 달고 맛이 있기 때문에 누가 와서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 봐 빨리 먹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흔적도 없이 다 먹어 치운다.
이런 뜻이 번져서 현대의 뜻처럼 일을 빨리 하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처리할 때 감쪽같다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값이 싸다, 비싸다
요즈음은 값이 싼 것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뜻으로, 값이 비싸다는 것은 가격이 기준보다 고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그러나 원래 싸다, 비싸다는 그러한 뜻이 아니었다.
값이 싸다는 말은 15세기문헌에서도 보이지만, 그 뜻은 값이 적당하다, 그 값에 해당한다, 그 값이 마땅하다는 뜻이었다. "싸다"는 말은 지금도 그러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너는 매를 맞아도 싸다"는 말을 쓰는데, 그 뜻은 "매를 맞아도 마땅하다"는 뜻 아니던가.
"비싸다"는 말은 "빚이 싸다"는 뜻이다. "빚이 싸다"가 "빚싸다"가 되었다가 오늘날 다시 "비싸다"로 되었는데, "채무를 지기 적당하다, 채무를 지기 마땅하다"는 뜻이다. 값을 고가로 지불하면 빚지기 적당할 것이다.
옛말에서는 "빚이 천원이 싸다" 등으로 사용되던 구문(構文)이었는데, 오늘날은 그 어순(語順)이 바뀌어서 "천원이 비싸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강강술래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우리 고유의 민속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 민속 놀이인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대 시대부터 있었다는 주장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녀자들을 동원해서 적을 속이기 위한 전술에서 비롯되었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러나 아직 학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주장된 강강술래의 대표적인 표기와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순신 장군 관련설에서 나온 `强羌水越來, 强羌遂月來, 江江水越來, 羌羌水越來,强强須來` 등이 있다. 대체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오니 경계를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둘째, 강강은 단순한 여음이거나 두드리는 악기의 의성어라는 주장이다.
셋째, 강은 전라도 방언으로 원(圓)을 뜻하며, 술래는 순라(巡邏)를 의미한다. 술래잡기를 하듯 원을 그리며 돈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수레바퀴처럼 감고 감으라는 뜻의 감감수레가 강강술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순신 장군 관련설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과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근거가 희박한 민간어원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강추위, 무더위
"강추위" 할 때 앞에 붙는 "강"은 물기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눈물도 없이 억지로 우는 걸 강울음이라고 하듯이 강추위도 마찬가지로 눈이나 비도 내리지 않고 바람만 매섭게 부는 몹시 추운 날씨를 강추위라고 한다. 눈이나 비가 오면 차라리 날이 포근하게 느껴질텐데 건조한 바람이 살갗에라도 닿으면 마치 살을 에이는 듯해 추위가 더 호되게 느껴진다.
"강"의 반대말이 "무"이다. "무"는 물기가 많다는 뜻이다. 여름철은 덥기도 하지만 장마 때문에 물기가 많아 습도가 높다. 습도가 높으면 땀이 쉽게 마르지 않아 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렇게 호되게 더울 땐 "무더위"라고 하는 것이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개그맨
이란 말은 전유성씨가 처음으로 `코메디언`이란 말을 다르게 표현하고자 사용한 말입니다. 또 최근에는 개그우먼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바른 영어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서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이를 굳이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영어로는 이 낱말을 쓰면 안 됩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개나리와 진달래의 "개-"와 "진-"이 접두사임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것이다. "개나리"는 "나리"에 접두사 "개-"가 붙은 것이고 "진달래"는 "달래"에 접두사 "진-"이 붙은 것이다. 나리꽃은 나리꽃인데, 그보다도 작고 좋지 않은 꽃이라고 해서 "나리"에 "개-"를 붙인 것이고, 달래꽃은 달래꽃인데 그보다는 더 좋은 꽃이라고 해서 "진-"을 붙인 것이다. 원래 "나리"꽃은 "백합"꽃을 일컫던 단어였다. "백합"꽃과 "개나리"꽃을 비교해 보자. "나리"꽃과 "달래"꽃을 아는 분은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이처럼 좋은 것에는 접두사 "진-"을, 좋지 않은 것에는 접두사 "개-"를 붙인 단어가 우리 국어에는 무척 많다.
이러한 것의 전형적인 것을 들어 보자. "개꽃"과 "참꽃"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대전과 군산을 잇는 경계선 아래가 고향이다. 즉 이 단어는 영남과 호남의 일부지방에서만 사용되는 방언이다. 그 북쪽이 고향인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하고 먹을 수 없는 철쭉꽃은 "개꽃"이라고 한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개떡같다
`매우 보잘 것 없다`의 뜻이다.
밀까루나 보릿가루 또는 노깨(밀까루를 곱게 치고 난 찌끼), 메밀 속껍질 등을 반죽하여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찐 떡을 `개떡`이라고 한다.
농촌 생활이 궁핍할 때에 흔히 해 먹던 떡으로, 맛이 거칠고 형편없었다. 이러한 개떡에 빗대어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나 일을 가리키는 말로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겨로 만든 떡이라고 해서 `겨떡`이라고 하던 것이 점차 `개떡`으로 변해서 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개밥에 도토리
개들은 밥그릇에 떨어진 도토리를 먹지 않는다. 밥만 먹기 때문에 결국 밥그릇에는 도토리만 남게 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도토리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축에 끼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개밥에 도토리"라고 한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개평
조선 중기부터 조선 말엽까지 쓰이던 상평통보의 준말이 `평`이었는데 `평`은 곧 돈을 의미했다. 개평은 도박판에서 나온 말로서 딴 돈 중에서 낱돈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낱 `개(個)`를 써서 `개평`이라 했다.
현재는 노름판에서 남이 딴 것을 거저 얻거나 또는 딴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얼마간 나눠주는 돈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거덜나다
조선시대 때 궁중의 말과 마굿간을 관리하던 사복시라는 관청이 있었다. 거덜은 사복시의 하인을 말하는데, 궁중에서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큰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사람들을 몰아세우다 보니 자연히 우쭐거리며 몸을 흔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잘난 체 거드름 피우는 것을 "거덜거리다"라고 하게 되었다.
또, 이렇게 "흔들흔들"한다는 뜻이 더욱 발전하여 살림이 흔들흔들 거리고 밑천을 홀랑 들어먹는 것을 "거덜나다"라고 하게 되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건달, 한량, 건달바, 할냥
북한 사전에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이라는 속담이 나온다. 이로 보면, ‘건달’은 쓸 돈이 없어 처량한 신세의 사람, ‘한량’은 흥청망청 쓸 돈은 있어 스스로는 신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건달’이건 ‘한량’이건 아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는 한심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건달’이라는 단어는 16세기의 “순천김씨언간”에 처음 보인다. 그런데 이 단어는 본래 불교 용어 ‘건달바’에서 출발하여 그 어형과 의미가 변한 것이다.
`건달바`는 수미산(須彌山)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하늘 나라의 음악을 책임진 신(神)이다. 이 ‘건달바’는 향내만 맡으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와 연주를 하고 산다. ‘건달바’가 노래와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신이라는 사실에서, 인도에서는 악사(樂士)나 배우까지 ‘건달바’라고 불렀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동안 ‘건달바’를 ‘광대’와 같은 뜻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건달바’는 ‘건달’로 어형이 단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상당히 변하였다. ‘하는 일 없이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또는 ‘난봉이나 부리고 다니는 불량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전자의 의미는 ‘건달바’가 노래나 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신이라는 점이 비유적으로 발전하여 파생된 의미라면, 후자의 의미는 ‘아무 실속도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확대된 의미이다.
한편, ‘한량’이라는 단어는 17세기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한량’ 또는 ‘할냥’으로 나온다. “양씨는 한량 권심의 안해니 영평 사람이라”(양씨는 한량 권심의 아내니 영평 사람이다), “김조이는 문화현 사람이니 할냥 안복의 쳬라”(김조이는 문화현 사람이니 한량 안복의 처다)의 ‘한량’과 ‘할냥’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 ‘한량’은 ‘閑良(한량)’으로 ‘무과에 급제하지 못한 무반(武班)’을 가리키던 말이다. 그런데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한량’ 및 ‘할냥’은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일정한 직사(職事) 없이 놀고먹는 양반 계층’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의미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량’은 ‘놀고먹는 양반’이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돈을 잘 쓰며 잘 노는 사람’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바뀌었다. 돈푼깨나 있는 양반들이 거들먹거리며 노는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져 또 한 차례의 의미 확대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이나 한글학회에서 펴낸 “큰사전”(1957)에도 ‘한량’에 그 본래의 의미인 ‘벼슬을 못한 무반’ 이라는 의미만 부여하고 있어 의미 변화의 사실이 잘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물론, 최근에 나온 사전에서는 그 본래의 의미를 포함하여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두 가지 의미까지 잘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큰사전”(1957)을 비롯하여 그 이후에 나온 사전에는 ‘한량’과 더불어 그 변화형인 ‘활량’이라는 단어도 나온다. ‘한량’이 동화 작용에 의해 ‘할량’으로 발음되자 다시 ‘활[矢]’과의 연상 작용으로 ‘활량’이 된 것이다. ‘할’을 통해 ‘활’을 연상한 것은, ‘할량’이 ‘무인(武人)’이고 이들이 ‘활’을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건달’이나 ‘한량’은 의미가 상당히 변한 단어들이며, 그것도 의미가 부정적인 쪽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할 일 많은 이 세상에 게으르고 무능한 ‘건달’, 그리고 돈 귀한 줄 모르고 흥청대는 ‘한량’은 모두 경계해야 할 인물이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걸신들리다
걸신은 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는 귀신이다. 빌어먹다 보니 걸신은 항상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음식만 봤다 하면 지나칠 정도로 탐을 내어 마구 먹어댄다고 한다.
"걸신들리다"라는 말은 빌어먹어 굶주린 귀신이 몸 안에 들어앉은 듯 배가 고파 음식에 탐을 내는 것을 말한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결혼하다, 혼인하다
오늘날 `결혼하다`와 `혼인하다`는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즉 marriage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결혼하다`와 `혼인하다`는 다른 뜻이었다. 즉 `혼인하다`는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였지만, `결혼하다`는 다른 뜻이다. `철수가 복동이와 결혼했다`란 말을 쓸 수 있었다. 이 문장의 의미는 `철수`의 자손과 `복동`의 자손이 `혼인`할 것을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남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결혼하다`가 오늘날 남녀 혼인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국어에 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예식장에 `결혼예식장`과 `혼인예식장`이란 명칭이 다 보인다.
`혼인하다`란 뜻은 `혼`은 `신부집`을 말하고 ``인`은 신랑집을 말한 데에 기인한다. 옛날에 혼인을 할 때에는 신랑이 `혼` 즉 신부집으로 먼저 가서 예식을 올린다. 즉 `장가`(장인의 집)를 간다. 그리고 사흘 뒤에 신부를 데리고 `인`(즉 신랑집)으로 온다. 즉 신부는 `시집`을 간다. 그래서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출처 : 우리말 어원
경(更)을 치다
`호된 꾸지람이나 나무람을 듣거나 벌을 받다`는 뜻이다. 옛날에 밤 시간을 알리는 한 방법으로 경(更)에는 북을 치고 점(點)에는 꽹과리를 쳐서 시간을 알렸다. 경은 하룻밤을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의 다섯으로 나누었다. 삼경은 지금으로 치면 밤 12시 전후이고, 이 때에는 북을 28번 치는데 이것을 인정(人定)이라 하며, 인정이 되면 도성의 사대문을 걸어 잠그고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켰다.
수상한 사람이 인정 이후에 돌아다니다 순라군에게 잡히면 순포막으로 끌려가서 여러 가지 심문을 받은 후 죄가 없으면 오경(五更) 파루(罷漏) 친 뒤에 풀려났다. 이런 사실에서 인정 이후 순포막에 끌려갔다가 파루 친 뒤까지 순포막에서 경을 치르고 나왔다는 데서 `경을 치다`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경을 치다
우리들 부모님들께서는 자식들이 무슨 잘못을 해서 서운한 마음이 들면 ‘이런, 경을 칠 녀석!’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 ‘경을 칠 녀석’은 단순히 ‘혼날 녀석’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경을 치다’는 가끔 조사 ‘-을’이 생략된 채로 쓰이기도 하여 ‘경칠 녀석!’이나 ‘경치게 혼났다’란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호된 꾸지람이나 나무람을 듣거나 벌을 받다’란 의미로 쓰였다.
‘경을 치다’는 분명히 ‘경’이란 목적어에 ‘치다’란 동사가 통합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과 ‘치다’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경’을 ‘치다’의 ‘치다’를 ‘매를 치다’의 ‘치다’로, ‘경’을 ‘매’의 한 가지로 알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모에게 사랑의 매를 맞고 자란 우리들 세대의 선입견이었다. 또 한 가지 그럴 듯한 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경’을 ‘경’(更)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옛날에 삼경쯤(12시쯤) 해서 북으로 인정(人定)을 치고 서울의 사대문을 닫아걸어,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켰는데, 이 통행금지를 위반한 사람은 붙잡혔다가, 오경 파루(罷漏)를 친 후에야 풀려났다고 한다. 그래서 경을 치른 후에 나왔다고 해서 ‘경을 치다’가 나왔다는 설이다. 그러니까 ‘경’은 ‘경’(更)이고 ‘치다’는 ‘종을 치다’의 ‘치다’라는 것이다. 마치 ‘야경 치다’와 같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실제로 1880년에 간행된 ‘한불자전’에는 ‘야경치다’란 항목이 나오고 한자로 ‘타야경’(打夜更)으로 해석한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경을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혼나는 일의 ‘경치다’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언뜻 보아 그럴 듯하지만, 단순한 민간어원설이다. ‘경을 치다’의 ‘경’은 한자로 ‘경’(黥)이고 ‘치다’는 ‘줄을 치다’의 ‘치다’이다. ‘경’(黥)은 ‘경형’(黥刑)의 준말이다. 이 ‘경형’은 중국에서 행하던 오형(五刑), 즉 다섯 가지 형벌 중의 하나다. ‘오형’은 궁형(宮刑, 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 대벽(大辟, 죄인의 목을 베던 형벌), 비형(剕刑, 죄인의 팔꿈치를 베던 형벌), 의형(劓刑, 죄인의 코를 베던 형벌), 그리고 경형(黥刑, 죄인의 이마나 팔뚝 등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오형 중에서 신체의 일부를 없애는 형벌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에 표시를 하는 것이라서, 가장 가벼운 형벌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형이 오형 중에서 가장 가벼운 형벌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에게는 가장 수치스런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형’을 ‘치다’라고 표현하였을까? ‘치다’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눈보라 치다, 천둥 치다, 물결 치다’의 ‘치다’, ‘죽 치다, 천막 치다’의 ‘치다’, ‘손뼉을 치다, 딱지를 치다, 족치다’의 ‘치다’, 그리고 ‘난을 치다, 줄을 치다’의 ‘치다’, 그리고 ‘담을 치다’의 ‘치다’, ‘새끼를 치다, 동물을 치다’의 ‘치다’ 등 매우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음이의어인데, ‘경을 치다’의 ‘치다’는 ‘사군자를 치다’ 등에 쓰이는 ‘치다’이다. 먹줄로 죄명을 써넣었으니까 당연히 ‘치다’란 동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치다’는 ‘족 치다’의 ‘치다’와 같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경치는 것’과 ‘족치는 것’이 ‘혼내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실제로 ‘족 치다’는 ‘발바닥을 몽둥이로 치다’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이 ‘치다’는 ‘때리다’의 ‘치다’이기 때문에, 그 뜻이 동일한 것이 아니다. 먹줄로 형벌의 명칭을 ‘새겨 넣는’ 것이 ‘먹줄’과 연관되기 때문에, ‘먹줄을 치다’에 유추되어 ‘경’도 ‘치다’가 된 것이다. ‘경을 치다’는 이렇게 가혹한 형벌이었지만, 일반인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사용함으로써, 그 뜻이 변화하였다. 그래서 ‘도둑’ 등을 잡아서 심한 형벌을 줄 때에는 대개 ‘경을 치다, 주리를 틀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에는 ‘나쁜 짓을 해서 혼내 주다’란 뜻으로 변화하였다. 결국 오형 중의 하나인 구체적인 형벌의 뜻은 사라지고 추상적인 의미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을 치다’는 ‘주리경을 치다’처럼 ‘주리를 틀다’의 ‘주리’(주릿대)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글이 쓰이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20세기 초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을 치다’나 ‘경치다’가 굳어진 한 어휘로서 우리나라에 정착한 것은 20세기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에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예문을 보이도록 한다.
내 손으로 하는 나무언만 마암 노코는 못한다. 산님자에게 들키면 여간한 경을 치우지 안는다. 그럼으로 우리는 황혼이면 산에 가서 도적나무를 하여지고 밤이 깁허서 도라온다. <탈출기(1925년)> 헌데 산림 간수한테 오기는 있어, 들키면 경을 치기는 매일반이래서 디리닥치는대루 철쭉 등걸이야 진달레 등걸이야 소나무 등걸이야 <쑥국새(1938년)> 다 씻기고나서 한숨을 내뽑으며 담배 한 대를 떡 피어 물엇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 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업스매 <소낙비> 장가 가시구려, 하고 소리를 뻑 질렀든 것이나 실상은 밤낮 남편에게 주리경을 치는 그 안해가 가엷은 생각이 들어 길래 <슬픈이야기> ‘어떤 조카가 죽었어 그래?’ ‘이것이 그렇게 죽도록 경을 치고두 바보가 돼서 이래요!’ <따라지> 궷 속에 너헛던 은가락지 한 쌍이 일허젓습니다. 저는 내가 경을 치나 보다 고 부억에 안젓노라니 아니나 다를까 맛올아버니 이 성이 나서 <무정(이광수)>
‘경을 치다’는 ‘삼경에 경을 친다’는 의미의 ‘경을 치다’의 뜻도 아니고 단순히 ‘문신을 하다’란 뜻도 아니다. ‘문신을 하다’와 ‘이마나 팔뚝에 글자를 새기다’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린이나 젊은이로서 ‘경칠 녀석’은 많은 것 같은데, 아무리 경을 쳐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 말을 듣고 알아들을 젊은이가 거의 없을 것이니 말이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4년 12월호
경치다(黥--)
경(黥)은 조선시대에 행햐졌던 형벌의 하나로 자자(刺字)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자란 고대 중국에서부터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로,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영조 때까지 행해졌다. `경을 친다`는 것은 곧 도둑이 관아에 끌려가서 `경`이란 형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호되게 꾸중을 듣거나 심한 벌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곁에 있다
어떤 사물의 `가까이` 또는 `옆`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곁`의 본디 형태는 `겯`이었는데 이는 겨드랑이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겨드랑이가 몸통과 팔 사이인 것처럼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을 `겯에 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겨드랑이만을 가리키던 말이 차차 `가까이, 이웃한`이란 뜻을 가진 곁으로 변한 것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고구마
고구마는 원래 중미 지역이 원산지로 일본 대마도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전해졌으며, 고구마란 이름도 그 때 함께 들어왔다.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고오꼬오이모`라고 했으며, 여기서 `고오꼬오`는 효행(孝行)의 일본말이다. 그리고 `이모`는 우리말의 `감자` 종류다. 대마도의 가난한 백성이 병약한 부모를 고구마로 봉양했다고 하는 전설에서 생겨난 이름이 `고오꼬오이모`이며 이 말이 바다 건너 우리 나라로 건너와서 지금의 `고구마`라는 말이 되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고독
여러분! 고독할 때가 많습니까?그래서 `고독`을 씹는다는 말을 곧잘 하지요?
이 `고독`은 물론 한자말입니다. `외로울 고, 홀로 독`이지요. 그러나 어느 때가 외로울 때고, 어느 때가 홀로 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고독한 사람은 부모를 여의고, 짝을 잃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아`니 `독신`이니 하는 말을 하지요. 정말로 `고아`와 `독신`을 겸하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가 진실로 고독한 때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고독하다`고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그리고 고독한 척도 하지 마십시오. 물론 오늘날에는 그 뜻이 바뀌었지만 말입니다.출처 : 우리말 어원
고리짝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쉽게 책과 접할 수 있어서 많은 동화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어린 시절에 그런 동화책 대신 우리의 전래 동화나 신화 전설 민담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나 할어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으례 이렇게 시작되곤 하였지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옛날 옛적 고리짝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그런데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도 아마 `옛날 옛적 고리짝에`의 `고리짝`의 뜻을 알고 말씀하신 분은 거의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냥 입에서 귀로 전래되어 와서 그냥 말씀하신 것일 뿐이지요. `고리짝`이 `고려 적`(고려 때)이 오랜 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그 뜻을 잃어버린 단어임을 아셨더라면,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말씀하셨겠지요.
옛날 이야기는 먼저, 지난 시기에 일어난 이야기임을 듣는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조선 시대에는 그 이전의 시대, 즉 `고려 시대`를 언급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고소설의 대부분이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에` 등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시작된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 `옛날 옛적 고리짝에`로 변화된 것이지요. 출처 : 우리말 어원
고린내
고린내는 중국 사람들이 고려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고려취(高麗臭)라 불렀던 데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악성 민간어원일 뿐 그 근거가 확실치 않다. 고린내는 실제로 어떤 물건이 곯아서 썩는 냄새라는 뜻이다.
`곯다`는 말은 겉보기는 멀쩡한데 속이 상해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몸이나 마음이 상해서 맥을 못출 때도 `곯다`는 표현을 쓰는데 `술에 곯았다` `일에 곯았다` 같은 표현이 그 예이다. 이처럼 `곯은 냄새`가 `곯은내`로 그것이 또다시 `고린내`로 변한 것이다.
현재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체취와 퀴퀴한 땀냄새가 한데 뒤섞여 나는 고약한 냄새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고뿔, 감기
지금은 감기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모두 `고뿔`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뿔`은 마치 `코`에 `뿔`이 난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것은 `코`에 `불`이 난 것입니다.
즉 `코`에 열이 난다는 뜻이지요. 이전엔 `곳블`이었습니다. 즉 `코`를 뜻하던 옛날말인 `고`에 `불`(되었던 것인데, 원순모음화가 되어 `곳불`이 되고 다시 `뒤의 `불`이 된소리로 되어(마치 `냇가`가 실제 발음으로는 `내까`가 되듯이) `고뿔`이 된 것입니다.그런데 최근에 와서 한자어인 `감기`가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감기`란 한자말은 `복덕방``사돈`, `사촌` 등처럼 우리 나라에서 만든 한자어입니다.혹시 일본어에서 온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일본어에서는 감기를 `풍사(바람 풍 사악할 사)`라고 하니깐요. 출처 : 우리말 어원
고수레
`들에서 음식을 먹거나 무당이 푸닥거리를 할 때에,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씩 떼어 던지며 외치는 소리`를 뜻한다. 숙종 때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었다는 『규원사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고시(高矢)씨가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함께 농사 짓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들에서 농사짓고 산에서 나물을 캐던 사람들이 고시 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밥을 먹을 때 `고시네`라고 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지금의 `고수레(←고시레←고시네)`라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고스톱
우리는 고스톱을 화투패를 치면서 고(go)하고 스톱(stop)하고 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카드 놀이만 있는 서양에는 없는 없는 노름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포켓몬스터`, `슈퍼마리오, `게임보이`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세계적인 게임 메이커 닌텐도(任天-하늘에 맡긴다-堂)의 메이지(明治)시대 출범 당시 주력제품은 화투(하나후다)와 트럼프였습니다.
화투는 원래 포르투갈 상인이 즐기던 `카르타`라는 카드놀이가 일본에서 하나후다(花札)로 변형됐고, 이것이 조선조 말 우리 땅에 흘러들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화투망국론이 나올 정도로 크고 작은 폐단도 많지만 명절 때마다 화투판이 벌어지지 않는 집이 드물고, 요새는 인터넷 화투까지 인기를 끄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선 화투를 칠 줄 아는 젊은이가 거의 없습니다. 화투게임의 패자(覇者)는 아무래도 고스톱. `설사`, `독박` 따위를 전혀 겁내지 않는 한국인의 `벤처정신`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까요. 게다가 우리는 정치상황에 맞춰 규칙을 자유자재로 바꿈으로써 종종 화투판을 풍자와 비판의 장(場)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서슬퍼렇던 5공화국 시절, 싹쓸이했을 때 남의 패를 아무 것이나 가져올 수 있는 `전두환 고스톱`, 싹쓸이하면 오히려 자기 패를 빼앗기는 `최규하 고스톱`이 유행했습니다. `고`를 했다가 `바가지`를 쓰더라도 취소하면 없던 일로 되는 `DJ 고스톱`도 잠깐 선을 보였습니다.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중앙일보
고자, 메꽃(고자화), 고쟈, 고자질
일부 국어사전을 보면 고자라는 올림말에 鼓子라는 한자가 달려 있다. 고자와 鼓子 - 이 북의 아들로 해석되는 한자에는 사내 구실을 못하는 뜻이 전혀 없다 싶어진다. 그또한 한자 갖다붙이기 좋아했던 시절의 취음 버릇이었다고 해야겠다. `메꽃`을 한자로 쓸 때는 `고자화(鼓子花)`라 한다. `나팔꽃`을 한자로 쓸 때는 `견우화(牽牛花)`라 하는데 `메꽃`은 그 `나팔꽃`보다 작고 열매는 잘 맺지 않는다고 하는 데서 `고자화(鼓子花)`의 `고자`와 `사람 고자`를 함께 생각했던 듯하기도 하다. <훈몽자회>에는 `고쟈宦` 따위 글자가 나와 중세어로 `고쟈`였던 것을 보여 주는데 광대라든지 풍류하는 사람을 이르면서도 `고자`라했음을 <계림유사>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고자`에는 세 가지 다른 어원설이 있다. 하나는 진나라 때 호해를 내세워서 시화의 대를 잇게 한 다음, 저 유명한 지록위마라는 고사까지 낳게 한 바 있던 환관 출신 전횐자인 조고(趙高)의 자식[高子]이라는 뜻으로 훼폄하여 쓰기 시작하다가, 그것이 그 대목의 불구자 일반에게 통용되어 버리게 된 것이다.
그 환관에 무슨 자식이 있었을까마는, 그 조고의 자식놈이라는 뜻을 곁들여서 은근히 욕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부회라고 할밖에는 없다. 다른 하나는 고자(庫子)에서 온 말일 거라는 생각이 있다.
庫子는 지난날 군아 같은 데서 물건을 맡아 지키는 거이 그 소임이었다. 그런데 궁중에서의 고자는 곧 환관이었고 그 환관은 또 불알 없는 사람이었으니 그래서 그만 庫子가 `고자`로 되어 버렸던 것일 거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이런 해석을 따를 때, `고자질`의 `고자`도 환관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환관들이 상감마마에게 곧잘 있는 말 없는 말 꾸며내는 고자질도 했기 때문이다. 즉, `고자질`은 `고자가 하는 짓`이란 뜻이었다는 주장이다.
하나 더 생각 볼 수 있겠다.
목수들이 기둥을 깎기 전에 먹줄의 금을 치게 되는데, 그때의 먹통 말이다. 중세어에서 `고즈(/ㅡ/는 아래아)` 또는 `먹고즈`라 했는데 옛날의 목숮들이 갖고 있는 걸 본 사람이라면 아겠지만 그것이 8자와 같이 되어 있는 꼴에서 남성의 불알을 연상할 수 있었음직하다. 그렇다면 고자란 말은 이 먹고자란 말과 관계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른다. 겉모습이야 비록 불알 같다고 해도 `먹통 같은 것`이 아나라 그 자체가 바로 먹통인 `먹고자`가 자식을 낳을 리 있겠는가.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고주망태, 향음주례
중국의 백낙천이라는 사람은 자기 집을 취호(醉戶)라 했고, 도연명은 그가 자던 바위를 취석(醉石)이라 했으며, 사현은 한 섬의 술을 마셨기에 취호(醉虎)라고 했습니다. 또, 체옹이라는 사람은 한 섬의 술을 마시고 길가에 쓰러져 있어 취룡(醉龍)이라 했고, 이백은 취해서 글을 써도 착오가 없어 취성(醉聖)이라 했다고 합니다. 설마 이 글 보고 일부러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아무데서나 주무시는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술 많이 마시는게 자랑이 아니걸랑요. 우리의 김홍도는 한 끼 양식이 없는데도 그림으로 모은 돈 800냥을 술값으로 썼다 하며, 진나라 주의라는 사람은 두 섬의 술을 마시고 보니, 같이 마시던 친구는 갈비뼈가 썩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진짠지 뻥인지 도대체 알 수는 없더군요. 그냥 책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끝없는 넘침의 세계를 가진 것이 술이라고들 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취한 상태" 를 고주망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고주와 망태의 합성어입니다.
옛말이 "고조"였던 "고주"는 "술을 거르거나 짜는 틀" 인데 오늘날에는 "술주자"라고 합니다. "망태"는 "망태기"의 준말로 "가는 새끼나 노로 엮어 만든 그릇"을 이르는 말입니다. 술주자 위에 술을 짜기 위해 올려 놓은 망태이기에 언제나 술에 저려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술을 많이 마시어 취한 상태인 고주망태란 말은 이에서 연유된 말입니다. 아무튼 술은 넘치기 쉬운 음료이기에 선대의 조상들은 절제로 가다듬어 제자리에 앉히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른바 관(冠) 혼(婚) 상(喪) 제(祭)에, 상견례(相見禮)와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덧붙여 예절의 기본을 육례(六禮)로 규정했던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향음주례란 성균관이나 전국의 향교에서 행하던 일종의 주도(酒道)예절 행사로, 여기서 빈주백배(賓主百拜)의 공경지심(恭敬之心), 손을 씻고 잔을 씻어 상대방에게 권하는 청결지심(淸潔之心), 일미동심(一味同心)의 공동체 의식, 적절한 양으로 끝낼 줄 아는 절제의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가르쳤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술마시고 죽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을 겁니다. 그것도 억지로 먹여서 말이죠. 정말 주도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고집(固執)
전국시대 조(趙)나라 때 조괄(趙括)은 명장이었던 아버지의 병서를 맹목적으로 읽은 인물입니다. 진(秦)나라가 쳐들어 오자 염파(廉頗) 대신 장수가 돼 전장에 나간 그는 임기응변을 모르고 병서의 가르침대로만 전쟁을 치르다 참패합니다. 이것은『사기(史記)』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의 고사입니다. 아교로 기러기발(雁足)을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처럼 고지식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앞뒤가 꽉 막힌 이런 고집불통을 우리말로는 벽창호라고 합니다. 원래 벽창우(碧昌牛)에서 나온 말로,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가 크고 억세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고집 센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은 동.서양에 차이가 없습니다.
벽창호는 물론, 황소고집이란 직설적 표현처럼 우리는 소를 고집의 상징으로 보지만 영어권에선 노새(mule)를 고집의 화신으로 꼽습니다. `노새처럼 완고한`(as stubborn as a mule)이니 `노새 같은`(mulish)이란 말은 고집이 센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독일사람들은 염소(bock)의 고집을 더 치는지 고집이 세다는 뜻으로 `bockig`란 형용사를 씁니다.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어 가면서 고집이 는다고 합니다. 정신적.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매사를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기억을 기준으로 판단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집이란 단어가 꼭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씨 고집`이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잔재주를 피우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긍정적 표현입니다. 물론 당사자가 최씨인 경우인며, 독일에서 박사만큼 사회적 대접을 받는 마이스터(장인)들도 자기 일에 대한 철저한 고집으로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습니다.출처 : 중앙일보 2002/01/31
고척동
안양천을 끼고 구로동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양천구 신정동과 인접한 곳이다. 남쪽으로는 개봉동과 경계를 이루며 최근 몇년사이 신흥주택단지로 변모하고 있다.
동명의 유래는 두가지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하나는 동네의 한 자연마을 고좌리 즉 높은 곳에 생긴 마을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동네는 경기도 부천, 안양, 강화사람들이 서울 사람들과 안양천을 경계로 생필품과 농산물을 교과하던 곳으로, 당시 계량기가 없어 교환측정이 곤란하자 긴 자로 재서 서로 교환 측정하던 것이 고척이라 칭한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고척동의 어원이 됐다는 고좌리 또는 고잘마을은 현재 고척1동 고척초등학교와 신안아파트 아래쪽 일대를 일컬었는데 고척동 전체지형중 지대가 가장 높다. 고잘마을 앞의 길은 개봉4거리에서 강서로와 연결되며, 80년대 초 이곳 주민들이 야금회사라고 불렀던 한국합금철회사와 우일화학 등의 군소공장이 이전하고 풍원여립, 한효아파트, 현대아파트, 우성아파트, 서울 가든아파트 등이 들어서 대단위 주거지역이 형성되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고추
조선 중기에 들어온 고추의 본래 이름은 고초(苦草)였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쓴 풀`이라고 하겠는데, 옛날 사람들은 고추의 매운맛을 `쓰다`고 표현했다. 반면에 `맵다`는 말은 고되고 독한 것을 나타낼 때 썼다.
`고초`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소리의 변화를 일으켜 `고추`가 되었다. 고추의 특성인 매운맛이 다른 사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고되고 독한 일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고추 같이 매운 시집 살이` `고추바람`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길쭉하고 뾰족한 그 모양에 착안하여 그와 비슷한 모양을 한 사물에도 고추라는 이름이나 별명을 지어 불렀다. 아들을 가리키는 `고추`, 끝이 뾰족한 `고추감`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곤죽
`엉망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곤죽은 곯아서 썩은 죽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다가 밥이 몹시 질거나 땅이 질척질척한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나아가 사람의 몸이 몹시 상하거나 늘어진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술을 곤죽이 되도록 퍼 마셨군`과 같이 쓰였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골탕먹다
`크게 곤란을 당하거나 손해를 입다`는 뜻이다. 골탕이란 원래 소의 머릿골과 등골을 맑은 장국에 넣어 끓여 익힌 맛있는 국물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골탕을 먹는 것은 맛있는 고기 국물을 먹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곯다`라는 말이 골탕과 음운이 비슷함에 따라 골탕이라는 말에 `곯다`라는 의미가 살아나고, 또 `먹다`라는 말에 `입다`, `당하다`의 의미가 살아나서 `골탕먹다`가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으로 남 모르는 큰 손해를 입게 되어 곤란을 겪는다`는뜻으로 쓰이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곰팡이, 곰탕, 곰
"곰팡이"의 뜻을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이 "곰팡이"는 가끔 "곰팡 나다" 처럼 "곰팡"으로도 사용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팡이 제로"라는 "곰팡이 제거제"가 나와서 "팡이"라고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팡이"라는 말은 그리 흔히 사용되는 단어는 아닙니다. "곰팡이"와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곰탕"입니다. 먹는 음식의 이름이 아니고요. 지금도 함경도 방언에서는 "곰팡이"를 "곰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곰"이란 단어를 아십니까?
"곰팡이"는 그 원래의 형태가 "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곰"이란 단어는 늘 "곰 피다, 곰이 피다" 등으로 쓰이었습니다. 그러면 "팡이"는 무엇일까요? "곰탕"이란 단어도 "곰탕 피다"처럼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예를 든다면 "장마에 곰탕 피다"처럼 쓰이었던 것이지요. 이때의 "탕"은 또 무엇일까요?
"곰"은 "곰팡이"란 뜻의 단어인데, "탕"은 그 어원을 알 수 없는 것이고, "팡이"는 "피다"의 어간 "피-"에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 "-앙이"가 붙은 것입니다.출처 : 우리말 이야기
곱살이 끼다
`남이 하는 일에 곁다리로 끼다`는 뜻이다. 노름을 할 때 판돈을 대는 것을 `살 댄다`고 한다. 여기서 `살`은 노름판에 걸어 놓은 목에 덧태워 놓는 돈이라는 뜻이다. 노름을 할 때 밑천이 짧거나 내키지 않아서 미처 끼어 들지 못하고 있다가, 패가 좋은 것이 나올 때에 살을 댄 데다 또 살을 대고 하는 경우가 있다. 살을 댔는데 거기다 또 살을 대니까 `곱살`이 된다. 그래서 정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하는 일에 껴 얹혀서 하는 것을 `곱살이 끼다`라고 하게 된 것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곶감에 얽힌 이야기는 무척 많습니다.
호랑이가 자기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알았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속담도 많지요. "곶감이 접 반이라도 입이 쓰다."(마음이 언짢아서 입맛이 쓸 때),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알뜰히 모아 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빼어 먹어 없앤다는 뜻), "곶감 죽을 먹고 엿 목판에 엎드러졌다."(연달아 좋은 수가 생겼다는 뜻)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왜 웃느냐고 핀잔 주는 말),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 등등.
이 "곶감"의 "감"은 물론 과일의 하나인 "감"이지요. 그리고 "곶"은 "곶다"의 어간 "곶-"입니다. "곶다"는 현대국어에서는 된소리가 되어 "꽂다"로 되었지요. 그래서 일부 방언에서는 "꽂감"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까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말합니다.출처 : 우리말 이야기
구두쇠
구두쇠는 구두에 쇠를 붙였다고 해서 나온 말인데, 돈이나 물건을 몹시 아끼는 사람을 "구두쇠"라고 한답니다.
또 다른 설이 있기도 합니다. "돌쇠", "먹쇠" 할 때처럼 "쇠"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구두쇠 하면 "굳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돈이나 재물에 대해 굳은 마음으로 인색하게 구는 사람을 뜻하게 되지요.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구레나룻
구레나룻은 구레와 나룻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구레`는 소나 말의 대가리에 씌우는 `굴레`의 옛말이고, `나룻`은 `수염`의 고유어이다. 그러므로 구렛나룻은 굴레처럼 난 수염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귀밑에서 턱까지 잇달아 난 수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구실, 구위실, 구의실
"구실을 삼다, 사람 구실을 못한다" 에서 쓰이는 두 가지의 "구실"은 같은 단어일까요, 서로 다른 단어일까요?
"구실을 삼다"의 "구실"은 "핑계의 밑천으로 삼다"는 뜻이고, "사람 구실을 못한다"의 "구실"은 "응당 하여야 할 일"을 뜻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한 번 사전을 찾아 보시지요.
"구실을 삼다"의 "구실"은 한자어입니다.즉 "구실(口實)"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구실을 못한다"의 "구실"은 한자어가 아닙니다.그렇다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의 "구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원래의 뜻을 아신다면, 아마 이해하시기 힘드실 것입니다. 원래 "구실"은 이전에는 "구위실", 또는 "구의실"로 쓰이었던 것입니다. 이 "구위실"은 그 뜻이 "공공(公共) 또는 관가(官家)의 일을 맡아 보는 직무"라는 뜻이었습니다. 한자를 보면 "관직"이란 뜻이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다시 "조세(租稅)의 총칭"으로도 변하였습니다. 아마도 옛날에는 관직으로서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세금"을 받아내는 것이었던 모양이지요? 가렴주구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던 것이 "직책"이란 뜻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러니까 "구위실"에서 "구의실"로, 그리고 이것이 다시 "구실"로 음운변화를 거치면서 그 뜻도 "관직"에서 "조세(세금)"로, 그리고 이것이 다시 "직책"이란 뜻으로 변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자를 배울 때만도 "공공기관(公共機關)"의 맨 첫 자인 "공(公)"을 "귀 공"이라고 배웠는데(지금은 "공 공"이라고 하더군요), 이때의 "귀"가 "귀하다"의 "귀"가 아니라, 바로 "관청"이란 뜻이었던 것을 안 것은 국어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나서의 일이었습니다.출처 : 우리말 이야기
군불을 때다
`군불`에서 `군`은 `필요 없는, 가외의`의 뜻을 가진 말이다. 옛날에는 온전히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만 불을 땠기 때문에 단순히 발을 덥히기 위해서 때는 불은 필요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군불`이란 곧 필요 없는 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방을 덥게 하려고 불을 때는 것을 가리킬 때 `군불을 땐다`고 말한다. `군`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말에는 `군것질, 군소리` 등이 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굴레/멍에
소에 코뚜레를 꿰어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동여맨 것은 굴레,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마소의 목에 가로 얹는 구부정한 나무가 멍에다. 따라서 굴레는 죽을 때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멍에는 일을 할 때만 쓰는 것이다. 이 둘을 비유적으로 쓸 때는 강약을 달리 써야 한다. 평생 벗을 수 없는 것, 즉 `노비의 자식`이라든가 `살인범의 아들` 등은 굴레에 속하는 반면, 벗으려면 벗을 수도 있는 것, 즉 `남편의 속박`이라든가 `가난` `고부간의 불화` 등은 멍에에 속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귀고리, 귀거리, 골희
요즈음은 여성들이 `귀`에 `고리`를 `걸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지요. 그래서 곧잘 `귀고리`를 `귀`에 `거는` 것으로 인식을 해서 `귀걸이` 또는 `귀거리`로 인식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귀고리`는 원래 `귀`에 거는 `고리`라는 뜻입니다. `귀`에 `거는` `골희`여서 `귀옛골희`였었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귀고리` 또는 `귀골희`가 되었다가 요즈음은 `귀고리`로 변했습니다. 최근에 정한 표준말에서도 `귀고리`로 결정되었습니다. 귀에 `거는` 것이 아니라 귀에 거는 `고리`라는 뜻입니다. 요즈음은 `귀고리`가 `고리`가 아닌 다른 모양들도 많더군요. 그래서 아마 `귀고리`를 `귀거리`로 이해하시는 것 같군요. 출처 : 우리말 어원
귀추(歸趨)가 주목되다
귀추(歸趨)는 사물이 돌아갈 바를 가리키는 말인데, 귀취(歸趣)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귀취`란 사람의 마음이 돌아가는 형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귀추가 주목된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가히 눈여겨볼 만하다는 뜻이다. 현재는 결판이 나지 않아 궁금한 어떤 사건이나 사람의 마음이 돌아가는 형편을 살필 때 흔히 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쓴느 우리말 사전
귓전으로 듣다
`귓전`은 귓바퀴의 가장자리를 가리키는 말로서, 소리를 귓구멍을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니라 귓가로 듣는다는 말인데, 귓바퀴는 본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관이 아니기에 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지금은 남의 말의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아무렇게나 건성건성 듣는 것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그 정도면 약과(藥果)
밀가루에 꿀과 기름을 섞어 지져서 과줄판에 박아 찍어낸 약과(藥果)는 제사에 쓰이는 다과이다. 그 맛이 달고 고소해서 누구나 즐겨 먹으며 그리 딱딱하지 않아서 노인들도 수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 정도면 약과`라는 표현은 어떤 일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거나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정도면 약과를 먹는 일처럼 수월하다`는 말이 줄어서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비슷한 말로는 `그 정도면 식은 죽먹기다`가 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근사하다, 걸작
본디 `근사(近似)하다`는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와 비슷한 것을 말했다. 이 비슷한 대상물은 좋고 아름답고 바람직한 추상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근사한 것에 값어치를 부여하게 되어서 그럴싸하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근사하다`는 말과 거의 같은 시기에 쓰이기 시작한 말에 `걸작`이 있다. 이 또한 `근사하다`는 말과 같은 발상법에서 출발한 말이었다. `걸작`이란 본디 아주 훙륭하게 잘된 작품을 이르던 것인데, 그것은 동시에 남의 눈에 띄고 또 그만큼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존재였던 데서, 남의 눈에 띄게 재미나게 구는 사람을 이르게까지 되어 버렸던 것 아닌가 싶다.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謹賀新年(근하신년)
우리 사회도 알고 보면 宇宙(우주)의 운행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運轉(운전)하고 있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變貌(변모)를 거듭한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 함께 바뀌는 것이 있게 된다.
지금은 달력이 홍보용으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선전을 위해 무료로 증 정하기도 하며 쉬이 구할 수도 있다. 이제는 흔하다 못해 전자달력까지 출현한 상태이지만 약 30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달력 한 권 갖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주위의 친척 중에 버젓한 대기업에 다니는 분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사야 했는데 그것도 6장 짜리는 힘들고 석 달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는 4장 짜리가 대부분이었다. 주로 영화배우들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이었다. 한 10여년 더 遡及(소급)하면 정말 달력이 귀했다. 자유당 시절에는 아예 달력을 나라에서 나눠주기도 했는데 12달이 한 장에 담긴 달력이었다. 그것도 대통령과 부통령의 사진이 좌우에 박혀있고 그 밑에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리승만’ ‘리기붕’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옛날 이야기다. 물론 그 때는 紀年도 檀紀(단기)로 표기했었다. 색 바랜 가족사진과 함께 시골 초가집 벽을 장식하는 유일한 예술품(?)이기도 했는데 1년 내내 붙어 있다보니 연말에 가면 파리 녀석이 실례도 하고 퇴색도 되어 날짜 구별도 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대체로 달력의 첫 장이나 年賀狀(연하장)에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謹賀新年.’ 그런데 이상하다? 이제는 한글로 적기도 하여 유치원생도 읽기는 읽는데 여전히 뜻은 알 수가 없어 곧잘 묻는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강 얼버무리지 말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자.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뜻이다. 줄여서 ‘賀正’이라고도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심정이야 東西古今에 다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서양 사람들도 같은 내용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지난 한 해 돌아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도 많았다. 우리 같은 서민들의 주름살은 또 얼마나 더 늘어났는가? 送舊迎新(송구영신·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도 물론 좋지만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서로 서로 축하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새해에는 정말이지 뜻했던 바가 속이 후련하도록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특히 독자 여러분의 댁내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謹賀新年, 萬事如意!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출처 : 동아일보, 2001/01/02
기(氣)가 막히다
글자 그대로 따진다면 신체의 원동력인 `기(氣)`가 막혀서 잠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이른다.
실제로 몹시 좋은 것이나 어처구니없는 것을 보았을 때, 또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쓰는 말이다. 흔히 `귀가 막히다`로 알고 있는데 `귀`가 아니라 운기를 나타내는 `기(氣)`가 맞는 말이다. 비양거릴 때에는 `깃구멍이 막히다`란 말도 쓰는데 이때도 역시 `귓구멍`이 아니라 `기(氣)`가 들락날락거리는 통로를 뜻하는 `깃구멍`으로 쓰인 것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기침, 깇다
감기가 심하게 들면 고통스럽지요. 저는 늘 감기 때문에 고생을 한답니다. 감기하고 같이 살지요. 그래서 제 처가 걱정을 태산같이 합니다. 제 처는 농담이지만, 저에게 이혼당할까 전전긍긍한다고 합니다. 제가 감기하고 혼인을 할까 보아서 하는 소리입니다. 감기가 혼인식은 안했지만, 꼭 저하고 동거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잠시도 저하고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까 하는 농담입니다. 금년에는 꼭 감기하고 별거를 해야 하겠습니다.
객적은 소리 그만하고 이제 "기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요. "기침"은 옛말 "깇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이 "깇다"란 단어는 "기침하다"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깇다"는 동족목적어(同族目的語)를 취하는 동사이지요. 즉 "울음을 울다, 잠을 자다, 꿈을 꾸다"처럼 "기침을 깇다"로 사용되던 것이었지요. 물론 "울음을 울다, 꿈을 꾸다, 잠을 자다"에서 "울음, 꿈, 잠" 없이 "울다, 꾸다, 자다" 등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깇다"도 목적어 없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기침"은 "깇다"의 어간 "깇-"에 명사형 접미사 "-으"나 "-아(아래 아)"가 붙어서 "기츰"이나 "기참(아래 아)"으로 사용되다가, 그 음이 변화하여 "기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츰을 깇다"로 사용되다가 17세기에서부터 "기참(아래 아)하(아래 아)다" 등으로 사용되어 오늘날과 같이 "기침하다"나 "기침을 하다" 등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사는 사라지고 명사만 남은 셈이지요. 출처 : 우리말 이야기
기합주다
학교나 군대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서 규율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를 가리켜 기가 흐트러졌다고 합니다. 기합은 그렇게 흐트러진 기를 모아 힘을 발휘하기 위해 정신과 힘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규율을 되찾게 할 목적으로 벌을 주는 것으로 그 뜻이 바뀌었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긴가민가 하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불분명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기연(其然)가 미연(未然)가`라는 원말이 줄어서 된 말이다. 한자의 뜻 그대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거나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이 말을 흔히 쓰게 된다. 한편, `기연(其然)가 미연(未然)가`를 줄여서 `기연미연(其然未然)`이라고도 한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김새다
밥을 할 때 김이 새어 버리면 뜸이 제대로 들지 않아 밥이 설익어 맛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밥을 할 때 김이 새 버리듯, 어떤 일이 잘못 틀어져 실망스러울 때 "김새다"라고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김치, 딤채, 김치무리
*시경의 저 가 문헌상 첫 표기/조선중종때 우리말 딤채 로 불러 "무 배추 캐어들여 김장하오리다.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 찌라. 독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가가) 짓고 짚 에 싸 깊이 묻고 " 농가월령가(1816) 시월조중 김치는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곡물이 주식이 된 이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곡 물은 대부분 전분으로 에너지원이 되지만 이것만을 먹을 수는 없다. 인 체는 생리적으로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의 섭취가 요구되기때문 이다.
채소는 곡물과 달리 저장성이 없어, 인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 거나 장(장), 초(초), 향신료 등과 섞어서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 였으니, 이것이 김치무리 이다. 김치의 문헌적 기원은 약 3천년전 중국의 시집인 시경(시경) 에 나온다. 밭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 를 깎아 저(저)를 담자. 이것을 조상에 바쳐 수(수)를 누리고 하늘 의 복을 받자 . 여기의 저(저) 가 김치무리이다.조선시대 중종때 벽온방(벽온방) 에 쉰 무 딤채국(저즙)을 집안사람이 다먹어라 는 말이 나온다. 비로소 저(저) 를 우리말로 딤채 라 부르는 것을 알수있다.
고려시대의 김치무리는 지금처럼 고춧가루나 젓갈, 육류를 쓰지않았다. 소금을 뿌린 채소에 초나 마늘, 생강 등 향신료만 섞어서 재워두니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와 채소자체가 소금물에 갈아앉는 침지( 침지)상태가 된다. 이를 보고 침채(침채) 라는 특유한 이름을 붙 이게 됐다. 침채 가 팀채 가 되고, 이것이 딤채 로 변한다음 구개음화하여 김채 가 되었으며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 김 치 가 되었다고 박갑수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는 풀이한다. 한복진. 춘천전문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1993/12/03
까불다
"키"에다 곡식을 올려 놓고 위아래로 열심히 흔드는 것을 "까부르다" 또는 "까불다"라고 하는데, 곡식에 섞여 있는 겨나 티 같은 것을 날려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조금 아는 거 가지고 떠벌리면서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까불다"라고 하지요. 왜냐하면, 아는 게 조금밖에 없으니까 키질을 하면 금방 날아가 없어져 버리거든요. 사람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까불이"라고 한답니다. 출처:[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깍쟁이
`인색하고 얄미운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깍쟁이는 깍정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깍정이는 원래 서울 청계천과 마포 등지의 조산(造山)에서 기거하며 구걸을 하거나, 무덤을 옮겨 장사지낼 때 방상시(方相氏) 같은 행동을 하던 무뢰배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다가 점차 그 뜻이 축소되어 이기적이고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깍정이패의 유래는 조선 건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에 경범자들에게 얼굴에 먹으로 죄명을 새긴 다음에 석방하였다. 그러다 보니 얼굴의 흉터 때문에 사회 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전과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살았다. 이들이 모여살던 곳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 근처였다. 지금은 복개공사를 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옛날에는 청계천에 흘러 들어온 모래와 흙이 많아 이것을 긁어 모아 산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든 산이라고 하여 `조산`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이들은 굴을 파고 함께 살았다. 이 토굴에 사는 땅꾼들은 서로 패거리를 지어서 큰 잔칫날이나 명절날 등에 이 곳 저 곳을 찾아다니며 거지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개중에는 돈을 모아 장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결같이 상여도가, 즉 장의사를 차렸다. 이렇듯 청계천 등지의 조산에 기거하면서 거지 생활을 하거나 장의사를 하면서 방상시같은 무뢰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일러 깍정이라 불렀다.
#방상시 - 옛날에 임금의 행차, 사신의 영접, 궁중의 행사 등에서 하던 일종의 연극에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말한다. 황금빛의 네 눈과 방울이 달린, 곰의 가죽을 씌운 큰 탈을 쓰고서 붉은 웃옷에 검은 치마를 입고 창과 방패를 들었다. 지금은 장례 행사에서 무덤 속에 있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깡패, 건깡깡이
해방 전에는 "깡패"라는 말이 없었다. 해방이 되면서 "사바사바"같은 말과 함께 생겨난 "깡패"였다. 그 "깡패"라는 말과 함께 "깡 부리다"라는 말도 고개를 들면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뜻으로 쓰이는가 했더니, 폭력이 난무하는 곳을 가리켜 "깡 바람이 부는……"이라는 표현을 한 신문도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에게 야릇한 문화가 하나 더 보태어졌다. 미국 사람들이 쓰고 버린 "깡통"을 가지고서, "깡통 문화"를 이룩해 낸 것이 그것이다. 시골로 가면 등잔도 만들었고, 도시 판잣집 마을로 오면 그것으로 지붕도 해 이었던 것인데, 그 깡통을 만든 고장에서는 일찍부터 폭력배를 "갱"(gang)이라 일러 왔었다. 그걸 일본 사람들은 "걍구"라 했고, 우리에게로 오면서, 깡통 문화에 업힌 탓일까. "깡"으로 되어 일반화해 버렸던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깡패"라 하면, "갱의 패거리"라는 뜻으로 시작되었던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한편으로 "깡패"의 어원을 "건깡깡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찍이 우리에게는 "건깡깡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무런 뜻도 재주도 없이 맨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이르면서 쓰던 말이다. 그 "건깡깡이"의 "깡"과 "패거리"의 "패"가 어울려 "깡패"로 된 것일 수도 있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깨가 쏟아지다
깨는 다른 곡물과는 달리 추수할 때 한 번 살짝 털기만 해도 우수수 잘 떨어진다. 이처럼 추수하기가 쉬운 까닭에 깨를 털 때마다 깨 쏟아지는 재미가 각별하다. 이 말은 흔히 오붓하고 아기자기하여 매우 재미가 있다는 말로 쓴다. 재미있는 일이나 신혼 초기 생활 등을 얘기할 때 깨가 쏟아진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꺼벙하다
이 말은 원래 꿩의 어린 새끼를 가리키는 `꺼병이`에서 나왔다. 꿩에서 `ㅜ`와 `ㅇ`이 줄고 `병아리`가 `병이`로 바뀌어 꺼병이가 된 것이다. 이 꺼병이는 암수 구별이 안 되는 데다 모양이 거칠고 못생겼을 뿐더러 행동이 굼뜨고 어리숙해서 보기에 불안하고 답답하다.
오늘날, 행동이나 생김새가 어리숙하고 터부룩한 사람을 꿩의 새끼에 빗대어 `꺼벙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런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을 표현할 때 `꺼병이`를 닮았다는 뜻에서 `꺼벙하다`고 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어벙하다`가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꼬드기다
연을 날릴 때 연줄을 잡아 젖혀 연이 높이 날도록 하는 기술을 "꼬드긴다"고 합니다. 연을 꼬드겨 높이 움직이도록 조종하는 것이 남의 마음을 부추겨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 "꼬드기다"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꼬마, 꼬마동이, 고마
어린이를 "꼬마"라고 하기는 역시 해방 후부터의 일 아닌가 한다. 그 전에는 들어 보지 못했던 말이다. 일제 시대에 나온 문세영(文世榮)의 「조선어사전」에는 나와 있지도 않거니와, 일제 시대부터 준비되어 1947년에 나온 한글학회의 「큰사전」에도 "어린이"의 뜻으로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꼬마동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키가 작은 사람"이다. "꼬맹이"라고도 하고, "당꼬마"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난쟁이"이다. 어린이는 키가 작다고 해서 꼬마라고 이르기 시작한 건지 모르지만, 꼬마라는 말의 본디를 캐보면서 생각하자니, 우리집 꼬마에겐 "꼬마"라 말하기가 싫어진다는 마음이다.
이 "꼬마"라는 말은 "어린이"를 두고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꼬마 전등", "꼬마 자동차", "꼬마 운동장"… 하는 식으로, 코큰이 쪽의 말의 "미니"에 갈음되어 쓰이는가 했더니, 나중에는 영화 제명에까지 등장, "꼬마 신랑"에 "꼬마 사장" 같은 것도 나온 바 있다.
동물 이름에도 "꼬마도요", "꼬마민어"…같이 "꼬마…"가 붙는 게 적지 않다. 그런데 이를테면 "꼬마잠자리"라는 것은 잠자리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이기는 해도, "꼬마…"가 붙는 모든 동물이 반드시 작은 것을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꼬마피안다미조개"가 조개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디 "꼬마"라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혹자는 일본말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저들이 "팽이"를 일러 "コマ(고마)"라고 하는데, 그것이 땅에 딱 붙어 땅딸막하게 키가 작은 데서 비롯한 것이 아니냐면서. 그 "고마"를 세게 된소리(硬音)로 발음하여 "꼬마"라 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제법 그럴싸한 어원론을 편다.
우리의 말은, 어떤 말밑(語源)을 캘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니 자연 자기류 해석이 나올 법도 한 일이다.
"고마"얘기가 났으니 덧붙이자면, 중세어에서의 우리말 "고마"는 첩(妾)을 이름이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키 작은 사람"이 아닌 "어린이"란 뜻으로서의 "꼬마"는 그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라는 뜻에서는 첩이라는 뜻의 "고마"쪽과 아귀가 맞다고나 할 것인지?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꼬투리
`꼬투리`는 콩, 팥, 완두 등 콩과 식물의 씨가 들어 있는 껍질을 말한다.
콩이나 팥의 모태가 되는 것이 꼬투리인 것처럼 어떤 일이나 사건의 실마리를 가리킬 때 주로 꼬투리란 말을 쓴다. `꼬투리를 잡는다` 같은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꼭두각시
꼭두각시는 원래 우리나라 고대 민속 인형극인 "박첨지 놀이"에 나오는 인형을 말한다. 이상야릇한 탈을 씌운 이 인형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꼭두각시에서 "꼭두"는 "꼭뒤"라고도 하는데 뒤통수의 한가운데나 꼭대기를 가리키는 말이고, "각시"는 젊은 색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꼭두각시는 머리 꼭대기에 기괴한 탈을 쓰고 노는 여자 광대를 가리킨다. 그러던 것이 점차 그 뜻이 넓어져 나무로 깎아 만든 젊은 색시 인형을 가리키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인형이 그 자체로 움직이지 못하고 반드시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데서, 무조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꼿꼿하다
오늘날 "꼿꼿하다"란
1. 단단하고 길쭉한 것이 굽은 데가 없이 쪽 바르다
2. 배반하거나 뜻을 포기하는 일이 없이 굳세다 란 뜻이지요.
원래 1 의 뜻이었다가, 2 의 뜻으로 전의(轉義)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2 의 뜻으로 더 많이 쓰입니다. "꼿꼿하기는 개구리 삼킨 뱀"(고집이 센 사람을 일컫는 말), "꼿꼿하기는 서서 똥 누겠다"(고집이 세어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꼿꼿하다"는 옛말에서는 "곧곧하다"였습니다. "곧곧하다"는 "다리가 곧곧하다, 목이 곧곧하다"처럼 앞의 1 의 뜻으로 사용되었지요.
"곧곧하다"는 "곧다"의 어간인 "곧-"이 겹친 첩어(疊語)이지요.
즉 "곧고 곧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곧하다"에서 온 말이 아니라 "곧다"에서 온 말입니다. "곧하다"란 단어는 쓰이지 않았었습니다. 대개 첩어가 되면 대개 첩어의 어간에 "하(아래 아)다"를 붙여서 사용하니까요. 그런데 "꼿꼿하다"와 유사한 말로 "꿋꿋하다"가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꿋꿋하다"의 어원은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물론 "굳굳하다"에서 온 말이고, 이것은 "굳다"에서 온 단어입니다.
"곧다"와 "굳다"는 그 뜻이 전혀 다른 말인데, 여기에서 나온 두 단어인 "꼿꼿하다"와 "꿋꿋하다"가 마치 동일한 단어에서 모음만 바꾼 단어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요? 이것은 "꼿꼿하다"가 앞에서 든 1 의 뜻으로 사용되면서부터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꾀꼬리
흔히들 꾀꼬리는 꾀꼴꾀꼴하고 운다고 말한다. 꾀꼬리라는 이름도 그 울음소리에서 왔다는 것이다. 기럭기럭 울어서 기러기이며 귀뚤귀뚤 울어서 귀뚜라미라고 하는 말과도 같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 할 때 <두시언해> 등에 보이는 표기 `곳고리`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기야 사람의 말도 시대 따라 다른 것이고 보면 그때의 꾀꼬리는 울기를 `곳골곳골`했다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아무래도 꾀고리라는 이름의 선입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중세어 `곳골-곳고리`는 `곳-곶(花)+골(꼴,모습)`이 그시작이 아니였던지 모르겠다. `꽃과 같이 고운 꼴`을 한 새라는 뜻 아니었을까 하는 말이다.
황금 옷 입고 이리 날고 저리 나는 모습은 꽃의 꼴이라고 말 못할 것도 없다. 그것이 `굇고리`(두시언해, 역어유해), `괻고리`(왜어유해)로도 바뀌고 다시 `ㅅ괴ㅅ고리`(역어유해보),`ㅅ괴ㅅ고리`(동문유해)...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할 수 있겠다.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꿀먹은 벙어리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겠지요. 그래서 남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거나 어떤 일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할 때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을 쓴답니다. 또 남에게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애 태우는 것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다"라고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꿩 대신 닭
옛날에는 떡국 끓일 때 꿩고기로 국물을 우려냈습니다. 꿩은 사냥을 해야 하니 쉽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꿩을 못 구한 집에서는 대신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국물을 우려내 떡국을 끓였답니다. 바로 이 말에 이제는 적당한 사람이나 물건이 없을 때, 그만은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걸 가리키게 된 것이랍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끈 떨어진 망석중
`물건이 못 쓰게 되었거나, 일이 그만 허사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망석중은 나무로 다듬어 만든 인형으로 팔다리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당겨 춤을 추게 하는 놀잇감이다. 옛날에 주로 음력 4월 초파일 연등 행사에서 무언 인형극인 망석중 놀이를 하였는데, 망석중·노루·사슴·잉어·용 따위의 인형이 사용되었다. 노는 방식은 각본이 없이 중앙에 있는 망석중 인형의 가슴께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네 개의 줄을 사지 끝에 매고 뒤에서 줄을 잡아 당겨서 두 손은 가슴을 치고 두 다리는 머리를 치게 하였다. 그리고 오른쪽의 용과 잉어는 여의주를 상징하는 등(燈)을 삼켰다 뱉었다 하고, 왼쪽의 노루와 사슴은 구부렸다 폈다 하며 서로 다투는 시늉을 하였다. 이 망석중 놀이는 송도의 유명한 기생인 황진이가 당시에 30년 동안 도를 닦던 명승인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일을 풍자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망석중은 끈을 매달아 움직이기 때문에 끈이 끊어지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사람을 자기 맘대로 부추겨서 조롱하는 것을 `망석중 놀리듯`한다고도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나락, 벼, 비야
우리 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최근까지의 연구였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학자들은 자신들의 벼 농사 상한선을 서기전 1000년으로 잡고, 우리의 벼농사는 일본을 통해 전래된 것이란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포 일산 유적지에서 서기전 2400년대의 것으로 밝혀진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우리의 벼 농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활발했음을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벼농사는 오히려 우리에게서 건너간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보석신(사람 이름)이 죽 자 머리는 "밀"로 변하고, 눈썹에서는 "누에"가, 눈 속에서는 "피"가, 사타구니(음부)에서는 "보리"가, 뱃속에는 "벼"가 자랐다는 일본 [고사기(古事記)] 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화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꿩 치(雉)"의 "치희(雉姬)" 가 "벼 화(禾)" 의 "화희(禾姬)" 에게 사랑 싸움에서 패했다는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는 우리 역사에서 수렵시대가 끝나고 농경 시대가 정착된 사실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미국의 언어학자인 클리핀저는 인도 드라비다 어에서 "벼" 를 "비야" 라 한다 했는데, 어쩌면 "벼" 란 말은 "비야" 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벼의 고향을 벵골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벼를 우리의 남부 방언에서는 나락 이라 합니다. 이 "나락" 을 철종때의 [동환록(1859)]에서는 "나록(羅祿)"으로 적고, 신라 시대에 녹(봉급)을 벼로 준 데서 생긴 말이라 하였으나, 이는 민간 어원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락 이란 말은 "곡식의 알"을 뜻하는 낟 에 접미사 악이 붙은 "낟악"이 "나락"으로 변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보기엔 "꾸지람"이 있는데 "꾸지람"은 구짇+암 -> 구지담 -> 구지람 -> 꾸지람 으로 바뀐 것입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나발거리다
`말을 수다스럽게 지껄이다`라는 뜻이다. 나발은 쇠붙이로 만든 긴 대롱처럼 생긴 옛 관악기의 하나로, 위는 가늘고 끝이 퍼진 모양이다. 군중(軍中)에서 호령이나 신호를 하는 데 주로 썼다. 원래는 `나팔`에서 온 말로,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팔`이라는 악기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물건이다. 나발의 소리가 크고 시끄럽다고 해서 흔히 `마구 떠벌리는, 객쩍거나 당치도 않은 소리`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구경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 없다`의 `나발`이 그런 경우이며, 더 나아가 `개나발`이라는 속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나발거리다`는 나발을 부는 것처럼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 놓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나쁘다
`나쁘다`는 본래 `낮+브+다`로 이루어진 말로서 `높지 않다`는 뜻이었다.
오늘날은 이 말에 쓰인 `낮다`의 의미가 높이의 고저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어떤 가치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뜻으로 전이되어 `기준에 못 미친다` `좋지 않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난장판
`여러 사람이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에는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과거를 볼 때가 되면 오로지 급제를 위해 수년 동안 공부를 한 양반집 자제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렇듯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질서없이 들끓고 떠들어 대던 과거 마당을 `난장`이라고 했다.과거 시험장의 난장에 빗대어 뒤죽박죽 얽혀서 정신 없이 된 상태를 일컬어 난장판이라고 하였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날샜다
"날샜다"라는 말은 원래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쓰던 말이었는데, 차츰 일반 사람들도 이 말을 쓰게 되었답니다. 영화를 촬영할 때 밤이 나오는 장면은 꼭 밤에만 찍어야 하는데, 찍고자 하는 내용을 미처 다 찍지 못하고 날이 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할 수 없이 하루를 기다려 그 다음날 밤에 다시 찍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어떤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거나 잘못되거나 예상처럼 되지 않았을 때를 가리켜 "날샜다"라고 하게 되었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날카롭다
`날카롭다`의 옛말은 `날칼업다`이다. `날칼`은 날이 선 칼이라는 뜻이고 `업`은 접미사이다. 그것이 연음되어 `날카롭다`로 변한 것이다. 오늘날, 칼이 잘 들게 날이 잘 서 있다는 본뜻 외에도 어떤 일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성격적인 특성을 가리키기도 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남방
`남자들이 여름에 양복 저고리 대신에 입는 남양풍의 웃옷`을 가리킨다.
`남방(南方) 셔츠(shirts)`가 줄어서 된 말이다. 남방은 동남아 지역을 가리키며 그 곳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옷 모양을 소매가 짧고 통풍이 잘 되도록 헐렁하게 만들어 입는다. 날씨가 더운 남방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입는 모양의 옷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남산
애국가 중의 또 한 가지 `남산`의 의미를 모르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어느 고장을 가나 `남산`은 있습니다. 서울의 남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남`은 한자로 지금은 `남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 `남`은 `앞 남`이었습니다. 즉 `남산`은 `앞산`이란 의미입니다. `앞에 있는 산`이 곧 `남산`입니다. 그리고 `북`은 `뒤 북`이었었습니다. 그래서 `북망산`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다니다, 닫니다
어느 곳에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다닌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말은 달려 간다는 뜻이었다가 이러한 뜻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 말은 "닫다(走)"와 "니다(行)"의 어간들인 "닫-"과 "니-"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닫니다"는 "달려간다"는 뜻이었는데, 이것이 "단니다"로 변하고 다시 "다니다"로 변했습니다. 뜻이 엉뚱하게 변한 것 중의 하나이지요.출처 : 우리말 이야기
다람쥐
‘다람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람쥐 밤 까먹듯’과 같은 속담이나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등의 동요 가사 등에서 쉽게 접하는 단어다. 전에는 새나 물고기를 파는 가게 앞에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다람쥐’가 ‘다람’과 ‘쥐’로 분석된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다람쥐’의 ‘쥐’는 ‘박쥐, 생쥐, 얼럭쥐, 땃쥐, 두더지(원래는 ‘두디쥐’이다), 심지어 ‘콩쥐팥쥐’ 등의 ‘쥐’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람쥐’는 ‘생쥐, 박쥐’와는 달리 ‘쥐’로 연상되지 않는다. ‘쥐’만 보면 질색을 하는 여성들도 ‘다람쥐’를 보면 귀엽다고 앞으로 다가선다. ‘쥐’라는 단어에 대한 연상 작용이 의미 전달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다. 쥐목에 속하는 포유류지만, 꼬리가 길고 색깔이 예뻐서 사람들이 애완동물로 기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은 다람쥐를 애완동물로 기르기 시작한 후에 나온 속담이리라. ‘박쥐’는 ‘쥐’에서 온 말이고 ‘생쥐’는 ‘사향쥐’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어서 ‘쥐’ 앞에 오는 것은 동사의 어간이거나 명사일 것이기 때문에, ‘다람쥐’의 ‘다람’도 그 부류에 속할 것이다. ‘다람쥐’는 ‘쥐’라는 형태로 18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다쥐’나 오늘날의 형태인 ‘다람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이다.
쥐(豆鼠) <한청문감>(18세기) 다쥐 鼯 <한불자전(1880년)> 하하 탐음 질투는 마음이 엇지 다쥐 갓튼고 <조군영적지(1881년)> 다쥐 잇니 나무 가지 우희 잇서 여오고 여가며 <훈아진언(1894년)> 호랑이와 양과 슴과 원슝이와 다쥐와 나귀와 가루와 고슌도치와 박쥐와 <경셰죵(1910년)> 졉빈 위원의 원슝이오 다과위원의 다쥐며 시간위원의 황계더라 <경셰죵(1910년)> 다람쥐 저(狙) <1895국한회,066> 다람쥐 언(鼴) <국한회어(1895년)>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모양으로, 까닭도 모르고 또한 아무 필요도 없이, 제 자리에서 맴을 돌며 허위적거리는 것이 인생의 길일가? <상록수(1935년)>
이 ‘쥐’ 역시 ‘’과 ‘쥐’로 분석되는데, ‘’은 ‘다’(走)의 어간 ‘-’에 명사형 접미사 ‘’이 붙은 것이다. ‘-’이 소위 ㄷ 변칙동사이어서 모음 앞에서 ‘ㄷ’이 ‘ㄹ’로 된 것이다. ‘- + -’이 ‘’이 되면서 ‘달리기’란 뜻을 가진 명사가 되어 사용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접미사 ‘-질’이 붙어 오늘날의 ‘달음박질’에 해당하는 ‘질’이 파생되었다.
가리온 총이이 이 되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呂布ㅣ 즉시 라나다 董卓이 올 제 呂布ㅣ 이 급니 <삼역총해(1703년)> 젼년에 牢子들희 질을 네 본다 <박통사언해(1677년)> 질 는 발 밀기라 <흥부젼(19세기)>
이 ‘’에 ‘쥐’란 단어가 합성되어 ‘쥐’가 된 것이다. 결국 ‘쥐’는 ‘- + - + 쥐’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니까 ‘쥐’는 ‘달리기 쥐’(즉 달리는 쥐)란 뜻이다. ‘다람쥐’의 재빠름을 비유하여 붙인 이름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다람쥐를 낼샌 것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원 산에셔 다람쥐갓치 날샌 놈이라 <치악산(1908년)>
이렇게 ‘쥐’가 ‘달리기’를 잘한다는 데에서 붙여졌다고 하는 사실은 ‘쥐’가 나오기 이전의 형태에서도 증명된다. ‘쥐’가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18세기까지는 쥐‘는 한 예도 보이지 않고, ‘라미’(또는 ‘람이, 다람이’)가 등장한다.
鼯 라미오 鼠 쥐라 <능엄경언해(1461년)> 라미 오(鼯) 라미 (鼪) <훈몽자회(1527년)> 라미(鼺鼠) <동의보감(1613년)> 라미(山鼠 一云 松鼠 又 花鼠) <역어유해(1690년)> 라미(松鼠) <동문유해(1748년)> 라미(山鼠) <방언유석(1778년)> 너구리 넛손 보고 둑겁이 외손 보고 다람이 용치고 과부 기지 켤 졔 <남원고사(19세기)> 람이(松鼠) <몽어유해(1768년)>람이 오(鼯) <왜어유해(18세기)>
이 ‘라미’도 ‘쥐’와 마찬가지로 ‘다’의 어간 ‘-’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라미’를 ‘- + -암’이 ‘람’이 되고, 여기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생긴 것으로 해석하기 쉬운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사형 접미사에 ‘-’은 있지만 ‘-암’은 없기 때문이다. ‘라미’가 ‘미’로 나타나면 그러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미’라는 형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미’는 ‘- + -아미’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아미’는 ‘귓도라미(귓돌 + -아미), 쓰르라미(쓰름(쓰를) + -아미), 동그라미(동글- + -아미) 올가미(옭- + -아미)’ 등에서도 보이는 접미사이다.
그런데 이 ‘라미’는 18세기 말까지 쓰이고 가끔 19세기에도 보이지만, 그 이후는 주로 방언형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라미’는 ‘쥐’에 연관되지 않았던 것인데, 18세기에 와서 ‘쥐’와 연관시키면서 ‘라미’가 ‘쥐’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람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인상이 있는 것 같다. 국한회어(1895년)라는 사전에는 다람쥐가 굴을 파고 은폐된 곳에서 살기 때문인지, ‘다람쥐하여 치다’를 ‘저격’(狙擊)으로 풀이한 예가 보이기도 한다. 옛 문헌에도 그러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 보이는데, 상대방을 몰래 숨어서 공격하기 위해 다람쥐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을 표현한 다음 문장이 흥미롭다.
역 쳘퇴를 고 박낭 즁의 다람쥐갓치 업엿다가 시황의 거 사장의 지나거늘 <장방젼(19세기)>
최근에 북한 학자와 대화하는 중에 ‘손금 없는 사람’(하도 손바닥을 비벼대서 손금이 다 닳아 없어진 사람, 즉 아부하는 사람)이란 표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니, 설명을 다 듣고 나서는 ‘아, 다람쥐 같은 놈?’ 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다람쥐가 뒷다리로 서서는 좌우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면서 앞발을 싹싹 비벼대는 모습이 우리의 ‘손금 없는 사람’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4년 7월호
단골집
옛날에는 가족 중에 누가 병이 들거나 집안에 재앙이 있으면 굿을 하기 위해 집으로 무당을 당골 또는 단골이라 불렀습니다. 늘 정해 놓고 거래하는 집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단골집"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났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담배, 담바구
담배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을 때, 쿠바에서 토인들이 피우는 것을 발견한 데서부터 유럽으로 전래되었다고 보통 말하여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 유럽에서 피웠다고 이설(異說)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인류학자 중엔 아시아에서 미국 대륙쪽을 전파되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영어로 담배를 tobacco(터배코)라 하는데, 가까운 일본에서도 "다바코"(タバコ)라고 한다.
그 어원에 대해 서인도 제도(諸島)의 "트리니다드"(Trinidad)도 북동부의 섬 "타바고"(Tabago)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산토 도밍고 토인이 흡연에 사용하는 담뱃대를 "토바코"라 한 데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토어(土語)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인 나라에서의 호칭이다. 프랑스에서는 "여왕초"(女王草), 일본에서는 "남만초"(南蠻草), 중국에서는 "반혼초"(反魂草) 또는 "상사초"(相思草)로 불렀으며, 우리 나라의 기록에는 "남령초"(南靈草) 혹은 "남초"(南草)·"요처"(妖草)·"왜초"(倭草) 따위가 남아 있음을 본다.
담배에 관한 우리 나라 최초의 기록은 「인조실록」(仁祖實錄)에 나온다. 거기에 "담배는 서기 1616∼1617년에 바다를 건너 들어와 이를 복용하는 자가 간혹 있었으나 그다지 성행하진 않더니, 1621∼1622년에 이르러서는 복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쓰여있다.
지봉 이수광(芝峰 李粹光)의 「지봉유설」(芝峰類設)에는, 벌써 오늘날 쓰이고 있는 "담배"비슷한 말이 나온다. "담바고는 남령초(南靈草)라 하는데 근년에 일본에서 온 것이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 밖에도 인조 때의 명신이자, 우리 나라 담배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계곡 장유(谿谷 張維)의 「계곡만필」(谿谷漫筆)에 "담배 피우는 법은 본디 일본에서 온 것이니, 일본 사람은 이를 "담박괴"(淡泊塊)라 한다. 이르기를 그 풀은 남양 제국에서 난다는 것인데, 우리 나라는 20년 전에 피우기를 시작하였다"라 하였으며, 윤기진(尹起晉)의 「대동기년」 (大東紀年)에는 장유(張維)가 피우기 시작했다는 말과 함께 "痰破塊"(담파괴)라는 표기가 나온다.
그 이후, 앞의 민요에서 보이는 "담바구" 같은 표기도 보이니, "토바코"가 일본의 "다바코"를 거치고 그것이 우리 나라로 건너오는 사이 "담바구"같은 것으로 와전되어 "담배"로 된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민간 어원론적으로는 "단 방구"라는 데서, 즉 "달콤한 방구 같다"는 데서 왔다는 말도 있지만, 역시 어디까지나 민간에서의 얘기일 뿐, "담바구"의 음절이 줄어들면서 "담배"로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대머리, 민머리
"대머리"는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대"에는 또 무슨 뜻이 있을까?
"대머리"라 않고 "민머리"라 할 때는 그런 대로 뜻을 알 만해진다. 한자로 "禿山"(독산)이라고 하는 훌러덩 벗겨진 산이 "민둥산"이며(한자의 "禿"자는 "秀"자와 궤를 같이한다!)여자의 화장하지 않은 소안(素顔)이 "민낯"인 것과 같이, "민"은 본디 앞가지(接頭辭)로서, 아무런 꾸밈새나 덧붙어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대가리"·"민머리"같은 것이 대머리의 뜻으로 됨은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젠 "민머리"쪽은 거의 쓰이고 있지 않은 말이고 "대머리"쪽이 강세(强勢)다(사실은 "민머리"란 말 속에는 벼슬을 못한, 즉 감투를 써 보지 못한 머리라는 뜻도 있었다).
"대머리"는 "머리"의 낮춤말인 "대갈머리"쪽에서부터 온 것이나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있긴 하다. "身體髮膚 受之父母"(신체발부 수지부모:몸과 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의 사상에 젖어 있을 때만 해도, 아무리 인공(人工)이 가해지지 않은 현상으로서의 대머리일지언정,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와는 달라져 버린 그 벗어진 현상이 "불효"(不孝)였던 것이요, 그래서 "대갈머리"로 낮춰 쓰다가 된 "대머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이다("대가리"는 중세어에서는 "껍질"이란 뜻이 있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또 한편으로는 "대" 그 자체에서 하나의 뜻을 찾아보는 방향도 있을 것 같다.
크고, 밝고, 드러내 놓는다는 뜻을 지닌 앞가지로서 "대"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없을 것인가 함에서이다. "대낮"이라든지 "대보름", 승부를 마지막으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대매"라는 말 외에도 한번이란 뜻으로 "대번" 할 때의 "대"가 "대머리"의 "대"와 맥을 함께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반드시 그르다 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대포
`큰 잔 또는 큰 잔으로 마시는 술`을 가리킨다. 커다란 탄환을 멀리 내쏘는 화기(火器)를 뜻하는 대포에서 크다는 뜻을 빌려와서 다른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크다는 것을 강조해서 왕대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출처 : 우리말 어원
댕기풀이
`관례나 혼인을 하고 나서 동무들에게 한턱 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가 관례를 치르면 그 동안 땋아서 늘어뜨리고 다니던 머리를 틀어서 상투를 올리게 되고, 혼인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를 올려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총각, 처녀가 모두 어른이 되는데, 이 때 땋은 머리를 묶고 있던 댕기를 풀게 된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덜미를 잡히다
몸의 뒤쪽을 덜미라고 하는데 전체를 가리킬 때는 뒷덜미라 하고, 목 부분만 가리킬 때는 목덜미라고 한다. 뒷덜미를 잡히면 힘을 쓸 수가 없게 되므로 뒷덜미를 잡은 사람의 뜻대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므로 덜미를 잡힌다는 말은 `약점을 잡히다`, 꼬리를 밟히다`, `어떤 단서를 제공하게 되었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덤거리
`못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 산골로 돌아다니며 새우젓을 파는 새우젓 장수의 등짐은 반드시 두 개의 젓통으로 되어 있었다. 대개 양철통인데, 그 하나는 다른 하나에 비겨 녹슬고 낡아 있게 마련이다. 그 녹슨 통을 덤통이라 한다. 덤통에 비하여 겉보기에도 나은 통을 알통이라고 불렀다.알통에 담은 젓갈은 새우가 형태를 지닌 상품이고, 덤통에 담은 젓갈은 새우의 형태가 이지러진 약간의 하품과 젓국물이 듬뿍 들어 있다. 정상적인 거래는 알통젓으로 하고, 덤통젓은 덤으로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돈으로 산 젓갈을 알젓이라 하고, 덤으로 얻은 젓갈을 덤거리라 했다. 이로부터 시원찮고 뼈대없이 구는 사람을 `덤통에서 나온 놈` 또는 `덤거리`라고 빗대어 나타내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덤터기 쓰다
남으로부터 넘겨 받은 걱정거리를 `덤터기`라 한다. 흔히 `덤터기 쓰다`라고 하여 억울한 누명이나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이때 `덤테기`라고도 많이 쓰는데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도깨비
도깨비방망이처럼 도깨비는 원래는 사람에게 재물을 가져다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다.
귀신도 사람도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도깨비는 강시 같은 중국의 귀(鬼)나 혹 달린 일본의 요괴와는 차원이 다르다."저기 도깨비가 간다" (김종대 지음.다른세상.9천원)는 도깨비에 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쓴 책. 여러 문헌기록과 민담을 통해 우리 민족이 도깨비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민속학적 탐구다.
도깨비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된 것은 장난기와 심술이 많고 도깨비불로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
도깨비의 어원은 "돗" (종자)과 "아비" (아버지.남자)의 합성어. 따라서 풍요의 상징이다. 도깨비는 씨름을 좋아하며 숲이나 바다.강처럼 물기가 많은 곳에 산다.또 여자와 메밀.술.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담겨있다.
출처 : [중앙일보 2000/06/16]
도깨비, 목도자, 돗가비
도깨비의 어원은 박은용의 목도자(木都자)와 돗가비의 합성어가 있다.
목도자(木都자)에 나오는 "두두리(豆豆里)"는 절구질 할 때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농경사회의 방아작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깨비 내용이 삽입된 방이설화나 도깨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메밀묵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돗가비"설은 "돗+가비"의 합성어로 돗은 『불(火)』이나 『종자(種子)』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고 "아비"는 아버지의 의미로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의 통계로 볼 때 성인 남자로 이해된다. 이들 용어는 돗+가비>도ㅅ가비>도까비>도깨비 와 돗+가비>도ㅅ가비>도비>도채비 이다.
위의 예로보면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도깨비는 『복(福)』을 가져다 주는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토착 신격중에 하나로 전승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도깨비담에서 묘사되고 있는 도깨비의 형체는 대부분이 『도깨비불』로 상징된다. 『도깨비 불』을 본 사람이 많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불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가 있다. 일반적인 불빛은 밝은색인데 도깨비불은 파란불빛을 지니고 있다고 제보자들은 인식하고 있으며 아무런 불의 색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가 둘이 되기도 하고 둘이 하나가 되고 여러개로 분리되거나 합쳐지는 등의 변화를 보아면서 도깨비불의 신비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도깨비와 직접 대면하는 이야기의 경우 형체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특이한 체형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들어 "키가 팔대장 같은 넘",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놈", "장승만한 놈", "팔대상같은 놈"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도깨비는 남성이며 이들은 총각이나 젊은 계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깨비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도깨비의 냄새에 대한 것이다.
흔히 뿔이 두 개 달린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이고 우리 도깨비는 뿔이 달려 있지 않다거니 한 개 뿐이라거니 하는등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 는 실정이다. 출처 : 한국의 도깨비
도래솔
`무덤가에 둘러서 심은 소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래는 원래 소나 염소 따위의 고삐가 자유로이 돌 게 하기 위하여 굴레 또는 목사리와 고삐와의 사이에 단 고리 비슷한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다가 그 모양에 빗대어 둥근 물건의 주위나 둘레를 가리키는 뜻도 함께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무덤을 둘러싸고 둥글 게 늘어 선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같은 이치로 생긴 말 중에 둥근 방석을 뜻하는 도래방석이 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도루묵
`은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을 맞아 피난하던 도중에 처음 보는 생선을 먹었는데 그 맛이 별미였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묵`이라고 하므로, 그 이르이 맛에 비해 너무 보잘 것 없다 하여 그 자리에서 `은어(銀魚)`라고 고치도록 했다. 나중에 궁중에 들어와 `은어` 생각이 나서 다시 청하여 먹었으나 예전과 달리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가 "(은어를) 도로 묵이라고 해라"하고 일렀다고 한다.이런 유래로 인해 `도로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발음이 변해 `도루묵`이 되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흔히 `말짱 도루묵이다`라고 하기도 한다.출처 : 우리말 어원
도무지
`이러니 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라는 뜻의 부사로 쓰이는 말이다. 구한말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엄격한 가정의 윤리 도덕을 어그러뜨렸을 때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그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도모지(塗貌紙)`라는 사형(私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자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고 물을묻힌 조선 종이, 즉 창호지를 얼굴에 몇 겹이고 착착 발라 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가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도무지`는 이런 끔찍한 형벌에서 비롯하여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로 `도모지→도무지`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도우미
우리 나라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 박람회(EXPO) 때 "일을 돕는 사람" 이란 뜻으로 도우미 란 말을 썼다는 것 기억하시죠 ? 그것이 호감을 얻어 모든 모임의 일 돕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봉사자(奉仕者)보다는 친근감이 가는 말이죠. 물론 이것은 새로이 만들어진 말입니다.
이 도우미를 "도움+이"로 된 말로 보면 이는 남녀 모두에게 쓸 수 있는 말로, 다만 적기를 "도우미" 로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디딤돌"과 같은 구조로 된 말로서 조어법(造語法)에도 맞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를 "도우+미"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때의 풀이는 "일을 돕는 여자"입니다.
사실 엑스포 때 도우미는 다 여자였거든요. 그래서인지 "도우미"의 "미"를 한자 美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 때의 미는 "어미(할미)"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도토리
‘도토리’는 원래 ‘떡갈나무’의 열매만을 가리키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상수리나무에 열리는 ‘상수리’까지도 ‘도토리’라고 불러서, 시골 사람들은 ‘상수리’와 ‘도토리’를 구분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도토리’는 언뜻 보아 그 깍정이가 도톨도톨해서 ‘도톨도톨’의 ‘도톨’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이 꽤나 많은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도토리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 도토리의 밑을 싸받치는 도토리 깍정이가 오돌도톨하지, 그 도토리 받침에서 나온 알맹이는 오히려 매끈매끈하다. ‘그 사람이 도토리 같다’고 하면 키가 작은 것을 연상하지만 오돌도톨해서 거친 듯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키는 작지만 깎은 듯이 세련된 인식을 준다. 도토리가 ‘도톨도톨하다’는 인식은 아마도 그 이름으로부터 민간어원설로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는 『향약구급방』(1417년)이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데, ‘저의율(猪矣栗)’로 나타난다. 이것은 한자를 빌려 쓴 차자 표기 형태인데, ‘저’(猪)는 오늘날의 ‘돼지’를 뜻하는 ‘돝’을, 그리고 ‘의’(矣)는 음으로 읽어서 속격 조사의 ‘-’나 ‘-의’를, 그리고 ‘율’(栗)은 그 뜻대로 ‘밤’을 표기한 것이어서, ‘저의율(猪矣栗)’은 ‘도밤’으로 해석된다. 그 뜻은 ‘돼지의 밤’이니 ‘돼지가 (즐겨 먹는) 밤’이란 뜻이다. 도토리는 다람쥐나 먹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돼지가 도토리를 먹는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 멧돼지가 먹으면 멧돼지 것이고 다람쥐가 먹으면 다람쥐 것이다.”란 문장이 실려 있을 정도로 멧돼지가 즐겨 먹는 것 중의 하나가 ‘도토리’인 것이다. ‘멧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으로 만들어진 ‘도밤’은 15세기에 ‘도토밤’과 ‘도톨왐’으로 나타난다.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토바 주니라 (履穿四明飢拾楢溪橡) <두시언해(1481년)> 마다 도톨왐 주믈 나 조차 뇨니(歲拾橡栗隨狙公) <두시언해>
‘도토밤’이나 ‘도톨왐’에서 ‘밤’을 획인할 수 있고, 한문 원문의 ‘상율(橡栗)’에서도 ‘밤’이 확인된다. ‘도토밤’은 ‘도밤’의 변화형으로 보인다. 다른 어휘에도 그러한 변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명아주’를 뜻하는 ‘도랏, 도랏’이 ‘도토랏’으로도 나타나는 현상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토랏’도 ‘돝’과 연관될 것으로 추정된다).
도랏과 팟닙과 먹고 <삼강행실도(1471년)> 도토랏 막대 디퍼 뇨미<두시언해(1481년)>
그리고 ‘도토밤’이 ‘도톨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밤’이 ‘’이 되고 이 ‘’이 ‘왐’으로 변화한 예는 음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도토’에 ‘ㄹ’이 들어간 사실은 음운변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도토밤’이 ‘도톨밤’으로 변화하면서 ‘도톨’이 다른 것에서 온 형태소라고 하기는 어렵다. ‘도토밤’은 ‘돼지의 밤’이란 뜻을 가져서 만들어진 것이고, ‘도톨밤’은 ‘도돝도톨한 밤’이란 뜻을 가져서 따로 만들어진 단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동일한 문헌인 『두시언해』의 초간본에서는 ‘도토밤’이었던 것이 중간본에서는 ‘도톨밤’으로 등장하는 예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톨바 주으니라(履穿四明飢拾楢溪橡) <두시언해 중간본(1613년)>
그래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토밤’이 ‘도톨밤’으로 변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도톨’과 ‘돝’과의 유연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돼지’를 뜻하는 ‘돝’이 음운변화를 일으키면서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한 단어들이 꽤나 많다. 예컨대 ‘고슴도치’는 ‘고솜(의미불명)+돝’이었다. 고슴도치의 생긴 모습을 멧돼지와 연상시키면 금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 접미사 ‘-이’가 붙으면서 ‘돝’이 구개음화를 일으켜 오늘날 ‘고슴도치’로 되면서 ‘돼지’와의 연관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윷놀이를 할 때 윷의 세 짝은 엎어지고 한 짝만 젖혀진 경우에 ‘도’라고 하는데, 이것도 원래는 ‘돝’이었지만, 오늘날 이것을 ‘돼지’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도톨밤’이 ‘돼지’인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하면서 역시 ‘돼지가 먹는 밤’의 의미가 사라지고 단지 의미를 모르는 형태로만 남게 되자, ‘도톨밤’의 ‘도톨’에 접미사 ‘-이’가 붙게 되고 이것이 16세기부터 ‘도토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도토리 셔(芧), 도토리 (橡) 도토리 (栭) <1527훈몽자회(1527년)> 굴근 도토리(稼實) <동의보감(1613년)> 도토리와 밤괘 섯것도다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집이 가난야 도토리늘 주어 됴셕을 치더니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도토리(櫟實)<역어유해(1690년)> 도토리 (芧栗) <몽유편(1810년)> 도토리 샹(橡) <훈몽배운(1901년)>이것이 오늘날의 ‘도토리’로 굳어진 것이다.
이 ‘도토리’와는 다른 것이 ‘상수리’다. 상수리는 보통 ‘상수리나무’라고 하는 참나무에 열리는 열매로서 도토리나무에 열리는 것보다 크기가 크고 둥글다. 그런데 이 ‘상수리’는 이전에 ‘상슈리, 샹슈리, 샹슐니’ 등으로 쓰이다가 ‘상수리’로 정착하였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혼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세기 말부터였다. ‘상’(橡)의 석이 16세기에 이미 ‘도토리’였었는데, 19세기부터 ‘샹수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샹슈리 샹(橡) <훈몽자략(19세기 말)> 샹수리 샹(橡) <아학편이본(1813년)> 샹슐이 샹(橡) <식자초정(19세기)> 샹수리 샹(橡) <언문(1909년)> 상수리 상(橡) <초학요선(1918년)> 샹슈리 샹(橡) <유합천자(1834년)>
이 ‘상슈리’의 ‘상’은 한자 ‘상’(橡)에서 온 것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슈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상수리’를 한자로 ‘상실’(橡實)이라고 하니까 이 ‘상실’이 ‘상슈리’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결국 ‘도토리’는 ‘도밤’, 즉 ‘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이 ‘도토밤’으로 변화하고, 이것이 ‘도톨밤’으로 되면서 ‘돼지’인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하여 ‘도톨’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도토리’가 만들어지면서 ‘도톨밤’에 대치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도토리는 멧돼지가 먹는 것이 아니라 다람쥐가 먹는 것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만약에 ‘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이 남아 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무의 열매이지만, ‘상수리’와 구별하지 못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도토리’가 ‘상수리’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5년 6월호
독도, 독섬
일본의 ‘독도’ 망언은 그야말로 억지 떼거리여서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 그 저의가 괘씸하여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평소 우리가 독도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반문해 보면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독도’라는 지명 자체가 본래의 이름이 아니고 엉뚱하게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자괴심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독도’와 관련된 명칭은 시대에 따라 문헌에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성종 때의 ‘삼봉도(三峰島)’, 정조 때의 ‘가지도(可支島)’, 19세기 말 이후의 ‘석도(石島)’, ‘독도(獨島)’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지금 울릉도 현지 주민들은 ‘독섬(즉, ‘돌섬’)’이라는 조금은 색다른 명칭에 익숙하다. 이 ‘독섬’은 ‘石’을 뜻하는 ‘독’과 ‘島’를 뜻하는 ‘섬’이 결합된 순수 고유어이다. 지금도 전라도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하고 또 이 지역에는 ‘독섬’이라는 섬까지 실제 존재한다. 조선조 말(1883년) 울릉도에 대한 재개척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을 때 전라도 사람들이 대부분 이주하였다는 점에서, 울릉도와 인접한, 돌로 된 섬을 자기 지역 말로 ‘독섬’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문헌에 보이는 ‘석도(石島)’는 바로 우리말 ‘독섬(돌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또 다른 한자어 ‘독도(獨島)’는 ‘독섬’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독’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자 그저 음이 같은 ‘독(獨)’을 이용하여 만든 엉뚱한 명칭이다. 이로 보면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니고 ‘돌로 된 섬’일 뿐이다. 한편, 일본 사람들은 17세기 이후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아마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아서, 독도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그러한 명칭을 부여한 것일 터인데 지금도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기에 그러한 명칭이 제대로 어울리나, 독도에는 소나무는커녕 어떤 나무도 없어 ‘송도(松島)’라는 명칭이 무색하다. 그러나 독도 여러 곳에서 나무 그루터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송도(松島)’라는 명칭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19세기 말 이후 일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명칭에 아주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울릉도를 ‘죽도’ 또는 ‘송도’라고도 하고 독도를 ‘송도’ 또는 ‘리앙쿠르島’라고도 하다가, 1905년 이후에는 독도를 ‘죽도’로, 울릉도를 지금과 같이 ‘울릉도’로 부르게 되었다.
울릉도를 가리키던 ‘죽도’가 돌연 독도를 가리키게 되어 실제 독도에 대한 명칭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독도’에 대한 자기네 이름(즉, ‘송도’)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니 역사적 사실은 들추지 않더라도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도 ‘독섬’ 이전의 순수 우리말은 잃어버렸지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독섬’이라도 살려 써야 한다. 이제 ‘독도’는 동해 바다 끝에 애처롭게 달려 있는 작은 섬이 아니라, 묵직한 돌로 자리를 튼 우직한 섬인 것이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독수리
`독수리과에 딸린 새` 독수리의 독은 `털 빠진 독(禿)`을 쓴다. 독수리의 생김새는 매나 수리와 비슷하고 뒷머리가 벗거져 살이 비치고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솜털이 있다. 따라서 `머리가 벗어진 수리`라는 뜻으로 만든 말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돈, 도전, 도환
그 돈은 돌고 돈다. 그래서 돈이라 했다던가.
그러나 그 말의 생겨남에서 보자면 "돌고 도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刀-刀環"설이 그것이다(金柄夏 교수의 논문 「삼국시대의 刀選好 사상」 및 曺秉順 씨의 "돈 이야기"=「동아일보」, 93. 9. 20 등).그에 의할 때 중국에서는 "刀"가 "錢"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명도전(明刀錢:중국 전국 시대 燕나라에서 사용되던 화폐로서 우리의 고대 무덤에서도 많이 출토됨)이 유통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刀"자를 꺼리지 않고 왕비의 이름(신라 법 흥왕비는 巴刀, 진흥왕비는 思刀 등)에까지 썼다는 것이다. 그 "刀"가 어느 때부터 "돈"으로 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刀"와 "도환"(刀環)이 혼용되다가 "도환→돈"으로 불리기 시작했 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도환은 "칼고리"라는 뜻으로서 명도전처럼 고리가 달린 "도전"을 가리키며 나중에 동전의 고리(구멍)로서 그 흔적을 남긴다고도 덧붙이고 있다.
"도전"은 생긴 모습이 칼과 같기 때문에 그 이름이 생겼다(漢書 : 食貨志下).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명도전도 바로 그 칼 모양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전", "도환" 외에 도포(刀布)라고도 했다. "刀"는 물론 돈의 꼴이 칼과 같아서였지만 "布"는 그 옛 글자의 꼴이 칼과 같아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하에 "분포"(分布)되어 유행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렸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 할 때 이 "도포"의 "布"는 "돌고 도는 돈"이라는 이름의 원류를 생각게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기문(記文)·출토지·모양 등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인데 "刀"라는 돈 이름에 삼자도(三字刀)네 안양도(安陽刀)네 하는 것이 있듯이 "布"라는 돈 이름에도 안양포(安陽布)·평양포(平陽布)…… 하는 것들이 있다. 「관자」(管子) 등에 의할 때 주옥(珠玉)을 상폐(上弊), 황금을 중폐(中幣)라고 하는 데 비해 "도포"는 하폐(下幣)로 치고 있다. 지룡(地龍)에서 "지렁이"라는 말이 나왔고 백채(白寀)에서 "배추"라는 말이 나왔듯이 돈 또한 도환(刀環)에서 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돈의 생태로 보자면 역시 돌고 도는 돈에서 왔다는 쪽이 더 그럴싸해진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돈내코, 돗내코
제주도에 가면 `돈내코`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돈내코`라고 부르지만 원래의 이름은 `돗내코` 였다.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제주사투리로 `돗`, `도새기` 는 돼지를, `내` 는 하천을, `코` 는 입구를 말한다.출처 : 중앙일보
돌팔이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뜻한다. 아는 것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일정한 주소가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자신의 기술이나 물건을 파는 것을 `돌팔이(돌다+팔다)`라 했다. 돌팔이 무당, 돌팔이 의사, 돌팔이 장님 등의 말이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 않는데 `돌팔이`가 쓰인 예로 `돌팔이 글방`이란 것이 있다. 조그만 아이들을 모아 자격도 별로 없는 사람이 가르치는 글방을 말하며, 본디는 `돈팔이 글방`이었다고 한다. `돈팔이`란 학문이나 기술을 본분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사실은 `돈벌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유에서 `돌팔이`는 가짜나 엉터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동냥
`거지가 돈이나 물건을 구걸하는 일`을 뜻한다. 한자말인 동령(動鈴)에서 온 말이다. 원래 불가에서 법요(法要)를 행할 때 놋쇠로 만든 방울인 요령을 흔드는데 이것을 동령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중이 쌀 같은 것을 얻으려고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며 문전에서 방울을 흔들기도 했다. 지금은 방울대신 목탁을 두드리지만 동냥이라는 말은 이렇듯 중이 집집마다 곡식을 얻으러 다니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한편 `가을 중 싸대 듯`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을이 되면 농민들이 곡식을 수확하게 되고, 그러면 중들은 때맞춰 시주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데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 되었다. 동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동냥아치`라고 부른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동지, 팥죽
옛부터 우리 민족은 동지를 설,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5대 명절이라 하여 조상께 차례를 지냈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 때문에 동지를 명절로 삼았을까. 동지는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음이 극에 이른다. 하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소멸되었던 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또한 동지는 양기가 드디어 움직이는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희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하였고,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여겨 축제를 벌이는 등 경사스럽게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렇듯 동지는 양기가 새로 싹트기 시작하고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기 때문에 이날을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아세(亞歲)라 불렀으며, 민간에서는 이를 "작은 설"이라 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혹은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동지를 새해 첫 달로 삼기 시작한 것은 주(周)나라이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 때에는 동짓달인 11월, 즉 쥐의 달(子月)을 정월로 삼고 1년의 첫출발을 시작하였다. 이는 동짓날 양기가 처음 음트기 시작한 것에 근본을 두었기 때문이며, 곧 하늘에 따른 것이다. 반면 중국의 상(商)나라는 동짓달이 아닌 정월을 새해의 첫 달로 삼았다. 범의 달(寅月)인 정월을 삼은 까닭은 동짓달부터 땅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양기가 정월에 하늘로 상승한 것을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땅을 본받은 것이다.
동짓날 팥죽은 귀신을 쫓는다
동짓날엔 으레 팥죽을 먹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동지에 먹는 팥죽을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 이라 한다. 어느 집에서나 팥을 삶아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 찹쌀로 단자를 새알만큼씩 만들어 죽을 쑤는데, 이 단자를 "새알심"이라 한다. 동지팥죽은 먼저 사당에 놓고 차례를 지낸 다음 방이나 마루, 광 같은 곳에 한 그릇씩 떠다 놓기도 하고 대문이나 문짝, 벽, 기둥에 뿌리고 난 후 먹는다. 무엇 때문에 팥죽을 차려놓고 집안 곳곳에 뿌리고 먹는 것 일까.
옛날 중국 요순 때 형벌을 담당하던 공공씨가 못된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의 귀신이 되었다. 그런데 이 역질 귀신은 살아생전에 붉은 팥을 무서워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동짓달에는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도 옛부터 붉은 색은 부정과 잡귀를 물리치는 마력이 있다고 믿었다. 도깨비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말피를 대문에 바른다든지,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대문 금줄을 치고 고추를 달아맨다든지, 할머니들이 저승길이 밝아진다고 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드리는 일, 혼례 때 청홍색의 실을 초례상에 거는 습속 등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면 왜 붉은 색은 잡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여겼을까. 붉은 색은 방위로 봤을 때 남쪽이다. 남쪽은 음양으로 보아 양에 속한다. 양은 음을 이길 수 있다. 또 남방은 불(火)를 상징한다. 붉을 적(赤)을 풀면 큰 불(大火)이 된다. 불은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불로 상징되는 붉은 색은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동지 달력과 시절음식
고대 사회에서는 달력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는 달력을 하나의 통지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황제만이 달력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왜냐하면 역서나 달력은 농업이나 어업을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기후 안내서로서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해마다 동지가 되면 관상감에서 새해 달력을 만들어 나라에 받쳤다. 국왕은 여기에 "동문지보"라는 어보를 찍어 좌우에 놓고 보거나 백관에게 나누어주었다. 가장 잘 만들어진 달력을 황색으로 장식된 황장력이고 그 다음이 청장력, 백장력이다. 한편 동지가 되면 내의원에서는 계피, 후추, 설탕, 꿀을 쇠가죽과 함께 푹 끓여서 고약을 만드는데, 이를 전약(煎藥)이라 하였다. 제주도에서는 매년 동지 무렵에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그러면 궁에서는 귤을 종묘에 올린 다음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출처 : 로드레일
동티가 나다
`잘못 건드려 스스로 재앙을 사다`는 뜻이다. 원래 흙이나 나무를 잘못 다루다가 지신(地神),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입어 재앙을 당한다는 뜻의 민속 용어였던 것이 일반적인 뜻으로 확대되었다. 동티는 동토(動土)라는 한자말이 변해서 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어원
돼지
돼지는 송아지·망아지·강아지 등과 대등한 말로서, 본래는 새끼를 일컫는 명칭이었다. 고어의 `돝`이 어미 돼지이고, `도야지`나 `돼지`는 새끼 돼지인데, 후에 `돝`이 사어가 되면서 `돼지`가 `돝` 대신 표준어가 되고, `도야지`는 방언이 되었다. 그래서 가축 중에 `돼지`만은 새끼의 명칭이 없어지고, 송아지·망아지·강아지 등에 대등한 말로서 `새끼 돼지`가 쓰이게 되었다.본래는 새끼 돼지를 일컫던 말이 돼지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확산되어 쓰이고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되바라지다
물건의 모양이 툭 비어져 나와 깊고 아늑한 맛이 없는 형태를 가리켜 `되바라지다`라고 한다.
오늘날, `되바라지다`는 너그럽지 않고 포용성이 적은 행동이나 하는 짓이 나이에 비해 얄밉도록 지나치게 야무지고 똑똑한 체하는 것을 말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된서리맞다
`된서리`는 늦가을에 아주 되게 내리는 서리를 말하는데 논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이 이 서리를 맞으면 풀이 죽어서 못쓰게 되거나 금방 죽어버린다. 이 말에서 파생되어 현재는 관용구로 어떤 기구나 사람이 존립 기반이 무너질 정도로 큰 타격이나 모진 억압을 당하는 경우를 일컫는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두더지 혼인
`분에 넘치는 엉뚱한 희망을 가짐, 또는 자기보다 썩 나은 사람과 혼인하려다 실패하고 마침내 비슷한 사람끼리 혼인을 하게 됨`이라는 뜻의 말이다.
『순오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두더지가 혼인을 하려고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하늘에게 청혼하자 하늘은 일월(日月)이 없으면 내 덕을 나타냄이 없으리라 했다. 일월에게 가 구하니 일월은 또 구름이 나를 가리니 구름이 내 위에 있다 하였다. 구름에게 가 구했더니 구름은 바람이 있어 나를 흩어지게 하니 바람이 내 위에 있다 하였다. 바람에게 갔더니 구름은 흩어지게 할 수 있으나 밭 가운데에 있는 돌부처만은 넘어뜨리지 못한다 하였다. 석불에게 가 구하니 석불은 말하기를 내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오직 두더지가 내 발을 뚫으면 내가 넘어지기 때문에 그가 나보다 나으리라 했다. 이에 두더지가 이르기를 천하에 높은 것이 나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같은 두더지에게 청혼을 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두더지 혼인`이라는 말이 생겼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두레박
`줄을 길 게 달아 우물 물을 긷는 기구`이다. 낮은 곳에 있는 물을 언덕진 높은 곳의 논이나 밭에 퍼붓는 기구를 두레라고 한다. 가벼운 오동나무와 그 밖의 나무로 위는 넓게 퍼지고 밑바닥은 몹시 좁게 네 귀퉁이를 만들어 네 귀퉁이 위쪽에 줄을 매달고는 양쪽에서 노 젓는 것처럼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물을 품는다. 두레박은 바로 이 `두레`와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줄을 달아 맨 것을 두레박이라고 하며, 대나 나무로 긴 자루를 해 단 것을 타래박이라고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두루뭉수리
형태가 없이 함부로 뭉쳐진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쓰는 `두리뭉수리`는 잘못된 말이다.
또, `두루뭉수리`는 말이나 행동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어서 또렷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두루뭉실하다`고 쓸 때는 태도나 성격, 혹은 일처리 등이 명확하지 않고 어정쩡한 것을 말한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두룩두룩
`두룩두룩`은 크고 둥그런 눈알을 조금 천천히 자꾸 굴리는 모습으로 `두룩거리다`, `두룩대다`, `두룩두룩하다` 등으로 쓰입니다.
보기>..."자, 우리집으로 가요." 왕서방은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눈만 정처없이 두룩두룩하였다. 복녀는 다시 한번 왕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 "우리, 오늘 밤 일이 있어 못 가." "일은 밤중에 무슨 일." ..출처 : 김동인, 감자
두매한짝
`다섯 손가락을 가리키는 곁말`이다. 젓가락 한 쌍을 `매`라고 한다. 그래서 젓가락 두 매와 한 짝을 합치면 다섯이 된다. 옛날에 흔히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던 버릇으로부터 손가락과 젓가락을 서로 용도의 유사성에 빗대어 재미있게 나타낸 곁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겉으로는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남 몰래 엉큼한 짓을 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매우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이 선비는 글공부에만 매달리고 살림은 오로지 아내가 맡아서 꾸려 나갔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이들 부부는 훗날을 바라보며 가난의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선비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서 방문을 열자 아내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다가 황급히 엉덩이 뒤쪽으로 감추는 것이 보였다. 선비는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음식을 감춰 두고 혼자 먹고 있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면서 엉덩이 뒤로 감춘 것이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호박씨가 하나 떨어져 있기에 그것이라도 까먹으려고 집어서 입에 넣다 보니까 빈 쭉정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눈물과 함께 용서를 구하고, 선비는 그런 아내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함께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이야기로부터 남 몰래 엉큼한 일을 하는 것을 일러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고 하게 되었다. 이야기 자체는 눈물 겨운 내용을 담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야기의 내용과 거기에서 비롯된 말이 따로 떨어져 쓰이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들통나다
들통을 들어내면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드러난다는 데서 생긴 "들통나다"라는 말은, 남몰래 감추어 놓았던 일이 우연찮게 발각되는 것을 뜻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등골이 빠지다
`등골`이란 말에 쓰이는 `골`은 뼛속에 가득 차 있는 부드러운 신경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쓰이는 등골이란 등뼈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뇌와 연결되는 신경중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신경중추에 손상이 올 경우 디스크 및 운동 신경 마비 등의 여러 가지 신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등골이 빠지다`는 견디기 힘들 만큼 몹시 힘이 든다는 말이다. 이 밖에도 등골에 관계된 말로는 남의 재물을 갈취하여 긁어먹는 `등골을 빼먹다` 혹은 남을 몹시 고생스럽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등골을 뽑다` 등이 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등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등신(等神)은 한자말 그대로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신상(神像)을 말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귀신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광목이 처음 나타났을 때, 너무 넓어서 "이건 사람이 못 짜, 등신이 짜지"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 문익환 『죽음을 살자』202쪽). 그러다가 차차 어리석고 줏대 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따발총
6·25를 겪으신 분은 따발총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소련식 기관단총이지요. 이것을 보통 "다발총(多發銃)"이라고 해석해서 한자어인 줄로 알고 계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 말은 따발총 같애." 라고 말하여 마치 속사포(速射砲)를 일컫 것으로 이해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따발총을 직접 보신 분이 계신가요? 탄창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마치 "또아리"(물동이 등을 머리에 일 때에 머리 위에 얹도록 만든, 짚으로 둥글게 틀어서 만든 물건)처럼 생기지 않았던가요? 이 "또아리"를 함경도 방언에서 따발이라고 합니다("또아리"를 "또바리"라고 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함경도에서 소련식 기관단총에 "또아리"와 같은 것이 달렸다고 하여, 이 총을 그 방언에 따라 "따발총"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따발"이 한자의 "다발(多發)"과 비슷하니까, "다발총(多發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출처 : 우리말 이야기
딴따라
"딴따라" 또는 "딴따라패" 같은 말이 사전에는 올라 있는 것 같지 않다(근자에 나온 일부 사전에는 올라 있음). 가령, "(대중) 음악인을 낮추어 일컫는 말" 같은 풀이를 달고서 사전의 한 줄을 차지할 만한 것 같은데 없다. 없는 건 없는 거고, 벌써 "딴따라"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중 음악쪽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딴따라패" 하면 남의 깃대잡이 노릇 하는 사람까지 일컫게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남의 행렬 앞장서서 삐빼거리면서 불고 치고 하는 축이라는 데서인지도 모른다.
"자네 아직도 딴따라팬가?"
악단에서 아직 나팔 부느냐는 물음은, 이와 같은 말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보통 아는 말에는 "풍각쟁이" 라는 것이 있다. 일제 시대만 해도, 시골에 서커스단이 들어와, 예고하느라고 시내를 누비며 치고 불고 다닐 때, 갓 쓴 영감네들이 하는 소리는, "그 풍각쟁이 꽤나 구성지군그래!"였다.
본디, "풍각쟁이"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바탕 치고 불고 한 끝에 돈을 구걸하던 축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것이 나중에 이르러서는, 음악인 일반을 낮추어 일컬을 때에 쓰이게 되었다. 하기야 음악인이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터이니까, 풍각쟁이 그 말로써 어쩌면 업신여기는 뜻을 곁들이면서 썼던 것이리라.
그 "풍각쟁이"가 "딴따라"라는 신식말로 바뀐 것이다.
"딴따라"는 서양말에서 온 것 같기도 하다.
영어의 tantara(탠태러)는 소리시늉말(擬聲語)이다. 나팔이나 피리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또 그와 비슷하게 taratantara(태러탠태러)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 발음 기호대로 읽을 때 전자가 "탠태러"이고, 후자가 "태러탠태러"로 된다. 하지만, 우리말이 일제의 통치를 겪는 사이에 그들의 말을 통하여 심어진 것이 특히 외래어의 경우 많다고 할 것 같으면, 이 tantara와 taratantara도 그들이 그들 표준으로 발음하면서 악기의 소리를 나타낸다는 뜻에서 음악인을 가리키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 쓰기 시작한 것이므로 반드시 그 발음 기호대로 발음하는 것은 아니다.
아닌게아니라, tantara와 taratantara는 일본말로 외래어 표기를 할 경우, 지금 우리가 쓰는 "딴따라"에 비슷한 소리로 된다. 그래서 말인데, 가사 없이 곡으로만 부를 때 내는 소리 "딴따라딴……" 따위도, 근본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은상(李殷相) 작시(作詩)의 "성불사(成佛寺)의 밤"에는 "뎅그렁 울릴 제면 또 울릴까 맘졸이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노랫말과 같이 종소리의 경우 "뎅그렁" 또는 "댕그렁"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 선인들이 악기의 소리를 나타내는 데 있어 "딴따라" 비슷한 말을 쓴 것 같지 않다. 가령 "딩동뎅동……"은 가야금이었고, 피리소리는 "삐빼삐빼", 나팔소리는 "때때"·"따따", 북소리는 "둥둥" 같은 것이나 아니었던가.
"딴따라"는 역시 코큰이 쪽의 말에 시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시늉소리(擬聲語)가 소리의 주인을 가리키게 발전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 이설(異說)이 제기될 여지는 있다지만, 우리말에서라면 "쓰르르쓰르르" 우는 쓰르라미에, "개골개골" 우는 개구리 따위를 예로 들어 볼 수도 있겠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딴따라패, 깡패
요즈음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연예인들을 `딴따라패`라고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전에는 곧잘 `딴따라패`라고 얕잡아 부르곤 했습니다. 언뜻 들어도 `딴따라`가 나팔 부는 소리와 같아서 연예인들의 행동을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갔었습니다. 옛날의 풍각쟁이들처럼 그 행렬의 앞에서 북치고 장구치는 사람들을 연상했을 테니까요. 이 `딴따라`가 우리 국어의 의성어에서 온 것 같지만, 실상은 영어의 의성어에서 온 것입니다. 영어의 `tantara`의 음을 빌려 온 것이지요. 나팔이나 뿔나팔 등의 소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소리를 빌어 와서 `딴따라`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들을 국어의 의성어 `딴따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어에서는 `딴따라`라는 의성어는 없습니다. 이처럼 의성어는 언어마다 유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어에서 `flag`는 `깃발`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국어의 `펄럭펄럭`을 연상시키지요? 물론 영어의 `flag`는 의성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영어를 빌어 온 단어 중에서 우리가 늘 쓰는 것 중에 `깡패`란 말이 있습니다. 폭력을 쓰면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이 `깡패`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 어원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해방 뒤에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 오게 되고, 이들의 통조림통인 `can`에다가 한자어인 `통`을 붙인 `깡통`을 거지들이 이용하면서, 이들 못된 짓을 하는 `거지패`들을 `깡패`라고 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영어의 `gang` 즉 `깽`을 일본에서 `걍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국어에 들어 와서 `패거리`의 `패`를 붙여서 이들을 `깡패`라고 하였다는 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후자가 더욱 그럴 듯합니다. 왜냐하면 `깡으로`(억지스럽게)등의 단어가 쓰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딴전보다(피우다, 부리다)
딴전은 `다른 전(廛)`에서 온 말이다. 옛날에는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를 전(廛)이라 했다. 딴전을 본다는 것은 이미 벌여놓은 자기 장사가 있는데도 남의 장사를 봐준다거나, 다른 곳에 또는 다른 장사를 펼쳐놓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하고자 하던 일을 제쳐두고 오히려 다른 일에 더 매달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는 눈앞에 높인 문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는 태도 등을 가리킨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딴죽 걸다
`딴죽`은 씨름이나 태권도 등에서 쓰는 기술의 한 가지로서 상대편 다리를 치거나 걸어 넘어뜨리는 재주를 `딴죽`이라 한다. 흔히 `딴죽 걸다`라고 써서 상대방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서로 합의가 되었던 일을 딴 짓을 하여 어기는 일을 말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땡 잡다
`뜻밖에 큰 수나 행운이 생김`의 뜻이다. 골패(骨牌)나 투전(鬪錢) 따위의 노름에서 같은 패를 잡는 것을 `땡` 또는 `땡땡구리`라고 하며, 이럴 경우 상당히 높은 끗수에 해당하여 대개 상대방을 크게 이긴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떡
조선시대의 문헌인"성호사설"에는 이에 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곧 "주례"주에 이르길 "합쳐 찌는 것이 이(餌)이고 만드는 것이 자(咨)이다.라고 했던 바, 이(餌)는 찧어 가루로 민든 다음에 반죽을 하므로 떡으로 만든다고 하였으며, 자(咨)는 쌀을 쪄서 매로 문드러지게 치는 까닭에 합쳐서 찐다고 한 것이다. 한편, 떡의 재료가 쌀에서 밀가루로 바뀌면서 "병"이란 새로운 표기법이 쓰이게 되었는데 떡을 나타내는 한자는 쌀을 위주로 해서 만들었을 경우 조리법에 따라 이(餌)나 자(咨)로 표기했고, 밀가루로 만들었을 경우 병(餠)이라 표기한 셈이다. 결국 우리의 떡은 쌀을 위주로 하여 만들고, 있는 만큼 이(餌)나 자(咨)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재료에 따른 명칭상의 구별 없이 "떡"이라 하고, 한자어로 나타날 때에는 모두 병(餠)이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다. 출처 : 태산떡방앗간
떡을 치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충분한 정도가 되다`라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흔히 "그 집은 술값이 싸서 세 명이 만원이면 떡을 쳐"와 같은 말을 주고 받는다. 여기서 `떡을 친다`는 말은 원래 장사꾼이나 공사판 인부들이 은어 비슷하게 쓰던 말이다. 이 말은 어떤 일을 꾸미기 위해 생각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작당을 하는 것을 뜻하는 담합(談合)이라는 말과 고물 등을 묻힌 작은 떡을 뜻하는 단자(團子)의 일본식 발음이 서로 비슷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끼리 담합을 하면 웬만한 일은 쉽게 성사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떡을 친다는 말이 담합한다는 뜻을 지니게 되고, 담합을 하면 일이 쉽게 성사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입을 막으려고 나눠 주는 돈을 떡값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까닭에서 나온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떼 놓은 당상
옛날 조선시대엔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즉 관자를 가지고 관직이나 계급을 표시했는데,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가진 사람(당상)은 금이나 옥으로 만든 관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당상 벼슬을 하는 사람의 망건에 있던 옥관자나 금관자도 당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떼 놓은 옥관자, 금관자는 좀이 먹거나 색이 변할 리 없고, 어디로 달아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염려가 없음"을 가리켜 "떼 놓은 당상"이라고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뚱딴지같다
똥딴지는 본래 돼지감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생김새나 성품이 돼지감자처럼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비웃어서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본뜻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마(魔)가 끼다
마(魔)는 불교용어인 `마라(mara)`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마라는 `장애물`, `훼방놓는 것`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이다. 원래는 마음을 산란케 하여 수도를 방해하고 해를 끼치는 귀신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현재는 일이 안 되도록 훼방을 놓는 요사스러운 방해물을 마(魔)라고 하며, 때로는 마귀나 귀신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가 낀다`는 말은 일의 진행 중에 나쁜 운이나 훼방거리가 끼어들어서 일이 안 되는 쪽으로 상황이 기우는 것을 말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마누라, 아내, 안해, 여편네
`아내 우리나라 말에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벼슬을 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부르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를 지칭할 때, `남정네, 남진, 남편, 사나이, 총각` 등이 있고, 여자를 지칭할 때에는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는 대개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들을 아시는 분이 많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는 지금은 그 표기법도 달라져서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해`였지요.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안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사람`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던 가요? 거기에 비해서 남자는 `바깥 사람, 바깥분, 바깥양반` 등으로 쓰이고요. `부부``를 `내외`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여편네`는 한자어이지요.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께서 혹시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아니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렇게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를 뜻하는 `남편`은 도저히 그 뜻을 해석할 수 없지요. `여편네`와 `남편`은 서로 대립되는 말입니다.
`마누라`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같은 지위나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나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 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예를 들면 `주인 마누라` 등) 쓰이고 있습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이었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존칭으로서,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웃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르거나 대통령이나 그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큰 싸움이 나거나 국가원수 모독죄로 붙잡혀 갈 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판사나 검사를 특히 `영감님`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원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보양이지요?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입니다.출처: 우리말 어원
마땅하다, 굳건하다, 익숙하다
`마땅하다`는 "잘 어울리다, 알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따위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그 어감이 꼭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이 단어에 한자가 있다고 한다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마`가 한자일까? `땅`이 한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말과 그 표기법이 큰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수긍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시면 수긍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원래 `맛당하다`로 또는 `맛당하다`로 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맞다`의 어간 `맞-`에다가 이 `맞다`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 `당(마땅 당)`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우리 고유어에다가 같은 뜻을 가진 한자를 붙여서 만든 단어이지요.
이처럼 우리 고유어에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는 꽤나 있습니다. `굳건하다, 튼실하다, 익숙하다`등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굳건하다`는 고유어인 `굳다`의 어간 `굳-`에 한자 `건`(굳셀 건)이 합쳐진 단어이고요, `튼실하다`는 `튼튼하다`의 `튼`에 한자 `실`(열매 실)이 합쳐져서 된 말이지요. 그리고 `익숙하다`도 `익다`의 `익-`에 한자 `숙`(익을 숙)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렇게 고유어에 고유어가 뜻을 같이 하는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를 우리는 동의 중복으로 된 복합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한자어와 고유어를 합쳐서 쓰는 말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드는 예는 `처가집, 역전앞, 무궁화꽃`등 정도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만, 실상은 그 이상입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다음에 그 일례들만 들어 보이도록 할 테니까, 하나하나 잘 분석해 보세요. 같은 뜻을 가진 한자와 고유어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요.
담장 바람벽 어떤 일미인 두견접동 장림숲 학두루미 옷칠 모래사장 손수건 속내의 새신랑 긴 장대 큰 대문 어린 소녀 젊은 청년 늙은 노인 빈 공간 넓은 광장 같은 동갑 허연 백발 누런 황금 배우는 학도 둘로 양분하다 미리 예습하다 다시 재혼하다 서로 상의하다 스스로 자각하다 배에 승선하다 자리에 착석하다 분가루 일전 한푼 자식새끼 외가집 면도칼 고목나무 진화되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마마`두창(痘瘡)` 전염성이 강하다는 뜻에서 이르는 말이다.
마마라는 말은 왕을 일컬을 때 상감마마라고 하는 것처럼 최상의 존칭어이다. 그런데 이런 명칭을 두창이라는 질병에 붙인 것은 병을 옮기는 신에게 높임말을 씀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덜자는 주술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천연두를 `손님`, 홍역을 `작은 손님` 등으로 부르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손님이라는 표현에는 질병을 높여 부르는 동시에, 질병을 옮기는 신이 손님처럼 돌아다니는 뜻이 포함되어있다. 이렇게 전여성이 강한 까닭에 `별성마마`, `손님마마` 또는 `역신마마`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줄어서 그냥 마마가 된 것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마지기
"논 몇 마지기, 밭 몇 마지기"처럼, "마지기"는 농촌에서 농토의 크기를 말하는 단위로서 쓰이고 있습니다. 이때의 "마지기"의 뜻을 알고 계시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농토의 단위려니 생각하는 분이 대부분이지요. 그런데 "몇 섬지기"라는 말이 있어서, "마지기"는 "마"와 "지기"로 분석될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기"는 "농사를 짓는다"는 말의 "지기"일까요? 아니지요. 만약에 그렇다면, "지기"가 아니고 "짓기"이겠지요.
"지기"는 옛말로 "디기"였습니다. 곧 "떨어진다"는 뜻의 "디다"의 명사형이지요. 그러니까 "마지기"는 "말 + 디기"가 되어 "말디기"가 되고 "ㄷ" 앞에서 "ㄹ" 이 떨어져서 "마디기"가 되고 다시 구개음화가 되어 "마지기"가 된 것입니다. 즉 "한 말이 떨어질 수 있는 땅" 즉 "한 말을 수확할 수 있는 땅"을 "마지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마지기"는 원래 한자로 "두락"(斗落)이었는데, 이것이 이두(吏讀)로 사용되어 오다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섬지기"는 "한 섬을 수확할 수 있는 땅"을 말하는 셈이 되겠지요.출처 : 우리말 이야기
막간(幕間)을 이용하다원래 `막간`은 연극 상연 도중에 막과 막 사이에 잠시 쉬는 시간을 말한다. 이 말이 `어떤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만우절"만우절"(萬愚節)이란 "만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날"이라는 뜻이랍니다.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통해 생활에 웃음과 여유를 가져 보자는 데 만우절의 참뜻이 있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맙소사
요즈음 젊은이들에게서 ‘오 마이 갓 !(Oh, My God!)’ 하는 말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쩌다 감탄사까지도 수입해서 쓰게 되었나 하고 씁쓸해 하면서도, 이 말을 우리말로는 무엇이라고 할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머나’ 나 ‘어머’ 로 번역하면 여성들만이 쓰는 감탄사로, ‘어라’로 번역하면 충청도 방언의 감탄사로 해석할 것 같은데, 외국 영화 자막에서는 ‘아이구, 저런!(또는 ‘이런’)’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구 저런’ 은 어처구니없는 남의 일을 보았을 때, 그리고 ‘아이구 이런’은 그런 일을 내가 당했을 때 내는 감탄사 같아서 아무래도 그 번역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이구, 맙소사!’또는 ‘하느님, 맙소사!’였다.
‘맙소사’는 분명히 감탄사다. 그런데 감탄사는 그 단어를 더 이상 분석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인데, ‘맙소사’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맙소사’ 는 어떻게 분석되는 것일까 ? ‘맙-+-소사’나 ‘마 -+-ㅂ소사’중에 하나일 텐데, ‘-소사’ 와 같은 어미는 없고, ‘-ㅂ소사’ 는 ‘줍소사, 오십소사’ 등에서처럼 쓰이어 결국 ‘마-+-ㅂ소사’로 분석될 것 같다. 그렇다면 ‘마 -’ 는 무엇일까 ? ‘마-’는 ‘-ㅂ소사’ 와 통합되는 것이니까 동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마다’ 라는 동사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마다’는 원래 ‘마다’가 아니라 ‘말다’에서 ‘ㄹ’이 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다’는 매우 특이한 동사이다. ‘않다’와 함께 ‘부정’ 또는 ‘그만두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두 동사는 그 사용 환경이 서로 상보적이다. 즉 ‘않다’가 쓰이는 곳에는 ‘말다’가 쓰이지 아니하고 ‘말다’가 쓰이는 곳에는 ‘않다’가 쓰이지 않는다. 서술형, 의문형, 감탄형 등에는 ‘않다, 않느냐?, 않는구나!’가, 그리고 명령형, 청유형에는 ‘않아라, 않자’가 쓰이지 않고 오히려 ‘말라, 말자’가 쓰인다.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여서 ‘말다 , 마느냐? 마는구나’등은 쓰이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명령이나 청유에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에는 어휘 선택에 신중하였던 것일까? 먹지 않는다(*말다). 먹지 않느냐(*마느냐)? 먹지 않는구나(*마는구나). 먹지 말아라(*않아라). 먹지 말자(*않자) 그런데 이 ‘말다’의 명령형에는 높임법의 여러 단계가 있는데, 해라체, 하게체, 하오체, 합쇼체, 하소서체에 따라 ‘말라, 말게, 마오, 맙소서’등이 쓰이었다. 특히 하오체 이상을 보면 ‘마르쇼셔(마르쇼서, 마르소서)/말으쇼셔, 마로쇼셔, 마라쇼셔/말아쇼셔, 마시오, 맙시오, 맙소, 마소, 마오’ 등이 쓰이었다. 그런데 ‘말라, 말게’등은 동사의 뒤에 통합되어 ‘하지 말라, 하지 말게’등으로 쓰이는데 비하여 존칭에서는 ‘하지 마오, 하지 맙소서’처럼 동사의 뒤에 붙어 쓰일 뿐만 아니라, ‘마오, 맙소서’처럼 동사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것이 동사의 명령형인 ‘마오, 맙소서’ 등이 감탄사로 변화하게 된 동기가 된다.
‘마오’를 감탄사로 독립된 올림말로 등재시킨 사전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 옛 문헌에서는 ‘마오’ 가 감탄사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춘향전에서 향단이가 거지가 되어 온 이몽룡을 보고 박대하는 월매에게 “앗씨 앗씨 큰 앗씨 마오 마오 그리 마오 멀고 먼 쳘이질의 뉘 보랴고 와겨관 이 괄셰가 웬 이리요”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는데 , 이때의 ‘마오 마오 그리 마오’는 ‘마오’가 독립적으로 쓰이고 또한 ‘그만두다’의 뜻을 가지면서도 감탄사의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원래 ‘않다’와 ‘말다’는 ‘~하지 않다, ~하지 말라’등으로 쓰이지만, ‘-하다’ 를 가진 동사들은 대부분이 ‘하지’를 빼고도 어근만을 사용하여 문맥이 이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염려 (원망, 말씀, 재촉 등)하지 않는다(말아라)’는 모두 ‘염려 (원망, 말씀, 재촉 등) 않는다(말아라)’로도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몇몇은 관용어처럼 쓰이어서 뜻을 변화시키고 있다. ‘말씀 마세요’는 ‘말씀을 하지 마세요’란 뜻 이외에 ‘놀라움’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하여튼 ‘말다’는 극존칭의 명령형에 ‘맙소서’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원래 ‘말 -+ -(-옵-) +쇼셔’로 분석되는 형태가 통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은 공손법의 선어말어미이고, ‘-쇼셔’ 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명령법 어미이다. 그래서 ‘말 + 쇼셔’는 ‘말 -’ 의 ‘ㄹ’ 이 탈락하여 ‘마 쇼셔’로 나타나고, 이들의 다른 표기들로서, ‘마 쇼셔 , 마옵쇼셔, 마옵소서, 마옵쇼서, 마옵쇼서’등이 나타난다. “ 말-+--(-옵-)-+-쇼셔>마(옵)쇼셔>맙쇼셔>맙소서>맙소사”등으로 변화한 것이다.
자네 어려올 쟉시면 아모리 지라도 됴토록 올 거시니 념녀 마쇼셔 <개수첩해신어(1748년)> 비록 졔가 교만 말을 지라도 부 노호여 마쇼셔 <인어대방(1790년)> 회시리니 너무 과도히 슬허 마옵쇼셔 <당죵젼 (19세기)> 드여 예수 구기 밋 업 구렁으로 드러가라 시지마쇼셔 더니 <신약전서(1900년)>
이러한 ‘마쇼셔’가 감탄사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와서의 일이다.
고 이 엇지나 마쇼셔 마쇼셔 하님도 이다지도 무심신가 고 고, 엇지면 됴탄말가? <약산동(19세기)>
그리고 ‘맙시사’나 ‘맙시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와서의 일이다.
가뜩이나 엄살을 부리는데다 더흉측을 떨며 ‘어이쿠! 어이쿠! 하나님 맙시사!’ <김유정, 따라지>
바늘도 몸퉁도 엄청나게 커 보이는 주사기였다. 세상에 맙소사. 아직도 콩꼬투리만밖에 안할 연약한 생명을 저렇게 무지막지한 걸로 공격을 하 다니.<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렇다면 ‘마쇼셔’가 단독으로 사용되어 감탄사처럼 쓰이면서 동시에 윗사람에게 ‘그만둘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 윗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것은 ‘신’일 것이다. 따라서 ‘맙소사’ 는 ‘신이여!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란 뜻이다. 그러니 ‘오 마이 갓’ 보다는 더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 마이 갓’보다는 ‘하느님 맙소사!’가 더맞을 것 같은데, 젊은이들에게 ‘오 마이갓’ 대신에 ‘하느님, 맙소사’를 쓰자고 제안하면 또 한번 젊은이들 입에서 ‘오 마이 갓’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6월 제71호
망나니
`성질이 못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 죄 지은 사람의 목을 베는 사람을 망나니라고 불렀으며, 주로 중죄인 중에서 뽑아 썼다. 따라서 망나니는 으레 성질이 포악하고 인상이 험악한 삶이 그 구실을 담당하게 마련이었다.
이런 연유에서 생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망나니가 지금은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그 의미가 변하였다. 아울러 말이나 행동을 막되게 하는 것을 `망나니 짓`이라고 하기도 한다.
망나니의 어원은 `막 + 낳은 + 이`로 풀이할 수 있다. `막`은 `막되다`라는 뜻도 있고, `끝`이라는 뜻도 있다. 막되게 낳은 아이란 뜻에서 `망나니`가 갈라져 나왔다면 막둥이로 낳은 아이란 뜻에서는 `막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흔히 막내둥이가 망나니처럼 버릇없이 구는 것으로 보아서도 두 낱말의 어원이 같은 말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맞장구치다
풍물 놀이를 할 때 둘이 마주서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는 장구를 맞장구라고 합니다. 맞장구를 치려면 서로 호흡이 맞아야 틀리지 않고 잘 치겠지요. 그래서 남의 말에 동조하여 같은 말을 하거나 부추기는 것을 맞장구 친다고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매무새
우리가 옷깃을 여미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고 할 때 쓰는 `매무새`라고 한다. 우리는 옷차림이나 맵시를 그냥 `매`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다른 명사에 붙은 접미사로 맵시나 생김새를 뜻하기도 한다. `매무새`라는 말은 끈을 `맨다`는 뜻의 어근 `매`와 다발로 묶는다는 뜻의 어근 `뭇`이 결합할 때에 명사화 접미사가 결합하여 `매(結)+뭇(束)+애(接尾) > 매무새`또는 `매+뭇+이 > 매무새`라는 어형을 이룬 것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먹통`
바보, 멍청이`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마음이 검어서 챙겨서는 안 될 재물을 마구잡이로 챙기는 사람을 이르는 곁말이기도 하다. 목재, 석재 등을 자르거나 다듬기 위해 줄을 긋는 데 쓰는 도구로서 먹통이라는 것이 있다. 나무를 후벼 파서 두 개의 그릇 모양으로 만들고, 한 쪽엔 먹물에 적신 솜을 넣어 두고 다른 한 쪽엔 먹줄을 감아 놓아 그 줄이 먹그릇을 통해서 나오도록 되어 있다. 먹통이 지니고 있는 `까맣다`라는 이미지를 빌려다가 주로 말이 안 통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경멸할 때 쓴다. 또 한 가지 뜻은 사람의 마음이 검어서 남의 재물을 마구 챙기는 사람을 먹통이라고도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멍텅구리
`멍청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멍텅구리는 본디 바닷물고기 이름인데, 못생긴 데다가 굼뜨고 동작이 느려서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판단력이 약하고 시비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멱살을 잡다
`멱`은 목의 앞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멱살은 목의 앞쪽 살을 말한다.
흔히 싸움이나 시비가 붙을 때 상대방 웃옷의 깃을 잡을 때 `멱살을 잡는다`고 한다. 멱살이 본래는 목의 앞쪽 살을 가리키는 신체부위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면목(面目)'
낯, 체면, 남에게 드러낼 얼굴' 등을 가리키는 말인 '면목(面目)'은 불교에서 전래한 말로, 본래의 참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면목은 사람마다 다른 게 아니고,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면목을 지킨다', '면목이 선다'라는 말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고 지킨다, 불성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모꼬지
‘모꼬지’는 대학가에서 ‘서클’을 ‘동아리’로 바꾸고, ‘모임’도 ‘모꼬지’란 예스런 말로 바꾸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어 쓰인 어휘다. ‘모꼬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로 풀이되어 있다. ‘모꼬지’는 최근에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다. 이미 『한불자전』(1880년) 『한영자전』(1890년), 『국한회어』(1895년)에 ‘못거지’로 등록되어 있고,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1920년)에도 역시 ‘못고지’가 ‘연회’(宴會)의 뜻으로 실려 있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부터 ‘모꼬지’로 나타나는데, 이 ‘모꼬지’는 조선어학회의 『큰사전』(1947년-1957년), 이희승의 『국어대사전』(1961년) 등에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그래서 20세기의 30년대부터 ‘못거지’나 ‘못고지’가 ‘모꼬지’로 변화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끔 ‘목거지’로도 나타났는데,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의 ‘마돈나 지금은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야 돌아가려는도다’의 ‘목거지’의 해석을 놓고 설왕설래한 적이 있음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못거지’나 ‘못고지’든 또는 ‘모꼬지’든 이 단어가 ‘모임’을 뜻하던 우리 고유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이것이 더 이상 작은 단위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못고지’나 ‘모꼬지’를 기껏해야 ‘모+꼬지’로 분석하거나 ‘모+ㅅ+고지’ 등으로 분석하려고 할 것 같은데, 이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모꼬지’ 이외에 ‘먹거지’란 단어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벌이는 잔치’란 뜻으로 실려 있어서, ‘모꼬지’를 ‘먹다’와 연관된 ‘먹+거지’로 분석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현진건의 『무영탑』(1938년-1939년)에는 ‘모꼬지’와 ‘먹거지’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의 ‘먹거지’는 작가가 ‘모꼬지’를 ‘먹다’와 연관시켜 의도적으로 표기한 것이거나, 아니면 편집인이 ‘모꼬지’의 뜻을 모르고 ‘먹거지’로 잘못 고친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어서, ‘모꼬지’를 ‘먹+거지’로 분석한 것은 잘못인 셈이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먹거지’를 사전에 등재시킨 것도 물론 잘못이다. 여하튼 ‘모꼬지’는 ‘먹거지’의 변화형도 아니다.
금성의 사랑에는 거의 밤마다 먹거지가 벌어졌다. / 혼인날에도 다른 제자보다 오히려 더 일찍이 와서 모든 일을 총찰하였고 모꼬지 자리에서도 가장 기쁜 듯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즐기었다.<현진건의 ‘무영탑’(1938-1939)>
‘모꼬지’는 16세기의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형태는 ‘몯지’였다.
두 마 리 婚姻 몯지예 녀러 와셔 王涯 더브러 닐오 <번역소학(1517년)> 쇽졀업시 몯지 녀름지이 힘스믈 버거 노라 <정속언해(1518년)> 복기 매 이바디 몯지예 가디 아니터라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몯지’는 ‘몯- + -지’로, 그리고 ‘-지’는 다시 ‘- + -이’로 분석된다. 그러니까 ‘몯- + -’이란 복합어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몯지’가 된 것이므로 이것은 ‘(몯- + -) + -이’의 구성을 보이는 셈이다. ‘몯-’은 ‘모이다’의 뜻을 가진 동사 ‘몯다’의 어간이고 ‘’은 ‘갖추다, 구비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다’의 어간이다.
諸侯ㅣ 몯더니 <용비어천가(1447년)> 다 내게 리라<능엄경언해(1462년)>
동사의 두 어간이 합친 복합어 ‘몯-’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몯)+이’가 된 것인데, 표기상으로 ‘몯지’가 된 것이다. 그 뜻은 ‘모이고 갖추는 것’이란 의미일 것이다. 이 ‘몯지’는 ‘죽사리’처럼 ‘(죽+ 살-) + -이’의 구성을 가진 것인데, ‘죽사리’는 ‘죽살다’란 동사가 보이는 반면에, ‘몯지’는 ‘몯다’란 동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몯지’의 성조가 모두 평성인 점이 ‘몯다’와 ‘다’의 ‘몯-’과 ‘-’의 성조가 모두 평성인 점과 그대로 일치하므로 의심할 여지는 없다. ‘몯다’에 해당하는 동사는 오히려 명사인 ‘몯지’에 ‘다’를 붙여 만든 ‘몯지다’가 대신하였다.
이튼나 손이 친히 가샤 례라 믈읫 몯지호매 다 동 사이어든 나 례로 안 잡류엣 사이어든 나 호로 안 말라 <여씨향약언해(1518년)>
이 ‘몯지’는 17세기 초까지 쓰이다가 ‘몯’의 ‘ㄷ’이 ‘ㅅ’으로 표기되어 ‘못지’가 되었는데, 이 형태는 18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다. 18세기에는 어중이 된소리가 되어 ‘못지’가 등장하여 쓰이기도 하였다. 한편 이 ‘못지’는 ‘지’의 ‘’가 앞의 음절 ‘못’의 원순모음의 영향을 받아 원순모음인 ‘고’로 변화하게 된다. 그래서 18세기에는 ‘못지’는 ‘못고지’로도 변화하였고 모음변이를 일으켜 ‘못거지’로도 변화하였다. 그리고 ‘못고지’가 어중에서 된소리로 되어 ‘못지’가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모꼬지’로 변화한 것이다. ‘못고지’가 마치 ‘못거디’가 구개음화되어 이루어진 형태인 것처럼 인식되어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못거디’나 ‘못고디’나 ‘못디’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러 음운변화와 표기의 변화로 말미암아, ‘몯지’는 ‘못지, 못고지, 못거지’로 또는 ‘못지, 못지’ 또는 ‘못디, 못디, 못고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다가 19세기 말에 ‘못거지’와 ‘못고지’로 되었다가 20세기에 와서 ‘모꼬지’로 통일된 것이다. 그 다양했던 표기의 몇 가지를 보이도록 한다.
法에 남잡히 허비야 못지야 술먹이홈이 罪 잇니라 <경민편언해(1658년)> 념 쳥 비변 몯고지로 가겨서 오후 오시니 남참봉 채쳠디와 약쥬 시다 <병자일기(1636년)> 오날 이 못고지가 우연티 안이 일이 잇소 <원앙도(1908년)> 못거지(會) <한불자전(1880년)> 이 못지 가히 다시 닐외디 못디라. <형세언(18세기)> 공 왕손의 못디와 태슈 현녕의 잔예 동으로 보이고 <구운몽필사본(19세기)>
결국 ‘모꼬지’는 ‘모이고 갖추는 일’, 즉 ‘모임을 갖추는 일’을 뜻하는 ‘몯지’가 음운변화를 일으켜 여러 단계의 형태로 나타나다가 오늘날의 ‘모꼬지’로 정착한 것이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5년 2월호
모내기
옮겨 심기 위해 가꾼 어린 벼를 가리키는 `모`는 본래 한자어 `묘(苗)`에서 나왔다. `묘`는 `묘종` `묘목`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풀이나 나무의 어린 싹을 가리키는 말이다.
풀이나 나무의 어린 싹을 가리키는 `묘`가 `모`로 소리가 바뀌면서 `벼의 묘`만을 가리키는 말로 한정되어 쓰인다. 벼 이외의 `모`를 가리킬 땐 `고추모`나 `오이모`처럼 해당 농작물의 이름을 앞에 명시해주는 반면에, 홑으로 `모`라는 말을 쓸 때는 `벼`의 모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는 여러 모종 중에서도 벼 모종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목대잡다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지휘하여 일을 시키다`는 뜻이다.
목대는 멍에 양쪽 끝 구멍에 꿰어 소의 목 양쪽에 거는 가는 나무를 말하며, 아래는 어긋맞게 가슴걸이로 맨다. 목대를 잡고 소를 부리듯이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목대 잡아 일을 시키는 사람을 `목대잡이`라고 부른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목적
공작새 깃털에 있는 `눈 모양의 과녁`을 가리켜 생긴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무꾸리
무당이나 판수에게 길흉을 알아보는 일을 `무꾸리`라 한다. 굿을 할 때 각각의 마당을 부정거리·칠성 제석거리·대감거리·성주거리·장군거리 등으로 부르는데, 무꾸리는 `묻는+거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점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무당이나 판수처럼 신을 모시는 사람에게 길흉을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무녀리`언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못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짐승의 한 태(胎)에서 나온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한다. 무녀리는 비로소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의 `문열이(門+열+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제일 먼저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유난히 비실비실하고 몸이 허약하다고 한다. 이에 빗대어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무동 태우다`
사람을 목 뒤로 올려 태우다`의 뜻이다. 농악에서 여자 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사람 어깨 위에 올라 서서 아랫사람이 춤추는 대로 따라 추는 놀이가 있었는데, 이 때 어깨 위에 올라선 아이를 `무동(貿童)`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 태우는 것을 `무동 태우다`라고 하게 되었다. 같은 뜻을 지닌 순 우리말로는 목 뒤로 말을 태우듯이 한다고 해서 생겨난 `목말 태우다`라는 말이 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무명
목면을 일컫는 무명은 그 이름의 유래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과 닿아 있다.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왔을 때 왕이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들었던 대로 `무미엔`이라 했다. 무미엔은 목면의 중국식 발음이다. 이 `무미엔`이라는 발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비슷한 발음이 나는 한자 `무명(武名)`으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은 오로지 소리만 의미가 있을 뿐, 한자의 뜻은 전혀 없는 글자이다. 목화에서 얻은 무명실로 재래식 베틀기로 짠 면직물을 `무명`이라 한다. 무명은 광목, 옥양목, 서양면 등과는 그 종류가 다른 우리나라만의 토속 직물로서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쓰인 옷감과 이불의 재료였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무쇠
본래 수철(水鐵)이라고 불리던 무쇠는 `물쇠`에서 나온 말로서 무른 쇠라는 뜻이다. 무쇠는 강철보다 무른 쇠로서 탄소나 규소 따위가 들어 있는 철합금이다. 검은 빛깔에 바탕이 연하며, 강철보다 쉬 녹아서 생활용품 따위를 주조 하는 데 널리 쓰인다. 썩 강하고 굳센 것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이는 덕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무쇠를 매우 강한 쇠로 알고 있다. 그러나 쇠 중에서 가장 강한 쇠는 선박이나 교량 등에 쓰이는 강철이지 솥이나 그릇 등에 쓰이는 무쇠가 아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무좀, 물좀, 좀
아마 무좀에 한번쯤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로 발가락 사이에 잘게 물이 잡히는 부스럼이지요. 혹시 이 말을 외래어로 아시고 계신 분은 안 계신지요?
"좀"의 뜻은 아시지요? "좀"은 벌레 이름입니다. 보통은 "좀벌레"라고 하는 것인데, 나무, 곡식, 옷, 종이 따위를 쏘는 벌레의 하나입니다. 저는 아직도 고서 속에 생기는 이 좀벌레를 없애기 위해 "좀약(나프타린)"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좀"의 "무"는 무엇일까요?
"물좀"이 "ㅈ" 앞에서 "ㄹ"이 탈락한 것입니다. 즉 물집이 생기도록 하는 좀벌레란 뜻입니다. "좀"은 "좀이 쑤신다"처럼 참고 기다리지 못하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앉았다 섰다 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이지요. 그만큼 "좀"이 몸을 쑤시면, 가려워서 견디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좀도둑"의 "좀"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좀(쫌)스럽다, 좀(쫌)팽이, 좀(쫌)상스럽다, 좀(쫌)생원"의 "좀"으로, "조금"의 준말로 쓰이는 것입니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무지기
`치마 속에 입는 짤막한 통치마`를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이 명절이나 잔치 그 밖의 예절 때에 주로 입는 옷으로 1,3,5,7의 홀수로 입는데, 이 수에 따라 삼합(三合) 무지기, 오합 무지기, 칠합 무지기, 연봉 무지기의 이름이 붙는다. 끝을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이며, 가장 긴 것이 무릎 아래에 이르고 차차 짧아지므로 다 입으면 무지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묵찌빠
`묵찌빠`의 어원이 일본말이라는 근거는 나와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사전에 `묵찌빠`는 `가위바위보`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묵`은 `바위`에, `찌`는 `가위`에, `빠`는 `보`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나와 있을 뿐 그것의 원어라든지, 어원에 관해서는 제시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추정해 볼 때, 일본어 `장껜뽀`는 우리말 `가위바위보`이며,일본어 `구찌빠`는 우리말 `바위가위보`인데,
`구`가 `묵`으로 변한 말은 분명치 않고, `찌`는 `조끼`의 변말 같습니다.출처 : 국립국어연구원
물레
솜으로 실을 잣는 재래식 기구인 `물레`는 우리나라에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의 손자 `문래(文來)`에서 나온 이름이다. `문래`가 목화에서 씨를 뽑는 기계인 씨아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실을 잣는 기구를 `물레`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실을 잣는 기구인 물레는 그 훨씬 이전인 김해토기에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물레`는 솜이나 털을 자아내서 실을 만드는 간단한 수공업 도구이다. 다른 말로는 `방차(紡車)`라고 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물레방아
곡식을 찧는 기구인 `방아` 중에서도 흐르는 물로 수차를 돌려서 그 힘으로 방아를 찧는 것을 `물레방아`라 하는데 그 모양이 실을 잣는 기구인 `물레`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들 `물레방아`를 물을 돌려 방아를 찧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있으나, 물레방아라는 이름은 흐르는 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름이다. 방아를 찧게 하는 기구인 수차의 모양이 마치 아녀자들이 실을 잣는 데 쓰는 `물레`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나온 이름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미루나무
`버들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를 뜻한다.
미루나무는 북미 원산으로 강변이나 밭둑 또는 촌락 부근에 풍치목으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유럽 원산인 포플러와 비슷하나 그것에 비해 어린 가지에 날개줄이 있는 게 다르며, 가지도 다소 옆으로 퍼지며 자란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잎은 거의 세모진 알모양이고 가에 둔한 톱니가 있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며, 용도는 젓가락, 성냥개비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들이라는 뜻엣 `미류(美柳)나무`라 했던 것이 차차 `미루나무`라는 발음이 일반화됨으로써 표준어 사정에서 `미류나무` 대신 `미루나무`로 바뀌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미리내, 미르
미리는 옛말 "미르"에서 온 말인데, 용이란 뜻입니다. "내"는 개울이나 시내를 뜻하고. 미리내는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용이 살만한 곳은 은하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하수가 마치 강이나 시내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은하수를 "용이 사는 시내" 곧 미리내라고 부른 것입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미망인
본디 생겨났을 때의 뜻과는 다르게 지금 쓰이는 말들이 있다. 말에도 생명이 있는 것이므로 세월의 흐름 따라 뜻에 가지를 쳐가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잘못 가지쳐서 쓰이는 사례도 없지 않다. 우리가 흔히 쓰고 듣는 "사모님"의 경우도 그렇지만 "미망인"(未亡人)이란 말도 그 경우이다.
"미망인"이란 말은 한자의 뜻으로 새겨 본다 해도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 된다. 그 뜻 그대로 이 말의 시작은 아직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칭이었다.
「좌전」(春秋左氏傳)에 이런 얘기가 있다.초(楚)나라 영윤(令尹:재상)인 자원(子元)이 돌아간 문왕(文王)의 부인을 유혹할 양으로 부인의 궁전 옆에 자기 관사를 짓고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만들었다는 만(萬)이라는 춤을 추게 하며 풍악을 울렸다.이에 문왕 부인이 말했다.
"선군(先君)은 이 무악(舞樂)을 군사 훈련 때에 한해서 썼다. 이제 영윤이 이것을 원수 갚는 일에 쓰지 않고 이 미망인 옆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부인의 시종(侍從)이 이 말을 자원에게 고했다. 자원도 여기서 마음을 돌려 수레 6백대를 끌고 정(鄭)나라로 쳐들어간다.미망인이란 말은 여기에 처음 나온 것인데 과부가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고 있다. 「좌전」에는 그 밖에도 몇 군데 더 이 말이 쓰이고 있지만 어느 것이고 죽은 남편을 생각해서 자신을 낮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냄새까지 깔린 말이고 보면 더 더구나 오늘의 쓰임에서는 생각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목숨이라는 자칭을 남이 쓴다고 할 때는 사실 말뜻이 이상해진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죽었는데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소" 하는 힐책(詰責)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누구누구의 미망인이 타계했다고 하는 기사는 "제 남편이 죽었는데도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더니 이제야 눈을 감았군"하는 이죽거림을 곁들인다고도 할 것이다.물론 말은 현실에서의 쓰임이 중요하다. 그렇게 근본을 따지기로 들자면 잘못 쓰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과부"를 높이면서 쓰고 있는 "미망인"을 굳이 탓할 게 있느냐는 말도 그래서 나올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망인"의 경우는 근본을 캐보자니 상대방에게 너무 실례가 되어서 걸린다. 일반적으로는 "미망인" 할 데에 "부인"(夫人)으로 갈음한다 해서 잘못됐달 것이 없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미숫가루
미숫가루는 쪄서 말린 쌀가루나 보릿가루를 뜻하는 `미시`와 `가루`가 합쳐진 말이다. `미시` 자체가 쪄서 말린 가루를 뜻하므로 `미숫가루`는 `가루`라는 같은 말이 중복된 것으로서 `역전 앞`과 같은 경우라 하겠다. `미시`는 『훈몽자회』에 `초`라고 나와 있다. 찹쌀, 멥쌀, 보리쌀 등을 볶거나 쪄서 맷돌에 갈아 고운 체에 쳐서 만든 가루를 말한다. 미싯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불리다가 맞춤법 개정안에 의해서 `미숫가루`로 확정 되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미어지다
종이나 천이 압력을 받거나 팽팽하게 당겨지면 그 압력 때문에 터져서 구멍이 뚫리거나 틈이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오늘날에 이 말은 사물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꽉 차서 터질 것 같은 일반적인 상황에 두루 쓰고 있다. 주로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많이 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미역국 먹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요즈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래는 미역국은 애기를 낳은 산모가 먹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요? 아직까지 이 말의 원래 뜻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있습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원래 취직자리에서 떨어졌을 때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도 유래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解散)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解産)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解産)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解散)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취직자리가 떨어진 것과 시험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미역국을 먹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요즈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래는 미역국은 애기를 낳은 산모가 먹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요? 아직까지 이 말의 원래뜻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있습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원래 취직자리에서 떨어졌을 때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도 유래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解散)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解産)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解産)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解散)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취직자리가 떨어진 것과 시험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이 설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니,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미장이
‘미장이’란 건축 공사에서 벽이나 천장, 바닥 따위에 흙, 회, 시멘트 따위를 바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을 뜻하는 말이므로 ‘미장이’는 ‘미장’과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쉽게 분석할 수 있다. ‘미장’도 언뜻 보기에 한자어로부터 왔을 것 같은데, 어느 국어사전도 한자 표시를 한 것이 없는 걸 보니, 한자어로 해석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미장이’란 단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자어가 아니라면, ‘미장이’가 흙손 따위로 흙을 ‘밀어서 바르기’ 때문에, ‘미장이’의 발생을 ‘밀-(推)+-장이’로부터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밀장이’의 ‘밀-’이 ‘ㅈ’ 앞에서 ‘ㄹ’이 탈락하여 ‘미’가 되어 ‘미장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미장이’는 벽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美)(아름다울 미)에 ‘욕심장이’ 등의 ‘-장이’가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 역시 억지로 한자에 연관시킨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머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나, 벽면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미장이’는 ‘미장원’(美粧院)의 ‘미장’(美粧)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도 있는데, 이것 역시 원래의 ‘미장이’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미장이’의 어원은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는 너무나 엉뚱하다. 옛날에는 진흙으로 벽면을 바르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미장이’는 원래 ‘니’(泥, 진흙 니)에다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천한 직업인을 뜻하는 한자어 ‘장’(匠)이 붙은 ‘니장’(泥匠)에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다. 그래서 ‘미장이’는 ‘니장이(泥匠이)’나 ‘니쟝이’라고 하였다.
泥匠이와 두 조역을 블러다가 이 炕壁을 整治쟈(叫一箇泥水匠和兩箇坌工來)<박통사언해(1677년)> 네게 흙손과 흙밧기 잇냐 연장이 업면 므 泥匠이라 혜리오(沒家事時算甚麽泥水匠)<박통사언해(1677년)> 니쟝이(泥水匠)<역어유해(1715년)>
이 ‘泥匠이’가 오늘날의 ‘미장이’와 같다는 사실은 ‘흙속’과 ‘흙받이’가 없으면 ‘泥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미장이’의 초기 출현형은 ‘泥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18세기 초 이전에는 ‘미장이’나 ‘미쟝이’등의 단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18세기 초까지 ‘니쟝이’로 출현하다가 18세기 중기에 와서 이들은 모두 ‘미쟝이’로 변화한다. ‘미장이’를 뜻하는 한문 원문인 ‘이수장’(泥水匠)에 대한 번역이 ‘니쟝이’에서 ‘미쟝이’(또는 ‘미장이’)로 변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미쟝이’를 ‘니쟝이’의 변화형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앞의 『박통사언해』(1677년)와 동일한 문맥에서 ‘泥匠이’가 그 후대의 문헌인 『박통사신석언해』(1765년)에서는 ‘미쟝이’로 출현한다는 점에서 ‘泥匠이’가 ‘미쟝이’로 변화한 것을 확언할 수 있다.
미쟝이와 두 조역을 불러와 됴히 이 캉을 收拾쟈<박통사신석언해(1765년)> 네게 흙손이 잇냐 내게 이 연장이 업스면 므슴 미쟝인 쳬 리오<박통사신석언해(1765년)> 미쟝이(泥水匠)<방언유석(1778년)> 미쟝이(泥工)<광재물보(19세기)> 미장이 土役匠<한불자전(1880년)> 미장 泥匠<국한회어(1895년)> 아비 무삼 일을 하나냐 쇼 잡는 백장이냐 밧가라 먹는 농부한이냐 낙시질 하는 어부이냐 토담 싸는 미장이냐<림화졍연(19세기)> 팔계 나무들을 슈젼고 사승으로 셕슈와 미장이을 겸면 즉의 조흔 암를 지어리이다<셔유긔(19세기)> 목수나 미장이 한 사람도 대지 않고<상록수(1935년)>
그렇다면 왜 ‘니쟝이’에서 ‘미쟝이’로 변화한 것일까? 쉽게 생각하면, ‘니쟝이’를 잘못 발음하면 ‘미쟝이’가 될 수 있으니, ‘니쟝이’의 잘못된 발음이 ‘미쟝이’로 굳어져서 그 전에 없었던 ‘미쟝이’란 단어가 생긴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추정 이외에 사역원(司譯院)에서 신이행(愼以行) 등이 만든 중국어 어휘사전인 『역어유해』(1715년)란 문헌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우리에게 중요한 암시를 던져 준다. 즉 ‘니만’(泥鏝)을 ‘쇠손’으로 풀이하고서는 그 주석에 ‘泥俗呼미’, 즉 ‘泥’는 속음으로 ‘미’라고 한다는 기록, 마찬가지로 ‘화니’(和泥)를 ‘ 닉이다’로 풀이하고 그 주석에서 ‘泥或作미’, 즉 ‘泥’를 혹 ‘미’라고도 한다는 기록, 마찬가지로 ‘퇴니’(退泥)를 ‘ 미다’로 풀이한 후 그 주석에서도 ‘泥或呼미’라고 한 기록 등이 그러한 암시를 준다. 모두 한자 ‘泥’에 대한 주석인데 한결같이 ‘泥’(중국음 ‘니’)를 ‘미’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석은 우리나라 한자음을 설명한 것은 아니다. 중국 한자음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鳥俗呼’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鳥’의 중국음에 ‘’라고도 한다는 것이며, ‘肺俗呼’는 ‘肺’를 중국음에서 ‘’로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니쟝이’의 ‘泥’(니)가 중국음에서 ‘미’로도 읽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어에서 ‘니쟝이’와 ‘미쟝이’가 거의 음상으로는 비슷하여 잘못 발음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중국음에서 ‘泥’를 ‘미’라고 발음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泥’의 중국음의 영향으로 ‘니쟝이’가 ‘미쟝이’로 변화하였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후자의 해석이 더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나라에서 ‘泥’가 모두 ‘미’로 변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미장이’는 처음에 ‘진흙’을 뜻하는 ‘니’(泥)에 전문적인 직업을 나타내는 ‘장’(匠)이 붙어 ‘니장’(泥匠)이 되고, 여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가 붙어 ‘泥匠이’가 된 것인데, 이 ‘泥’의 중국어 속음인 ‘미’의 영향을 받아 ‘니쟝이’가 ‘미쟝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니쟝’(또는 ‘泥匠’)은 사라지고 ‘미장’은 그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5년, 8월호
미주알고주알
꼬치꼬치 캐는 것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캔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조금쯤 끈질기고도 치밀한 느낌이 곁들여 있다. 하여간 뿌리를 캐도, 잔뿌리까지 깡그리 캐 버린다는 생각이다.
"아 글쎄, 처음 만난 처지에 그게 뭐야? 신상 조서라도 받는 것같이 미주알고주알 캐지 않아? 난 거기 딱 질렸어. 대답은 보나마나 노! 야.""미주알고주알 캐 보라지, 내게 뭐, 구린 데 한 군데나 있는지 말야."
도대체 "미주알고주알"이란 뭐냐. 본디 "미주알"이라는 말은 있다.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어쨌든 남의 항문까지 조사한다는 것이니, 이거, 아편 밀수 때에나 생겨난 말이었던 것인지 어떤지.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고주알"이란 또 뭐냐 하는 거다. 그냥 "미주알 캔다"해도 될 걸 가지고 왜 거기 "고주알"이 붙느냐는 거다. 이에 대해서는, "고조(高祖)알->고주알"이라고 말하는 이를 보았다. 고조할아비까지 캔다는 생각에서였으리라. 그런데,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캔다"는 말이 있다. 이에서 살필 때, "밑두리"는 "미주알"과 통한다 싶고, "콧두리"는 "고주알"과 통한다 싶기도 하다. "코"의 옛말은 "고"여서, "고주알"이라면 콧속에 있는 그 알맹이같이 도드라져 있는 것이라도 가리키는 우리말인 것을, 우리가 지금 깜박 잊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가정해 본다면, 두 곳이 다 꾸끔스러운 곳으로 되어, 그런 곳까지를 파려 드는 것이 미주알고주알 캐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왕 "미주알고주알"에 대해서 그야말로 미주알고주알 캐기로 나선 것이니까 한 번 더 되짚어 생각해 본다면 "미주알"이나 "고주알"같은 말에 특별한 뜻이 없는 채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또, "미주알"에는 뜻이 있었다고 해도, "고주알"에는 별 뜻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울긋불긋"·"울퉁불퉁"·"생게망게하다"·"티격태격"·"올망졸망"·"옹기종기"·"곤드레만드레"……처럼 별 뜻이 없이 운율(韻律)만 맞추어 나간 짝씨(疊語)들과 같이 생각할 수 있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리말의 생리를 더듬으면 재미있다. 가령 노인네를 욕하면서 "영감 땡감……"하는 경우를 보자. "땡감"에 "떫은 감"이라는 뜻이 특별히 있다고도 생각되겠지만, 그냥 "감"과 운을 맞춘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끝도 가도 없다", "듣도 보도 못한다", "눈치코치" 같은 말은 뜻을 가지면서 운을 맞추려 한 흔적을 보여 준다. 그러나 부부를 낮춰 이를 때의 "가시버시"는, "벗"이 친구 또는 "숯불 피울 때 밑불에 닿는 숯"을 이른다고는 해도, "버시"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 같지 않고, "의지가지 없다" 할 때의 "가지"에도 역시 특별한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민며느리
`앞으로 며느리 삼으려고 민머리인 채로 데려다가 기르는 계집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에 시집 안 간 처녀를 미리 데려다 기르며 일을 시키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며느리를 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것을 `민며느리`라고 한다. `민`이란 아무 꾸밈새나 덧붙여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다. 그리고 민며느리라고 하면 `민머리`인 채로 데려 온 처녀를 말한다. 민머리는 쪽을지지 아니한 머리를 뜻하므로 시집 안 간 처녀를 이르는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밑천
밑천은 바탕·근본을 나타내는 `밑` 돈을 뜻하는 `전(錢)`이 합쳐진 밑전에서 나온 말로서, 장사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본, 곧 돈을 뜻하는 말이었다.
오늘날 이 말은 반드시 자본금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 밑바탕이 되는 재능이나 돈·기술 등을 가리킨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바가지
바가지는 둥글게 열리는 한해살이 식물인 `박`에 작다는 뜻을 가진 접미사 `아지`가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이다. 그러므로 `바가지`란 박을 두 쪽으로 쪼갠 작은 박이란 뜻인데, 주로 물을 푸거나 무엇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박아지`가 연음되어서 `바가지`로 소리가 변했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바가지를 만드는 재료에도 일대 변화가 일어나서 오늘날은 진짜 박으로 만든 바가지보다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 널리 쓰이고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바가지 긁다
`잔소리를 늘어 놓다`는 뜻이다. 옛날에 쥐통(괴질-콜레라)이 돌아다닐 때에 귀신을 쫓는다 하여 바가지를 득득 문지르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듣기 싫다는 공통성으로 인해 흔히 아내가 남편에게 경제적 불평 따위를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바가지 쓰다
`바가지 쓰다`는 `손해 보다, 피해를 당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 다. 조선말 개화기 이후에 중국에서 `십인계`라는 노름가 들어왔습니 다.이 노름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엎어 놓은 뒤 에 물주가 어느 수를 대면 그 수가 적힌 바가지에 돈을 댄 사람 은 못 맞춘 사람의 돈을 모두 가지며, 손님이 못 맞출 때에는 물 주가 다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가지에 적힌 수를 맞추지 못할 때에는 돈을 잃기 때문 에 손해를 보는 것을 `바가지 썼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바늘방석말
그대로 바늘이 자리잡고 앉는 방석을 말한다. 요즘은 흔히 바늘꽂이라고도 부르는데 원래 명칭은 바늘방석이다. 바늘방석은 바늘을 꽂아두는 물건으로서 속에 솜이나 머리카락을 넣어 만든다. 바늘이란 물건은 워낙 조그맣고 가늘어서 자칫 간수를 잘못하다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분실을 방지하느라 따로 바늘을 꽂아두는 작은 물건을 만들어서 거기에 꽂아두고 쓰곤 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본래의 뜻은 아주 없어지고, 바늘의 뾰족한 부분이 위로 꽂혀 있는 무시무시한 방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떤 자리에 그대로 있기가 몹시 거북하고 불안할 때를 가리켜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바둑
우리 나라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라고 생각된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高句麗傳)의 "바둑과 투호(投壺) 놀이를 즐긴다"라는 기록이다. 「후주서」(後周書) 백제전(百濟傳)의 "투호·저포(樗蒲) 따위 놀이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바둑을 즐긴다"같은 기록들이 그를 말해 준다.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백제와 교류가 있은 뒤, 즉 삼국 시대 중기 이후가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바둑을 "奕"(혁)으로도 썼으나, 그것은 양자강(揚子江) 부근의 방언이었을 뿐 원래는 "위기"(圍棋)라고 썼던 것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排子"(배자)라는 글자로써 "바둑"을 나타냈다. "배자"는 화점 포석을 뜻하는데,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우리 고유의 포석 방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여기서의 "子"는 "돌" 또는 "독"의 뜻을 가졌고 거기에 "排"를 합치면 "배돌"·"배독"이 도는 것인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배돌→바돌→바독→바둑"같이 되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排子"라는 표기 시절에 벌써 "圍棋"라는 중국 표기에 대해 우리는 "배돌"같이 실제의 언어 생활을 했고 그 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排子"라 썼다고 거꾸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법하다.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바둑이
"너는 털에 무늬가 있으니 반호(槃瓠, 전설상의 개)의 자손인가, 민첩하고 총명하니 오룡(烏龍, 개이름)의 후예인가.... 주인을 그리는 너의 정성이 사랑스럽고, 문을 지키는 책임이 대견스럽구나. 나는 이 때문에 너의 용맹을 가상히 여기고, 너의 뜻을 사랑하여 집에 두고 총애하며 기른다. 너는 비록 천한 짐승이나 북두성의 정기를 받았으니, 그 영특함과 지혜로움이 어느 동물이 너와 같겠느냐."
고려 때 이규보 선생이 지은 [바둑이에게 주는 글] 의 일부분입니다.
"털에 검은 점과 흰 점이 섞인 개"를 바둑이라 합니다.흰 돌, 검은 돌로써 즐기는 오락에 바둑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생긴 바둑은 {논어(論語)}의 "바둑을 두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란 공자의 말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우리 나라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라 합니다. 이 바둑을 중국에서는 혁(奕)으로 썼는데, 이는 양자강 부근의 방언으로 원래는 위기(圍棋)라 했습니다. 이 바둑을 우리 나라에서는 배지(排子)라고도 했습니다.바둑에서는 희돌과 검은돌을 백지(白子), 흑지(黑子)라고 읽고 있는데 "지(子)"는 돌의 방언인 독을 뜻합니다.배지(排子)는 "배돌(배독)"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이 바돌(바독)>바독>바둑으로 변해 온 것입니다.흔히 부르는 개이름인 바둑이 는 바둑에서 온 것입니다. 즉, 흰 점과 검은 점이 섞인 개만을 바둑이라고 불러야 바릅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바라지
`일을 돌봐 주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라지`는 원래 불교 용어로 절에서 영혼을 위하여 시식할 때에 시식법사가 앉아서 경문을 읽으면 그 다음의 경문을 받아서 읽는 사람 또는 그 시식을 거들어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무속에서는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등지의 무당 노래에서 으뜸 무당이 부르는 노래 사이사이에 뜻 없는 말로 받는 소리를 일컬어 바라지라고 하기도 한다.그 후 바라지가 일상용어로 자리잡게 되면서 뒤에서 일을 돌봐 준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런 뜻에서 자식 바라지, 옥바라지, 뒷바라지 등의 말이 생기게 되었다. #시식(施食)- 부모나 그 밖의 외로운 혼령을 위해 음식을 올리며 경전을 읽는 일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바람맞다
원래 "바람맞다"라는 말은 중풍에 걸렸다는 것을 뜻한답니다. 중풍(中風)의 풍(風)이 바람을 뜻하는 한자말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그런데 중풍에 걸리면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비참한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남에게 속거나 약속이 어그러졌을 때의 손해나 허탈감을 중풍에 연결시켜서 "바람맞았다"고 하게 된 것이랍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바람서리
애국가의 가사 2절 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중에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람서리`입니다. 그 뜻은 `풍상`이란 뜻입니다. 즉 `바람 풍, 서리 상`이지요. 즉 `풍상에 불변함은`이란 것인데, 조사인 `-에`가 생략되었습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바보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밥+보`에서 `ㅂ`이 탈락된 형태이다.
`보`는 울보, 겁보, 느림보와 같이 체언이나 어간의 끝에 붙어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바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여 현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나 멍청이를 가리키게 되었다. 같은 이치로 `밥통`이라는 속된 표현을 쓰기도 한다.다른 견해도 있다.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를 `팔삭이`라고 하는데, `팔삭이→바시기→바(약칭)`으로 변화되어, `바`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보`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라고도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바쁘다
‘바쁘다’는 그 뜻이 여러 가지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①일이 많거나 또는 서둘러서 해야 할 일로 딴 겨를이 없다 ②몹시 급하다 ③(주로 ‘-기(가)바쁘게’의 구성으로 쓰여) 어떤 행동이 끝나자마자 곧의 뜻을 나타낸다 ④(북)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의 네 가지 뜻이 있다. ④는 주로 북한과 중국에서 쓰이는 뜻이다. ‘요즈음 놀기 바쁘다’란 말을 들은 남한 사람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지만, 북한 사람이나 중국의 우리 동포들은 ‘노는 일이 힘들다’는 뜻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일에 열중하니 힘들다’라고 해석되어서 남한에서는 그 단어의 바쁜 상태를, 북한에서는 바쁜 결과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바쁘다’의 ‘바쁘-’는 언뜻 보아 더 이상 분석이 되지 않을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숨이)가쁘다, 기쁘다, 나쁘다, 미쁘다, 어여쁘다, 예쁘다 ’ 등을 연상하면 어기에 접미사 ‘-쁘 ’가 통합된 것으로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접미사는 ‘ -쁘’가 아니라 ‘ -브’였다. 어기의 말음에 ‘ㅅ’ 등이 있어서 ‘ㅅ-브다’가 ‘-쁘다’로 된 것이다. 그러니 ‘바쁘다’는 ‘밧-’에 ‘-브다’가 붙어서 ‘밧브다’가 되었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바쁘다’가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것이다.
世間앳 밧디 아니 이 니르디 아니씨오<월인석보(1459년)> 이우즐 사괴면 밧븐 제 이셔도 서르 구완리라<정속언해(1518년)> 바 망(忙)<유합(1700년)> 밧 제 이 약 업거든 병 업 아 을 아 믈에 머기라 <언해두창집요(1608년)>
그렇다면 ‘밧-’은 무엇일까? ‘밧-’은 원래는 ‘밫-’이었다. ‘바차, 바시니’ 등으로 활용하였지만, 주로 ‘바차’ 형으로 사용되었다. ‘밫다’는 여기에 대응되는 한자가 ‘忙’이어서 ‘밫다’는 ‘바빠하다’란 뜻이었다. 그래서 ‘바차’는 오늘날의 ‘바쁘게 하여, 바빠서’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간 ‘밫-’에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의 사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東南門 노니샤매 늘그니 病 니 보시고 내시니 西北門 노니샤매 주그니 比丘僧을 보시고 더욱 바시니<월인천강지곡(1447년)> 셔방님 바차 유무 보 답장노라<순천김씨언간(1565년)> 바차 말오 저야 공부 드려 다으게 라(不要忙)<번역박통사(1517년)> ‘안직 디 말라 바차 므슴 다’(且休上馬 忙怎麽)<번역박통사(1517년)>
‘밫다’는 15세기와 16세기 문헌에 등장하지만, 17세기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16세기 자료인 『번역박통사』(1517년)의 ‘바차 말오’와 ‘바차 므슴 다’가 『박통사언해』(1677년)에는 각각 ‘밧바 므섯리오’와 ‘밧바 말고’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즉 ‘바차’가 ‘밧바’로 변한 것이다. 이 ‘밫다’의 어간 ‘밫-’에 접미사 ‘- /-브’가 연결되면 ‘밫-’은 ‘밧-’으로표기되어 ‘밧다/밧브다’로 쓰이었다. 이것이 어중에서 된소리로 되어 ‘바다/바다’(또는 ‘밧다/밧다’)로 표기되고 현대 국어에 와서 이것이 ‘바쁘다’가 된 것이다. 물론 15세기와 16세기에 ‘밫다’와 ‘밧다/밧브다’는 동시에 사용되었다. ‘밫다’의 뜻이나 ‘밧다/밧브다’의 뜻이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서 ‘밫다 ’가 오래 전부터 쓰이었는데, ‘밧 다/밧브다’가 만들어진 이후 그 세력이 약해져 17세기에 그 자리를 ‘밧다’에 넘겨 준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 다/-브다’접미사가 붙은 어기들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미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들도 있다.
‘(숨이) 가쁘다’는 ‘- + -브 + -다’로 분석되는데, 이것은 15세기에 ‘다/브다’로 나타난다 ‘힘들이다, 애쓰다란 뜻의 ‘다’는 ‘가, ’ 등으로 쓰이었지만 17세기 이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쁘다’도 ‘- + -브 + -다’로 분석되는데, 이것은 ‘깃브다’로 표기되었다. ‘다’(기뻐하다)도 ‘깃거, 깃글’ 등으로 쓰이었는데 이 단어는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다. ‘미쁘다’도 ‘믿- + -브 + -다’로 분석되는데, ‘믿다’는 15세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활발히 사용되는 단어다. 그러나 ‘어여쁘다’는 ‘어엿- + -브 + -다’로 분석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15세기에도 ‘어엿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쁘다 ’ 역시 15세기에 ‘낟다’로 나타나기 때문에, ‘낟- + /-브 + -다’로 분석할수 있을 것 같지만, 같은 뜻을 가진 ‘낟다’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단어가 단일어로 생겨나면, 그 이후에 약간의 의미가 가감되거나 또는 변화된 파생어가 만들어지고 그 결과로 두 단어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치열한 것으로 보인다. 뜻이 같아지면 둘 중에 하나는 사라지는 운명에 놓이고 조금의 의미 차이라도 생기면 둘이 사이좋게 생명을 유지하는 단어의 생태를 보면 신비로울 뿐이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4년 3월호
박수
중부 이북 지방에서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말로서, 몽골어 `박시(baksi)`가 그 어원인 듯하다. `박시`는 `지혜로운 자` 또는 `스승`을 뜻하는 말로서 라마교의 라마승도 `박시`라 한다. 제정일치 시대에는 제사장인 무당이 바로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였던 것처럼, 우랄 알타이족의 남자 무당은 대개 그 명칭이 박수와 같거나 비슷하다.`박수`란 특별히 중부 이북 지방의 남자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때로는 그 앞에 성을 붙여서 `김 박수` `이 박수`하는 식으로 호칭으로 쓰기도 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박쥐, 밝쥐
`박쥐`는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짐승이지요. 우선 징그럽다고 하고, 또 밤에만 나돌아 다녀서 그런지, `남몰래 밤에만 음흉하게 일을 하는 사람`을 욕할 때, `박쥐 같은 놈`이라고 하지요. 이 `박쥐`에서 `쥐`는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박`이 붙었으며, 또 그 `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박쥐`는 원래 `밝쥐`였지요. 아마도 `눈이 밝다`는 뜻으로 `밝-`이 쓰인 것 같습니다. 박쥐가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을 포착하여 방향을 조정해서 야간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니까, 그 전에는 `눈이 밝은 쥐`로 이해할 만도 하겠지요. 출처 : 우리말 어원
박차(拍車)를 가하다
말을 탈 때 구두 뒤축에 달아 뒤로 뻗치게 하는 쇠로 만든 물건을 박차(拍車)라 한다. 박차의 끝에 달린 톱니바퀴로 말의 배를 차서 빨리 달리게 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므로 `박차를 가한다`는 말은 한자성어 `주마가편(走馬加鞭)`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해서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것과 같이 일이 빨리 성사되도록 함과 열의를 더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일의 진행이 빨리 되도록 힘을 더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반죽이 좋다
쌀가루나 밀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놓은 것을 반죽이라 하는데 반죽이 잘 되면 원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렇듯 반죽이 잘 되어서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물건에 쓸 수 있는 상태를 반죽이 좋다고 한다.
이 말은 지금은 성품이 유들유들하여 쉽사리 노여움이나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얼굴이 잘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발목을 잡히다
이 말은 본래 씨름판에서 쓰던 말로서, 상대편에게 발목을 잡히면 꼼짝없이 번쩍 들려서 모래판에 나둥그러질 판이 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남에게 어떤 단서나 약점을 잡혀서 꼼짝 못하게 된 상황이나 어떤 일에 꽉 얽매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경우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방자구이
`양념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자는 관청의 종을 말하며, 상전을 기다리면서 밖에서 고기 한 조각을 얻어 즉석에서 구워 먹은 데서 비롯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방짜
`썩 좋은 놋쇠를 부어 만든 좋은 그릇`을 가리키는 말이다. 품질이 좋은 놋쇠를 부어 낸 다음 다시 두드려서 만든 놋그릇을 흔히 방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져 나오는 그릇마다 밑바닥에 `방(方)`자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는 표시인 셈이다.
지금은 놋그릇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확대되어 `매우 알차고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배달, 박달나무
상고 이래로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배달(倍達)`이라고 하지만, 그 어원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학설을 소개합니다. 먼저, `배달(倍達)`의 `배`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말의 음운 법칙에서 `박, 백`이 `배`로 변하는 실례가 많은 바, `백천(白川)`이 `배천(온천)`, `박고개(赤峴)` 혹은 `붉고개`가 `배오개(동대문시장)`로 변하는 지명의 실례가 있고..."[한단고기:1992, p19)
`한단고기` 번역자인 임승국에 의하면, 우리말 `밝다`의 어간 `밝`이 `배달`의 `배`로 변했다는 것인데 만약 `밝`이 `백(白)`의 변음임을 알았더라면 `밝`보다는 `백`과의 관계에 더 주목했을 것입니다.
동방문자 白(흰, 환할, 밝을 백)의 자음 `백`이 종성 `ㄱ`이 탈락하여 `배`로 변한, 이른바 `ㄱ`음 탈락현상은 다음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①復(돌아올 복, 다시 부) : 復歸(복귀), 復活(부활)
②讀(읽을 독, 구두/이두 두) : 讀書(독서), 句讀(구두)
③惡(나쁠 악, 미워할 오) : 善惡(선악), 憎惡(증오)
④食(밥/먹을 식, 밥/먹일 사) : 食氣(사기), 食鼎(식정)
위 내용들을 요약하면, `배달(倍達)`의 `배`는 `백(白)`의 종성 `ㄱ`이 탈락한 것이며, 여기서의 `倍`는 `백(白)`의 생략음 `배`를 표기하기 위해 임시로 빌려쓴 가차자입니다.
우리가 `백(白)`의 음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밝다`의 어간 `밝`과 영어 `bright, speak, speech` 등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백(白)`의 음 `백`이 모음변형된 것이 `박`이요, 이 `박` 음에 윤할 자음 `ㄹ`이 첨가된 것이 `밝다`의 어간 `밝`입니다.
白:1.백->박->밝(bright) 2. 백->배(ㄱ탈락)
이상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국조 단군과 관계 있는 `박달나무`의 어원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박달나무`는 다른 말로 배달나무이자, 단군 및 단군족의 나무입니다.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명이 그곳을 지키고, 나무를 베어 뗏목 8만개를 만들어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떠내려보내 사해 제족을 초청케 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보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박달(朴達)나무 숲에 신시(神市)를 크게 열고 악심을 다스려 마음을 정화한 다음 천상(天象)을 살펴 마고의 계보를 정리하고 그 족속의 근원을 밝힘과 아울러 천부의 음에 준하여 어문을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필히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이 통일되고 천하가 하나로 평정되어 인간세상은 크게 화합하였다...(부도지 제 14장 중에서)
우리말[동방어]에서는 `檀(단)`을 일러 `박달(朴達)` 혹은 `백달(白達)`이라고 한다... ([규원사화]`단군기` 중에서; 東語謂檀曰朴達, 或曰白達)
위의 예에서와 같이 그 음을 취해 통상 `박달(朴達)`식으로 표기하고 있는 `박달나무`의 바른 동방문자 표기는 `백달(白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배달(倍達)`의 `달`에 대한 설명입니다.
`배달`의 `달`을 풀이할 때, 많은 학자들이 우리말 `응달, 양달`을 예로 들며 `땅(地)`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배달`이란 말은 `응달, 양달`과는 달리 상고시대 이래의 말이기 때문에 상고시대 `달(達)`이 어떤 뜻을 나타내었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達 : 土山縣本高句麗息達 / 高木根縣本高句麗達乙斬(삼국사기 지리지 권35, 37)
위 자료를 근거로 남한의 이기문, 박병채 교수, 북한의 언어학자 류렬, 김수경 씨 등은 삼국시대 당시까지 `산(山)`과 `달(達)`은 동의어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삼국시기까지 `달(達)`은 `산(山)` 또는 `고(高)`의 뜻이지 `땅(地)`이 아니었습니다. [三聖記全] 상편 첫머리에는 우리 白衣백의민족의 시원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어느날 동남동녀 800명이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왔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달(倍達)은 백달(白達)의 음운변형이고,
박달(白達)은 백달(白達)의 모음변형이며,
백달(白達)은 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
박달나무는 배달민족의 나무라는 뜻이며,우리는 백산(=배달)민족, 곧 백두산 민족이다.출처 : 대종언어연구소
배알이 꼬이다
배알은 창자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줄임말로 `밸`이라고 쓰기도 한다. 배알의 꼬인다는 것은 곧 창자가 꼬여서 속이 아프다, 편치 않다는 뜻이다. 현재는 어떤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일이 비위에 맞지 않아 눈꼴이 사납게 느껴질 때 `배알이 꼬인다`, `배알이 뒤틀린다`는 표현을 쓴다. 즉 창자가 꼬일 만큼 속이 편치 않다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백일장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서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글짓기 시험을 실시하던 일을 백일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백일은 100일이 아니라 `낮`을 뜻하는 백일입니다. 출처 : 우리말배움터
번갈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갈마들어서`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관청 등을 지키거나 하는 일을 `번 선다` 또는 `번 든다`고 하였다. 지금의 숙직과 같은 제도하고 하겠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서로 교대도 해가며 번을 서곤 하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번번이(番番-)`도 같은 이치에서 생겨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벳섬
벳섬은 볏섬의 방언입니다.이것은 `벼를 담은 섬(곡식 따위를 담기 위하여 짚으로 거칠게 엮어서 만든 제구의 한 가지)`을 일컫습니다.
보기>...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하여 쫓겨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 가지고 남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벳섬 좀 치워 달라우요."
"남 졸음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이십 년이나 밥 먹구 그걸 못 치워!" ..출처 : 김동인, 감자
벽창호, 벽창우, 목곧이
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고집불통’, ‘고집쟁이’, ‘고집불통이’, ‘벽창호’, ‘목곧이’ 등으로 부른다. ‘고집(固執)’을 포함하는 단어들이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나, ‘벽창호’나 ‘목곧이’가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이라고 한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복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
그런데 같은 단어 구조라 하더라도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일 때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띤다.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매우 억세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러한 비유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벽창우’가 비유적 의미로 쓰일 때는 ‘벽창우’보다는 ‘벽창호’로 더 많이 쓰인다. “벽창호 같다”라는 관용구의 ‘벽창호’가 바로 그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변하여 그 비유적 의미 기능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바뀐 데에는 아마 이것을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壁)’과 그러한 속성을 지닌 사람과의 연상이 ‘벽창우’를 ‘벽창호’로 바꾸게 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목곧이’는 ‘목 곧-’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목 곧-’은 신체 명사 ‘목’과 형용사 ‘곧-’이 결합한 구로 “억지가 세어 남에게 호락호락하게 굽히지 아니하다”의 의미이다. ‘목곧이’는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을 뜻한다. 항상 ‘목’을 세워 ‘목’이 곧은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쟁이일 것이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변죽을 울리다`
간접적으로 깨닫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릇이나 물건의 가장자리를 변죽이라고 한다. 변죽을 쳐서 그릇의 복판이 울리게 하듯이, 바로 집어 말을 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을 하여 눈치를 채게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병자년 방죽
`건방지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조선조 26대 고종 13년 병자년에 몹시 가물어서 방죽이 모두 말라 붙어, 건(乾) 방죽이 된 것을 발음이 비슷한 `건방지다`에 엇먹어 쓴 말이다.
병자년에 흉년이 들었다는 데서 생긴 속담으로 `병자년 까마귀 빈 뒷간 들여다보듯 한다`는 말도 있다. 혹시 무슨 일이 잘 될까 하여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보라
담홍색을 나타내는 보라색은 그 어원이 몽골어에 닿아 있다.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에는 여러 가지 몽골의 풍습이 성행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매를 길들여서 사냥을 하는 매사냥이었다. 이때 사냥을 잘하는 새로 알려진 매에 여러 종이 있었는데, 그중에 널리 알려진 것이 송골매라 불리는 해동청과 보라매였다. 보라매는앞가슴에 난 털이 담홍색이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몽골어 `보로(boro)`에서 온 말이다.
앞가슴에 보라색의 털이 나 있는 매를 일컫는 `보라매`라는 이름에서 따와서 `보라`가 색깔을 가리키는 말로 전이되어 쓰이고 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보람차다
`자기가 한 일의 결과가 매우 뜻깊고 좋다`는 뜻이다. `보람`은 원래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이나 잊지 않기 위해서, 또는 딴물건과 구별하기 위하여 두드러지게 하여 두는 표를 말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유형의 물체를 가리키던 것이 차차 마음 속에 느껴지는 어떤 흡족한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다.읽던 곳을 표시해 두기 위해 책갈피에 끼워 두는 줄이나 끈을 보람줄 또는 보람끈이라고도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보름
음력 정월 보름을 중국에서는 원소절(元宵節)이라 합니다. 소(宵)는 밤(夜)이나 보름의 뜻으로 쓰이는데 으뜸(元)이 되는 보름(宵)이라 하여 정월 대보름을 원소절이라 합니다.
보름을 조선시대의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등을 찾아보면 보롬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월 보름에 깨무는 밤이나 호두들을 "부럼(부름)"이라 함에서 "보름"은 "잘 여문 열매" 라는 뜻에서 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스럼"에서 왔다는 설인데, 이는 보름에 호두나 밤을 먹고 그 껍데기를 버리면 한 해 동안 "부스럼(腫, 종)"이 나지 않는다 하여 이들을 종과(腫果), 소종(消腫)이라 한데서 왔다는 속설입니다. 그러나 이두 가지는 그리 믿을 만한 것은 못됩니다.
다른 것으로는 보름이 "바라다"에서 왔다는 설로, 이는 보름을 한자로 望(바랄 망, 보름 망)이라 하고, 보름날을 망일(望日), 보름달을 망월(望月)이라 함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름이 "밝음"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전라도 쪽에서는 "넋을 잃고 무엇을 바라보는 상태"를 가리켜 "뭘 보라꼬 있느냐?"라고 하며, 경상 방언에서는 "파리"를 "포리" , "(벽에)바르다"를 "보리다" 라 합니다. 이 말들은 옛날에는 아래 아가 쓰였던 것으로 오늘날에는 /ㅏ/ 로 바뀐 것을 표준어로 삼았지만 방언에서 종종 /ㅗ/로 쓰이는 경우입니다.
"밝다"의 옛말은 /ㄱ/ 이 탈락되고 보롬>보름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보름보기
`애꾸눈이`를 놀리는 말이다.
애꾸눈이는 눈이 한 쪽밖에 없으므로 남들이 보는 것의 절반만 본다는 생각에서, 결국 정상인과 비교하여 한 달에 보름밖에는 못 본다는 뜻으로 붙인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보리동지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산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 말기에는 곡식이나 돈을 바치고 벼슬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봉건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서민 계급 중에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벼슬자리를 사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들을 일러 흔히 보리를 주고 벼슬을 샀다 하여 보리동지라고 조롱하곤 했다. 때로는 어리숙하고 무던한 사람을 일컫는 말도로 쓰인다. 보리동지를 `납속동지`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보리동지의 한자 숙어다. # 동지 - 조선 시대 `지(知)`의 다음 가는 벼슬로 경연, 예문관, 춘추관, 의정부, 삼군부 등에 딸린 종2품에 해당하는 벼슬 이름이었으며, 나중에는 흔히 벼슬 없는 노인을 존칭하는 말로도 쓰였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보조개, 볼우물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인들에게 석사과정 종합시험으로서, 한국어를 출제하고 이를 채점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위 토플식으로 문제를 제출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보조개를 출제한 적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조개의 하나"에 동그라미를 쳤더군요. "조개"는 알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그 앞의 "보"가 무엇인지를 알았더라면 그런 오답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보"는 "볼"에서 "ㄹ"이 탈락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볼"에 있는 "조개"란 뜻이지요. "볼조개"가 "보조개"로 된 것입니다.
"ㅈ" 앞에서 "ㄹ"이 탈락하는 경우는 많지요. "불지불식 간에"가 "부지불식 간에"로 되는 것 등이 그것이지요.
이 "보조개"를 다른 말로 볼우물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볼에 우물처럼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말합니다. "보조개"는 옛날부터 썼던 단어이고 "볼우물"은 최근에 생긴 단어입니다. 외국인에게 "볼우물"을 출제하였더라면, 그렇게 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출처 : 우리말 이야기
복걸복
`복걸복`은 `복불복(福不福)`에서 온 말로, 발음상 와전된 말이다. 복불복(福不福) 은 말 그대로 유복(복있음)과 무복(복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것은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로, 똑 같은 경우와 똑 같은 환경에서 여러 사람의 운이 각각 차이가 났을 때에 쓰는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본데없다
`본데`라는 말은 원래 `보아서 배운 예의범절이나 지식`을 가리키는 말로서, 본데없다는 말은 보아서 배운 바가 없다는 뜻이다. 어른들이나 주위로부터 보고 들어 배운 예절이 없다는 뜻으로 흔히 버릇없이 굴거나 건방을 떨 때 쓰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볼장 다 보다
"볼장 다 보다"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장을 다 둘러보아서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일이 이미 글러 버렸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봉사
`장님`을 일컫는 말. 봉사는 원래 조선조 때 관상감, 전옥서, 사역원 등에 딸린 종8품의 낮은 벼슬 이름이다. 그런데 이 봉사 직책에 장님들이 많이 기용되었기 때문에 그 후 벼슬 이름이 그냥 장님을 뜻하는 말로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봉창
봉창은 방벽이나 부엌의 벽에 구멍을 내고 종이로 바른 창을 말한다. 이 창은 단순히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창이기 때문에 주로 방의 아래쪽에 내며, 여닫을 수가 없다. 방에 낸 봉창은 종이로 발라 바람이 직접 들어오지 않지만, 부엌에 낸 봉창은 환기와 채광의 두 가지 목적 때문에 종이를 바르지 않고 뚫어놓은 채 그대로 둔다.상황이나 자리에 맞지 않게 엉뚱한 딴 소리를 할 때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부대찌개
해방 후에 미군 부대에서 나온 고기를 부대고기라고 했는데, 그 부대고기를 넣고 끓인 찌개가 바로 부대찌개라는 것입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부랴부랴
`매우 급히 서두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이야 불이야`가 줄어서 된 말이다. 즉 불이 났다고 소리치면서 내달리듯이 매우 급한 일로 서두를 때 쓰는 말이다. `부리나케`라는 말도 같은 이치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 불씨가 귀할 때 부시를 쳐서 불을 일으키는데 빨리 쳐야 불이 일어나는 데서 생긴 말이다. `부리나케`는 `불이 나게`가 바뀐 말이다. 즉, `불(火)+이(토씨) +나(出)-게`의 구조를 가진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부리나케`
불이 나게`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는 불을 만들기 위해서 옴폭 패인 돌에 나뭇가지를 세게 돌려 불꽃을 일으키거나, 부싯돌 두 개를 맞부딪치는 방법을 썼다. 전자의 방법을 쓸 때는 나뭇가지를 돌리는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빠르게 돌려야 겨우 불꽃이 일었다. 그러므로 `불이 나게`란 `불이 날 정도로` 급하고 빠르게 몸을 놀리는 것을 뜻한다.`부리나케`는 `급하게, 서두르듯 빠르게`의 뜻을 가진 부사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부엉이 집을 짓다
`뜻밖에 많은 재물을 얻다`는 뜻이다. 부엉이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자기 집으로 가져다 두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엉이 집을 지어서 저절로 많은 물건을 얻게 되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부지깽이
옛날 아궁이에 짚이나 나무, 솔잎 등으로 불을 땔 때 불꽃이 좀더 잘 일어나도록 쏘시개감을 헤집는 데 쓰는 막대기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연탄 아궁이에서 쓰는 쇠로 만든 연탄집게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연탄을 가정 연료로 쓰고 있는 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에는 연탄집게마저도 골동품이 되어가고 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부질없다
옛날 대장간에서는 쇠붙이를 만들 때, 강하고 단단한 쇠를 얻기 위해서 쇠를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갔다 하기를 여러 번 했답니다. 횟수가 많을수록 더욱 단단한 쇠가 만들어졌지요. 그러나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물렁물렁하고 금세 휘어지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지요."불질없다"가 변해서 된 "부질없다"라는 말은 쓸데없고 공연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부채
부채는 순수한 우리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자와 가는 대나무라는 뜻의 "채"자가 어우러진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뜻이다.부채를 한자로는 "선(扇)"이라 하는데 이는 집을 뜻하는 "호(戶)"자와 날개를 뜻하는 "우(羽)"자가 어우러진 말이다.출처 : 한국의 전통부채
부처
부처의 본래 발음은 `붓다`이다. `붓다(Budha)`는 산스크리트어로서 `진실하고 어진 사람`이란 뜻이다. 이것이 중국을 거쳐 오면서 한자식 표기인 `불타(佛陀)`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불타, 부텨, 부처로 변이되었다.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만 하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란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총칭하는 보통 명사이다.그러나 오늘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부처`란 말은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 세존`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북나들 듯`
자주 들락거림`을 뜻하는 말이다. `베틀에 북 드나들 듯`이 줄어서 된 말이다. 북은 베틀에 딸린 중요한 부속품의 하나다. 씨실의 꾸리를 넣고 북바늘로 고정시켜 날의 틈으로 왔다갔다하게 하여, 씨를 풀어 주어 피륙이 짜지게 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배같이 생긴 나무통이다.베를 짜기 위해 북이 부지런히 드나느는 것에 빗대어 사람이 자주 들락거릴 때 쓰는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북망산(北邙山) 가다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하남성 낙양 땅에 있는 산 이름이다. 후한(後漢) 시대 이래 이곳에 무덤이 많았기 때문에 `북망산 간다`는 말이 곧 죽는 것을 대신하게 되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북어값 받으러 왔나`
남의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북어는 먼 함경도에서 동해와 황해를 휘돌아 오고 수량이 많아서 아무리 빨리 팔아도 대여섯 달은 족히 걸렸다. 그래서 북어를 싣고 온 화물주는 자신이 지정한 객주에게 판매를 위탁하고 그 판매 대금이 걷힐 때까지 몇 달이고 그 집에서 머물렀다. 북어를 넘겨주고 난 다음부터 화물주는 하릴없이 돈 받을 날만 기다리면 되었기 때문에 남의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불펜
투수가 워밍업하는 곳을 불펜이라고 부르게 된데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투수가 낮은 펜스뒤에서 워밍업을 해 우리안에 있는 황소를 연상시켰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다 신빙성 있는 설은 초창기 미국 시골 전역의 펜스에 황소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과 관계가 깊다고 합니다. 이 황소그림은 "불더럼"이라는 궐련담배 광고였는데 펜스아래서 몸을 푸는 투수의 모습이 이 "불더럼 황소"의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출처 : 조선일보
불현 듯
`갑자기, 걷잡을 수 없게, 느닷없이`의 뜻을 지닌 말이다. 낱말 분석을 해 보면 `불 + 현 + 듯`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혀다`는 `켜다`의 옛말이다. 따라서 불을 켜면 갑자기 환해지듯이 어떤 일이나 생각이 느닷없이 이루어질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불현듯이
불을 켠 듯이 갑자기 환해짐을 이르는 말에서 비롯된 `불현듯이`는 `갑자기 치밀어 걷잡을 수 없게` `느닷없이`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불호령
불호령은 원래 "볼멘 소리로 하는 호령"이라는 뜻의 "볼호령"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고 불만스러운 점이 많을 때 볼이 메게 되는데, 이렇게 볼멘 소리로 하는 호령은 무섭고 사나울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불같이 사납고 무섭다고 하여 "볼호령" 대신 "불호령"이라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이랍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비누
아직까지는 비누에 대한 어원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박통사언해(1677년)"라는 옛 문헌에 `비노`라는 형태가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때 쓰인 `비노`는 한자말이 아닌 고유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비빔밥
비빔밥의 어원으로는 세 가지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1. 안동의 제삿밥
2. 섣달 그뭄에 남은 음식을 비벼 먹은 데서 유래
3. 임금이 남긴 음식을 비빈 데서 유래출처 : 우리말배움터
비위(脾胃) 맞추다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脾臟)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장(胃臟)을 합쳐서 비위라고 한다. 비위를 맞춘다는 것은 곧 속에서 어떤 음식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흔히 어떤 일이나 상황을 남의 마음에 들게 해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비지땀`
힘든 일을 할 때 쏟아지는 땀`을 이르는 말이다. 비지를 만들기 위해 콩을 갈아서 헝겊에 싸서 짤 때 나오는 콩물처럼 많이 흘리는 땀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빈대떡
생성 시기: 조선 중기(1500년대)
유래: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로는 최세진이 쓴 <<박통사언해>>에 "병저"의 중국식 발음인 "빙져"에서 빈대떡이 나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빈대떡은 본디 기름에 부친 고기를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올려놓을 때 밑받침용으로 쓴 음식인데, 그 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어 빈자(貧者)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정동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댓골이라 하였는데 그 곳에 빈자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던져 주었다고도 한다.
잘못 쓴 예: 고려시대에 기근이 게속되어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게 되면 나라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구휼하였다. 출처 : 우리말의 나이를 아십니까?
뺑줄치다
`사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다`의 뜻이다.
남이 날리는 연 줄을 긴 장대나 돌멩이를 맨 실로 걸어 당겨서 중간에서 빼앗는 짓을 `뺑줄`이라고 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뽀뽀
‘뽀뽀’는 ‘입맞춤’의 유아어이다. 즉 ‘볼이나 입술 따위에 입을 맞추는 일’을 아기들이 말할 때에나 또는 어른들이 아기들에게 말할 때에 쓰는 말이다. ‘뽀뽀’란 말은 한때 텔레비전에서 ‘뽀뽀뽀 친구’라는 제목을 가진 어린이 프로그램 때문에 ‘뽀뽀뽀’의 세 음절을 가진 단어로도 쓰인 적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뽀뽀’만 사용되고 있다. ‘뽀뽀’는 이렇게 아기들에게만 사용되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어른들이 ‘키스’라는 외래어를 쓰기 어색한 때에 대신 쓰이기 때문에 유아어에서 벗어나서 성인들의 말로도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기들에게나 하던 말이 이제는 어른들끼리도 쓰는 말이 되어 버렸다.
‘뛰뛰빵빵’이나 ‘꼬꼬’(닭)와 같은 유아어처럼 ‘뽀뽀’도 의성어일 가능성이 높다. 또 ‘뽀뽀’는 아마도 입 맞출 때의 소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입 맞추는 소리를 ‘쪽’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원래 ‘입으로 빠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입맞춤을 강하게 표현할 때에 쓰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아기들에게 ‘쪽쪽’은 오히려 맛있는 것을 힘차게 빨 때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기들의 입맞춤 소리는 ‘뽀뽀’가 제격이다. 그래서 ‘뽀뽀’는 입맞춤 소리인 ‘뽀’가 첩어가 되어 ‘뽀뽀’가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1회용 입맞춤의 소리인 ‘뽀’가 연속적인 입맞춤의 소리인 ‘뽀뽀’로 되면서 하나의 의성어로 자리 잡고 이것이 ‘뽀뽀’란 명사로, 그리고 여기에 ‘하다’가 붙어 ‘뽀뽀하다’란 동사까지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사용되는 ‘뽀뽀’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이 ‘뽀뽀’란 단어는 1939년에 김유정이 쓴 ‘애기’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것 같다.
오, 우지마, 우리 아가야, 하고 그를 얼싸 않으며 뺨도 문태고 뽀뽀도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큰 행복과 아울러 의무를 우리는 흠씬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애기(1939년)>
이 ‘뽀뽀’가 20세기에 와서야 생겨났다는 사실은 그 이전의 국어사전에 전혀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국한회어』(1895년), 『한불자전』(1880년), 『한영자전』(1897년) 등에도 전혀 보이지 않고, 1925년에 만들어진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사전』에도 보이지 않는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 그리고 심지어 1957년에 완간된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에도 ‘뽀뽀’란 단어는 올림말에 없다. 이 ‘뽀뽀’란 단어가 처음 보이기 시작하는 사전은 1961년에 편찬된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이다. 이 사전에서는 ‘입맞춤’을 귀엽게 일컫는 말’이라고 하고 ‘소아어’로 처리하였다. 그러니까 ‘뽀뽀’가 사전에 정식으로 올려진 것은 1960년대에 와서의 일인 셈이다. 그 이후의 사전에는 모두 실려 있지만, 유독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는 이 ‘뽀뽀’란 단어가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는 이 단어가 아직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은 아기들의 ‘뽀뽀’ 대신에 외래어인 ‘키스’(kiss)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이 ‘키스’란 말은 1922년에 쓰인 나도향의 ‘젊은이의 시절’에 처음 보이고, 이광수의 ‘흙’(1932년), 그리고 심훈의 ‘영원의 미소’(1933년)에도 보인다. 그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숭은 이번 만나서 처음으로 정선의 입을 맞추었다. 정선은 마치 처음으로 이성에게 키스를 당하는 처녀 모양으로 낯을 붉혔다. 그리고 누가 보지나 않는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흙(1932년)>. 군혹이 달리듯 불뚝 내솟은 팔의 근육! 전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굳은 포옹! 그리고 퍼붓듯 하는 뜨거운 키스! 계숙이도 흥분이 되어 연감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을 수영의 널따란 가슴에 파묻었다. …… 앞마당에서 첫닭이 울었다<영원의 미소(1933년)>. 그러니 ‘키스’란 말도 이미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든 외래어가 된 셈이다. 이때의 ‘키스’의 대상은 남녀이지만, 입을 맞추는 곳은 꼭 상대방의 입술만은 아니어서 ‘이마’에 입을 맞출 때에도 ‘키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20세기 이전에는 ‘뽀뽀’나 ‘키스’란 단어는 없었을까? 물론 없었다. 그 이전에는 ‘입맞춤’이라고 했다. ‘입 맞추다’란 말은 17세기 말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입 마초다(親口) <한불자전(1880년)> 입 마추다(僻咡, 合口) <국한회어(1895년)> 입 마초다(唚嘴) <역어유해(1690년)> 입 마초다(親嘴) <몽어유해(1768년), 방언유석(1778년), 광재물보(19세기)> 입 맛초다(接吻, to kiss; to touch the lips)<한영자전(1897년)
19세기 말의 필사본 고소설과 그 이후의 작품에서는 남녀간의 ‘입맞춤’ 표현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의양의 숀질 고 말 긔롱도 여 보락 긔롱의 아즉 지쳐 셔로 고 굴글면셔 궁굴다 입 맛츄기 엽구레도 간지 간지리면 노와 쥬오 쳬면도 읍쇼 간지럽쇼 징그럽쇼 먹넌치 욕두며 희희희희 농치다 <필사본 고소설(19세기)> 이리 와, 입 한 번 맞추자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싫소, 그 시골 모내는 계집애 입 맞추던 입에서는 똥거름 냄새가 난다나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흙(1932년)>.
19세기 말에 간행된 성경에서는 ‘키스’를 ‘입 맞추다’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키스’를 ‘성애’(性愛)로 인식하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그 발에 ‘입 맞춘다’고 하지 ‘키스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유다가 그 압페 여 예수의게 나아와 입 맛초니 예수 갈오샤 유다야 네 입 맛초무로써 인 파냐 니 <예수셩교전서(1887년)>
그러나 ‘입 맞추다’의 명사형은 ‘입맞춤’과 ‘입 맞추기’의 두 가지인데, ‘뽀뽀’나 ‘키스’에 대해서는 ‘입맞춤’을 쓰고, ‘입 맞추기’는 소위 ‘더빙’, 즉 ‘화면 인물의 입놀림에 맞추어 대사를 하거나 녹음하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키스’ 중에 서양식으로 인사할 때 뺨이나 손등에다가 입술을 대는 것에는 ‘입맞춤’이나 ‘키스’를 쓰지 ‘뽀뽀’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입 맞추다’에서 ‘뽀뽀’와 ‘키스’로 분화되어 가면서 각각의 단어들은 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서 앞으로 이 단어들도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궁금하다.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1월호
삐리리
사실 모든 소리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들린다. 그래서 `컹컹컹` 개 짖는 소리를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전도연은 `형!형!형!` 짖는다고 우기기도 한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들리는 소리도 한번 세력을 얻으면 객관적 의성어로서 자리잡는다. 폭주족들의 요란한 오토바이 경적소리를 개그맨 남희석이 `빠라바라바라밤`이라고 유행시켜 모두에게 그렇게 들리 듯이 말이다. 예전에는 호루라기 소리나 휴대폰 소리를 표현하는 말이었던 `삐리리`도 그렇게 해서 지금의 의미를 얻었다. TV 출연자들이 방송에 부적합한 말을 할 경우 그 부분을 지우거나 빨리 돌리는데 이 소리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삐리리`라고 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1996년부터 일부 TV 쇼ㆍ오락프로그램에서 이 부분을 `삐리리`라는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금 `삐리리`는 부정칭(不定稱)인 `무엇`과 같은 형식으로 쓰이면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방송에서 방송부적합 용어를 썼을 때 `삐리리`라고 나오는 것처럼 뭔가 좋지않은 소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뜻은 말의 맥락 안에서만 명확해 진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친구와 싸울 때, `저 삐리리, 진짜 삐리리하네`라고 하면 대충 `저 바보, 진짜 멍청하네`라는 뜻이 된다.
MBC라디오 `윤다훈의 라디오섹션`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매일 `이보다 더 삐리리할 수는 없다`는 코너가 있다. 청취자들이 나름대로 `이보다 더 한심할 수는 없다` `이보다 더 기쁠 순 없다`로 말을 만들어 소개하는 코너다. 이 `삐리리`는 이제 학교 수업시간에까지 침투했다. 국어시간에 하는 단어 맞추기 게임을 `삐리리게임`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진희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잘 친다.
아마도 커서 훌륭한 `삐리리`가 될 것 같다"고 말하면 학생들이 `피아니스트`라고 답을 말하는 게임이다. 광남중 국어교사인 이승헌씨는 "`삐리리게임`을 하면 아이들도 수업 집중을 잘 한다"고 하면서도 "`삐리리`라는 말이 남용돼 이제는 무슨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도 아무런 고민없이 그냥 `삐리리`라는 말을 집어 넣는다"고 걱정했다. 출처 : 한국일보
사근사근하다
사과나 배를 씹을 때처럼 시원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가리켜 `서근서근하다`고 한다. 거기에 사람의 성격을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사람의 성격이 부드럽고 친절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사냥
`사냥`은 본래 한자말 `산행(山行)`에서 나온 말이다. 『용비어천가』125장에 보면 `낙수(洛水)에 산행(山行)가 이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 쓰인 산행이 곧 사냥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조선 중기 때의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초간본에서도 `산행`으로 표기하고 있다.
『박통사언해』초간본에 `산행`이던 것이 중간본에 가면 `산영`으로 바뀌고 그 후 `사냥`으로 바뀌면서 한자어의 흔적은 사라지고 고유어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산과 들로 다니면서 활이나 덫으로 짐승이나 새를 잡는 일을 가리킨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사또
각 도에 파견된 문무관리를 이르는 말로 원래 `사도(使道)`라고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변하여 `사또`가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사랑니
`입 속의 뒤쪽 맨 구석에 나는 작은 어금니`를 말한다. 사랑니는 대개 다른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새로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사람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몹시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사랑하다
`사랑하다`는 본래 `생각하다`는 뜻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생각 사(思)`에 `헤아릴 량(量)`을 쓴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오늘날 `사랑하다`는 `무엇인가를 귀중히 여기고 아낀다`는 뜻으로만 쓰인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사리
흔히 일본어로 잘못 알고 있는 `사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 `사리`는 `사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실 같은 것을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것을 얘기한다.`몸을 사린다`는 말에 쓰일 때는 `어렵거나 지저분한 일은 살살 피하며 몸을 아낀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국수나 새끼, 실 등을 동그랗게 감은 뭉치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사명당 사첫방
`매우 추운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사명대사라고 하는 사명당은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승려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의 활약을 과장한 많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사명당이 일본과 강화를 하기 위해 일본에게 건너갔는데, 그 때 왜왕이 사명당을 태워 죽이려고 구리로 집을 지어 그 속에 가두고 사면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나 사명당은 사벽(四壁)에 서리 상(霜)자를 써 붙이고 방석 빝에 얼음 빙(氷)자를 써 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방이 타기는커녕 방안에 얼음이 얼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몹시 추운 방을 가리켜 `사명당 사첫방`이라고 하게 되었다. 사첫방의 `사처`는 `하처(下處)`가 변해서 된 말로, 점잖은 손님이 객지에서 묵는 집을 가리킨다.
같은 유래에서 나온 말로 `사명당이 월참(越站)하겠다`는 속담이 있다. 사명당이 길을 가다가 쉬지도 않고 지나쳐 버릴 정도로 방이 매우 춥고 차다는 뜻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사족(巳足)
올해는 신사년(辛巳年).뱀의 해에 맞는 `사족`이란 성어를 알아봅시다. `사족`이란 누구나 잘 알 듯이 뱀의 다리라는 뜻으로 필요없는 것을 일컬을 때 쓰이는 말입니다. 초(楚)나라 회양 6년 때의 일이다.초나라는 영윤인 소양에게 군사를 주어 위(魏)나라를 치게 했다.소양은 위를 무찌르고 군사를 이동시켜 제(齊)를 치려고 했다.
제나라의 민왕은 이를 걱정하여 때마침 진나라의 사자로서 와 있던 진진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 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소인이 초나라에 가서 싸움을 멈추게 하지요."
진진은 즉각 초군에게로 가 진중에서 소양과 회견을 하고 말했다.
"초나라 법에 묻겠습니다.적군을 무찌르고 적장을 죽인 자에게는 어떤 은상이 주어집니까?"
"상주국으로 임명되고 상급작위의 규(珪)를 하사하십니다."
"상주국 이상의 고위 고관이 있습니까?"
"영윤이지요."
"지금 귀하께서는 이미 영윤이십니다.즉 초나라의 최고 관위에 계시는 것이지요.그러한 귀하께서 제나라를 치신들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예를 들어 말씀드리지요.
어떤 사람이 하인들에게 큰 잔에 술 한 잔을 따르어 주었더니 하인들이 저마다 말했습니다.
`여럿이서 이걸 마시면 실컷 먹을 수가 없다.땅에 뱀을 그려서 제일 먼저 그리는 자가 혼자 먹기로 하면 어떨까?``그것도 좋지.` 이렇게 되어 모두들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윽고 한 사람이 `내가 뱀을 제일 먼저 그렸다.`하며 술잔을 들고 일어서서 `발도 그릴 수 있지`하고 덧붙여 그렸습니다.막 발을 다 그렸을 때 뒤늦게 뱀을 다 그린 자가 그 술잔을 뺏아 마시면서 `뱀에게 무슨 발이 있담.자네는 지금 발을 그렸는데,이건 뱀이 아니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귀하는 초의 대신입니다.그리고 위를 공격하여 무찌르고 그 장군을 죽였습니다.이 이상의 공격은 소용이 없습니다.최고 관위 위에는 더 덧붙일 관위가 없는 것입니다.그렇건만 귀하는 또 군사를 움직여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십니다.다시 승리를 거두시더라도 귀하의 관작은,현재 이상으로는 더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만약 패하신다면 몸은 죽게 되고 관작은 박탈될 것이며 초나라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비방을 받게 되겠지요.그래서는 뱀을 그리다 발까지 그리는 거나 진배 없습니다.싸움을 중지하시어 제나라에 은혜를 베푸심이 좋을 것입니다.그렇게 하시는 것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얻으며 아무것도 잃지 않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소양은 과연 그렇구나 하고 군사를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의 초세가와 <전국책>의 제책에 있습니다.다소 서술에 다른 점이 있으나 대강은 마찬가지입니다. 사족(巳足)-쓸데 없는 짓을 한다는 말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족이라는 말 보다는 `오버한다`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 않습니까? `오버액션`의 줄일말인 듯한데,그 과장하는 부분이 과거에는 쓸데 없는 것으로 여기던 것에 반해 현대인들은 그 과장하는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출처 : 박식해지는 고사성어풀이
산통깨다
`일을 그르치게 하다`는 뜻이다. 길이 10cm 가량의 향목(香木)이나 금속 혹은 대나무를 에어 괘(卦)를 새긴 것을 산가지 또는 산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대를 넣는 통을 산통이라고 한다. 점을 칠 때 산통을 대여섯 번 흔든 다음 산통을 거꾸로 들면 그 구멍으로 산가지가 나온다. 이 산가지의 괘로 점을 치는 것을 산통점이라고 한다. 이 때 산가지를 집어 넣는 산통을 깨 버린다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틀어 버린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살림
살림은 불교 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습니다. 산림은 원래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가리켰는데, 이 말이 소리내기 좋게 살림으로 변하여 일반 가정집의 생활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것까지 뜻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삼박하다
작고 연한 물건이 잘 드는 칼에 가볍게 잘 베어지는 소리 또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박하다`의 센 말이 `쌈빡하다`이다. 아주 명쾌하고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모양을 갖춘 사람이나 그런 일을 가리키는 데 널리 쓰인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삼삼하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음식 맛이 조금 싱거운 듯하면서 맛이 있다는 뜻과 잊혀지지 않아 눈에 어린다는 뜻이 있다. 음식의 맛이 삼삼하다는 표현은 주로 어머니나 어른들이 많이 쓰고 있는 반면에,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삼삼하다는 말은 문학작품 속에서나 찾아볼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이고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주로 위에서 설명한 본뜻보다는 사람이나 물건이 멋있게 생긴 경우에 감탄의 뜻을 나타내는 속어로 쓰인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삼수갑산을 가다
`매우 힘들고 험난한 곳으로 가거나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에 있는 고장으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국내에서 가장 추운 지대에 속한다. 겨울에는 평균 영하 16~18도에 이르고 눈이 수척의 높이로 쌓인다고 한다. 또한 교통이 불펀하여 옛날에는 유배지로 유명했다.갑산은 함경남도 북동쪽에 있는 고장으로 삼수와 마찬가지로 매우 춥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다. 두 지역 모두 지형이 험한 데다 유배지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 하는 곳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삼수갑산을 가다`고 하면 아주 멀고 험한 곳으로 가거나 아니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삼십육계
`달아나는 것이 상책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제서>의 「왕경즉전」에 나오는 `王敬則曰 檀公三十六策 走爲上計`, 즉 `단공이 말한 36가지의 책략 중에 (상대방이 너무 강해서 대적하기 힘들 때에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다`라는 말이 줄어서 `삼십육계`가 되었다. 비겁하게 달아난다는 뜻을 담아서 많이 쓰고 있으나 원래는 힘이 약할 때는 일단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다시 싸우는 것이 옳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무조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병법의 하나로서 뒷날을 기약하며 일단 후퇴전술을 쓸 수도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할 때의 `줄행랑`은 `주행(走行)`이 변해서 된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삼천리강산
우리나라 국토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다. 우리 국토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의주까지 천 리,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 천 리 해서 강산이 삼천리에 걸쳐 있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삼천리 강산`이라 할 때, 그 거리를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종적인 거리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 의주까지의 거리는 2천 리에 지나지 않으니, 국토를 횡으로 가로질러 너비를 나타내는 거리인 의주에서 두만강 끝까지의 천 리가 더해진 것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삼천포로 빠지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거나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그르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첫째,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둘째, 진해에 해군기지가 생긴 이래 해군들에 의해 나온 말이다. 진해에서 서울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도중에 삼량진에서 진해 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잘못하여 삼천포 가는 것을 갈아 타는 바람에 귀대 시간을 어겨 혼이 나는 병사들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는 것이다.
셋째,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에는 삼천포로 가는 손님과 진주로 가는 손님이 함께 탄다. 기차가 계양역에 닿게 되면 진주행과 삼천포행의 객차로 분리하여 운행한다. 이 때는 반드시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은 각각 몇호차로 옮겨 탈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진주를 가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잠들거나 하여 엉뚱하게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위 세 가지 유래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지금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삼팔 따라지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된 말이다. 노름판에서 세 끗과 여덟 끗을 합하면 열한 끗이 되는데, 여기서 10단위를 떼면 한 끗이 된다. 한 끗을 따라지라고 부르며, 매우 낮은 끗수에 해당되어 별 볼 일 없는 패를 잡은 셈이 된다. 해방 직후 북쪽에서 토지개혁이나 종교 문제 등으로 남쪽으로 삼팔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빈털털이거나 의지할 데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삼팔선을 넘어온 이들의 신세를 노름판에서 말하는 가장 낮은 끗수인 따라지에 빗대어 `삼팔 따라지`라고 하게 되었다.
흔히 키와 몸이 작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따분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따라지라고 하며, 남에게 매여 자유없이 사는 목숨을 `따라지 목숨`이라고도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삿대질
삿대는 베를 저울 때 쓰는 장대입니다. 그러니까 삿대질은 원래 삿대로 배질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말다툼을 할 때 상대편의 얼굴에다 주먹이나 손가락을 내지르는 것이 마치 삿대로 배질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삿대질"이라고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샅샅이
샅은 두 다리의 사이나 두 물건 사이의 틈을 가리킵니다. "샅샅이"는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모든 곳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구석구석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지요.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새끼
이 말은 본래 시아우를 가리키던 `시아기`가 변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시아기`는 본래 남편의 아우인 시동생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시아기`에서 `새기`로 그리고 `새끼`로 소리가 변하면서 본래의 뜻은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오늘날, `새끼`란 말은 생물의 `어린 것`이나 `놈`이란 뜻의 욕으로 쓰이고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색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색시’를 ① ‘새색시’ 와 같은 말 ②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젊은 여자 ③ 술집 따위의 접대부를 이르는 말 ④ 예전에, 젊은 아내를 부르거나 이르던 말의 네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색시’(또는 ‘색씨’)란 단어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초인데, 이때에도 다음 예문에서 보듯이 이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리 게집들은 색시 구경하기와 직조 구경하기에 절망 골하여 <소강절(20세기초)>(①의 뜻) 조선 안의 그 수탄 색시들 중에 「채영신」 석자만 쳐다보고, 눈을 꿈벅꿈벅하고 기다리는 나 자신이 <심훈, 상록수(1935년)> (② 의 뜻) 녀자가 술을 파는 내외 술집이엇다. 『나만 러 오시우 . 내 어엽분 색시 구경을 식켜 줄 터이니!』<나도향, 池亨根(1926년)>(③ 의 뜻) 『여보 아즈머니! 우리 집 색시 어듸 갓는지 보앗소?』<나도향, 물레방아(1925년)>(④의 뜻)
‘색시’는 원래 ‘갓 시집온 젊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뜻으로는 ‘색시’가 쓰이지 않고 ‘새색시’ 가 쓰이고 있다 . 아마도 ‘색시’가 ‘술집 등의 접대부나 창녀’를 일컫는 말이 되면서 ‘색시’는 기피하는 단어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 ‘새색시’(또는 ‘새색씨’)는 ‘새 + 색시’ 로 분석되는데, 이 단어도 그 예를 20세기 초의 문헌에서 처음 발견할 수 있다.
아모 소리 안이하고 新郞의 얼골만 겻눈으로 흘겨 보는 새색시의 얼골 갓흔 말님의 얼골 빗츨 나는 보기 원합니다 <나도향, 젊은이의 시절(1922년)> 그 건너 집 동산에서는 새색씨의 다홍 치마 자락이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듯 마는 듯 하는데 <나도향, 어머니(1952년)>
그러면 ‘색시’는 어떻게 분석되고 어떤 단어에서 비롯된 것일까? ‘색시’를 ‘섹시’(sexy)에서 찾으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색 (色) + 시(氏)’로 분석하려는 사람은 있음직하다 . 왜냐 하면 19세기 말에 이미 ‘ 色 쓰다(用色)’는 단어가 출현하기 때문이다(국한회어). 그러나 ‘색시’(또는 ‘색씨’)는 엉뚱하게도 ‘새악시’(또는 ‘새악씨’)가 줄어든 말이다. ‘새악시’는 17세기부터 그 용례가 출현하다가 20세기 초에 사라지고, 이어서 20세기 초에 ‘색시’가 등장한다. 19세기 말의 각종 사전에 아직 ‘색시’란 올림말이 없고 , 대신에 이에 해당하는 단어로서는 ‘새악시’가 등재되어 있으며, 또 방언형에 ‘샥시’(경기도), ‘ 시악시’(전남) 등이 보이는 점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새악시(女孩兒) <역어유해(1690년)> 졂은 와 어린 새악시 몹시 굴어도 능히 그 교 식이지 못니 <성경직해(1892년)> 새악씨(新婦) <한불자전(1880년)> 새악씨(處女) <국한회어(1895년)> 김씨 홍졔원 새악씨로셔 오 에셔 사 외인 공셔방의게 츌가엿더니 <치명일기(1895년)> 뎌 옥 새악씨 뉘 감히 핍박리오 <기해일기(1905년)>
그렇다면 ‘새악시’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새악시’ 는 ‘새 + 악시’로 분석될 것이 분명한데, 이때의 ‘악시’는 무엇일까? ‘악시’ 는 ‘각시’ 다 . ‘새각시’ 의 음운 변화로 말미암아 ‘새악시’가 발생한 것이다 . 즉 ‘새각시’는 ‘새 +각시’ 로 분석되고 ‘각시’가 ‘아내’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새색시’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었다. ‘각시’가 15세기에 흔히 사용되었으므로 ‘새각시’도 이 시기에 나타날 것 같지만, 실은 ‘새각시’는 17세기에 처음 보인다.
뎌 새각시 얼굴이 장 고아 쥰슈홈이 觀音菩薩 고 <박통사언해(1677년)> 올 十六歲니 自然이 새 각시라 언머 財禮 드리더뇨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새각시’도 17세기에 이미 ‘새악시’(또는 ‘새악씨’)로 변하여 나타난다. ‘새각시’ 의 ‘새’ 와 ‘각시’사이에서 ‘ㄱ’ 이 탈락한 것이다. ‘새삼’이 ‘새’이 되는 곳과 유사한 음운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20세기초까지도 쓰이었다. 방언형에서는 아직도 ‘새각시’(또는 ‘새각씨’)가 ‘새악시’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새각시’를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앞에서 예를 든 『박통사언해』와 『박통사신석언해』와 계통을 같이 하는 16세기의 『번역박통사』에서는 이들을 ‘숟갇나’라고 하였다. 아래의 예문에서 ‘숟갇나’와 ‘니믈리기’(後婚女)가 대립되며, 이의 후대본인 『박통사언해』(1677년)와 『박통사신석언해』(1765년)에서는 ‘새각시’로 대응되어서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숟갇나가 니믈리기가 (女孩兒那後婚) 올히 열여스신 숟갇나라 (今年纔十六歲的女孩兒) <번역박통사(16세기> 새각시러냐 니믈리기러냐 올 十六 歲엣 새 각시러라 <박통사언해> 이 새각시러냐 당시롱 뎌니 물리기러냐 올 六歲니 自然이 새 각시라 <박통사신석언해>
결국 ‘각시’와 ‘숟갇나’가 쓰이다가 ‘각시’에 ‘새’라는 접사가 붙은 ‘새각시’로 대치된 뒤에 ‘새악시’로 음운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이 축약되어 ‘색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색시’에 다시 ‘새’ 를 붙여 ‘새색시’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새색시’는 ‘새 + (새 + 각시)’로 분석되어서 ‘새’(新)가 이중으로 들어간 희한한 단어인 셈이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에는 ‘색씨’를 ‘새색씨’의 준말이라고 했고 조선어학회의 『큰사전』(1950년)에도 ‘색시’를 ‘새색시’의 준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사전』(1920년)에는 ‘색씨’가 ‘미혼의 여자’로만 기술되어 있고, ‘신부 (新婦)’의 뜻으로는 ‘새아기씨’와 ‘새아씨’가 실려 있다.
이 ‘새색시’와 뜻이 매우 비슷한 말로 지금 ‘새댁’이 흔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새댁’ 은 원뜻은 ‘사람’ 이 아닌 ‘집’ 을 일컫는 것이었다 . 그래서 ‘새’ 이라고 표기되었고 , 또 그 뜻도 신랑집에서 신부집을 말할 때 쓰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색시’와 같은 뜻으로 전이된 것은 19세기말이었다.
상쟈의 옷 새의셔 여 왓다 <병자일기(1636년)> 새(新宅) <한불자전(1880년)> 새 新婦 <국한회어(1895년)> 갓 잡아온 새댁 모양으로 씻는 감자나 씻을 뿐 잠잣고 잇섯다 <김유정, 소낙비(1935년)> 두 눈구녁만 남기고는 탈박아지처럼 분을 하얗게 뒤집어 쓴 새댁네도 섞였다. <상록수(1935년)>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출처 :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 2004년 1월호>
샌님
`매우 얌전하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샌님은 원래 `생원(生員)님`이 줄어서 된 말이다. 생원은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을 볼 때 소과 종장(終場)의 경의(經義)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뒤에 흔히 나이 많은 선비를 대접하느라 그 성 밑에 붙여서 부르곤 했다. 따라서 생원이라고 하면 대개 공부도 많이 하고 행실도 점잖은 선비에 속했다. 이로부터 선비처럼 얌전한 사람을 일컬어 `생원님`, 즉 `샌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여자처럼 숫기가 없고 활발하지 못한 성격의 남자를 비아냥대는 말로 쓰인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서각
`뒷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성이나 황해도 지방에서는 뒷간을 `서각`이라고 한다. 옛날 이성계가 무력으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웠을 때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살던 사람들이 이성계를 증오하여 뒷간을 서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서각은 이성계의 왕좌가 있던 곳의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서낭당
서낭은 마을의 터를 지켜주는 신(神)인 서낭신이 붙어 있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낭신은 원래 성황(城隍)에서 온 말로서 한 나라의 도성을 지켜주는 신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토속신으로 변하여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같은 유래 때문에 아직도 마을 어귀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곳을 서낭당, 성황당, 성황단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서낭신을 마을과 토지를 지켜주는 신으로 믿고 섬겨왔는데, 마을 어귀 큰 고목나무나 바위에 새끼줄을 매어놓거나 울긋불긋한 천을 찢어 달아놓고 그 옆 작은 집에 서낭신을 모셔놓은 당집을 서낭당이라 했다. 때로는 당집 없이 큰 고목나무에 울긋불긋한 천이나 새끼가 매어 있는 것만도 서낭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서낭당 앞을 지날 때는 서낭신에게 행운을 빌며 돌을 하나씩 쌓아 놓기도 하고, 잡귀가 달라붙지 말라는 뜻에서 침을 뱉고 가기도 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서울
서울은 본래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서나벌(徐那伐) 등으로 부른 데에서 비롯한 말이다. 서울의 `서`는 수리·솔·솟의 음과 통하는 말로서 높다·신령스럽다는 뜻이며, `울`은 벌·부리가 변음된 것으로 벌판·큰 마을·큰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선비
심신 수련을 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을 가리키는 고조선시대의 호칭이다. 백제의 수사, 고구려의 선인, 신라의 화랑과 비슷하다. 따라서, `선비`는 학문과 인격을 닦은 사람이나, 학식은 있으나 관직에 나아 가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섣달
`음력 12월`을 가리킨다. 섣달이란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설이 음력 1월에 해당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한 해의 출발을 어떤 달로 삼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중에는 음력 동지달, 즉 11월을 첫달로 잡은 적도 있다.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런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12월 1일을 설로 쇤 적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 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설렁탕, 선농탕, 선농단
소의 머리·내장·족·무릎도가니…… 따위가 폭 고아진 국물에다 그 고깃조각들이 섞인 국밥이 설렁탕이다.요즘은 모든 간판이 한글로 되면서는 눈에 안 띄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雪濃湯"이라 쓴 간판하며 차림표가 걸려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雪濃湯"이라니 무슨 뜻인가 생각했다가 그 국물이 보얗게 짙어서 그럴싸한 한자 맞춤자였구나고 뒤늦게 깨닫기도 한 설렁탕이었다. 지난날에야 "雪濃湯"·"雪農湯"이었건 "선롱탕"·"설농탕"·"설롱탕"이었건, 지금의 표준말로는 "설렁탕"이다.
서울 용두동쪽 서울대학교 사범 대학 터에 선농단(先農壇)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지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後織氏)를 제사 지냈던 곳이었으니 농경민(農耕民)다운 습속을 이어받은 때문이었다고 할 일이다. 해마다 절기가 봄으로 접어들 때, 즉 경칩(驚蟄)이 지난 돼지날(亥日)을 가려 지낸 이 제사에서는, 적전지례(積田之禮:임금이 친히 밭을 가는 의례)을 행했으며, 비가 안 오면서 가물어대는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조선 왕조 성종(成宗) 6년(1475) 정월에, 임금께서 이곳에 납시었다. 종친 월산 대군(月山大君)에 재상 신숙주(申叔舟)도 끼었으며, 거기에 서민이 합세하여 밭을 갈았다. 그러고서 백성을 위로하여 국말이밥과 술을 내렸는데, 이때 선농단(先農壇)에서 먹게 된 국밥 을 "선농탕"(先農湯)이라 이름지어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된 "설렁탕"이라는 말로 된다는 것이 "설렁탕"에 대한 일반적인 어원론으로 되고 있다.
"곤난"(困難)이 "곤란→골란"으로 발음됨은, 이른바 닿소리의 이어바꿈(子音接變) 현상이다. 우리말은, "ㄴ"과 "ㄴ"이 이어질 때 "ㄹ+ㄹ"로 발음되는 것이어서, "한남동"이 "할람동", "논난(論難)"이 "놀란"으로 된다. 그런 발음 현상 따라 "선농탕"을 "설롱탕"이라 말하는 동안, 그 한자인 "先"자를 "雪"자로 갈아 끼워 봤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때, "雪"과 "濃"의 두 한자에서 말의 뜻을 찾으려함은 애당초 잘못이었다고 하겠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와서의 말이지만, 오늘날의 "설렁탕"과 "先農壇"과는 아예 관련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굳이 말밑을 캐다 보니, 그쪽으로 기울어 해석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先農壇"의 "先農"과, 여항에서 말하는 "설롱탕" 혹은 "설렁탕"의 "설렁"이 비슷한 음이어서 갖다붙여 본 것일 수도 있지 않겠냐 함인데, 어쨌거나 "설렁탕"의 유래를 "先農壇"에 갖다댄 것은, 농경민이었던 우리네 조상의 냄새를 그대로 풍겨 준다는 뜻에서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학자 가운데는 몽골말 sil (n)-실루(실룬)에서 차용한 말이라는 설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고깃국물을 뜻하는 만주어(滿洲語)인 sile(실레)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설사 뿌리가 거기였다 해도 너무 멀리만 느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설빔
설과 비음이란 말이 합쳐진 것이다. 비음은 명절이나 잔치 때에 새 옷으로 치장하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이 `설비음`이 줄어서 설빔이 되었다.설빔은 곧 `설날에 새 옷을 차려입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 뜻이 차츰 변화되어 `명절에 입는 새 옷`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성가시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 중에 `성가시다`는 말이 있지요. `귀찮다, 괴롭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파리하다, 초췌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성가시다`(현대 철자법으로 고쳤습니다) 등으로 사용되었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겠지요. 출처 : 우리말 어원
성냥, 셕뉴황
불을 켜는데 썼던 `성냥`은 마치 고유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한자어였습니다. 즉 `셕뉴황`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성냥`이 된 것입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소나기, 소낙
"소나기는 오려 하고 똥은 마렵고 괴타리는 옹치고 꼴 짐은 넘어지고 소는 뛰어나갔다"는 속담은, 일이 너무도 바쁘고 많아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름을 이른다. 소나기가 오려 한다는 이 속담에서도 "소는 뛰어나갔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소"와 "소나기"와는 관련을 짓게 되어 있긴 한 모양이다.
소나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지금부터 2백여 년 전, 경기도 안성(安城) 장에서 30리쯤 떨어진 어느 마을에 고집세기로 이름난 두 노인이 있었다. 어느 해의 7월, 안성장으로 소를 팔려고 한 마리씩 끌고 10리쯤 갔을 때 날이 흐려졌다. 한 노인은 비가 올 테니 집으로 가자 하고, 다른 노인은 그렇지 않 을 테니 그냥 장으로 가자 하면서 티격태격 하다가 각자의 소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그 때 비가 쏟아졌다. 한 노인이, 다른 노인의 소 고삐를 잡으면서 "자, 이 소는 인제 내꺼네"했을 때, 비는 개었고, 그래서 다시 고삐를 놓으면 비가 또 오고 ……. 소나기 삼형제 라 했으니 적어도 세 번은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이것이 나중에는 군수에게 소장(訴狀)을 내는 데까지 이르게 되어, 그 때 사람들은 비가 오다 말다 하면 누가 또 "소 내기"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곁말을 썼던 데서부터 "소나기"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뭇 그럴싸해 뵈지만, 괜히 말꼬리를 잡아 갖다붙인 것일 뿐, 그것이 소나기라는 말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함경도(咸鏡道)쪽 사투리로 천둥을 "소낙"이라 하는 데에 유념해 보는 것이 좋겠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한바탕 요란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소낙이→소나기"거나 "소낙비"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가당한 이야기로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성질이 소낙 같다" 하는 말은 성질이 급하다는 뜻인 채 천둥과 같이 요란한 것도 아울러 시사해 준다.
그렇다면 "소낙"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손"의 "악"이었다고 생각해 봄직도 하다. "손"은 날짜 따라서 네 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면서도 손 없는 날을 택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은 고약한 귀신이 손이다. "악"은 모질게 내뿜는 기운이나 성이 났을 때 악을 쓴다는 그 "악"이다. 그러므로 천둥은 "손+악→손악→소낙"일 수 있다.
소내기를 해서의 소나기란다면, 예컨대 "손"(手·客)과 "아기"(兒)를 관련지어서도 이야기를 꾸며낼 수는 얼마든지 있다. 좀더 있으라고 이슬비가 내린다는 것이나, 이젠 가라고 가랑비가 내린다는 말이, 생각하는 쪽에 편리하게 만들어진 소지를 지니고 있음도 그러한 종류라 할 것이다. 이런 따위, 이른바 민간 어원론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얼핏 들었을 때는 그럴듯하지만, 역시 한 자리 웃음거리일 뿐이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소매치기
`혼잡한 곳에서 남의 물건을 슬쩍 훔치는 사람`이다.
옛날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두루마기 따위 웃옷의 좌우에 있는 옷소매는 품이 크고 넓어서 흔히 그 안에 돈이나 다른 귀중한 물건들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 옷소매 안에 있는 돈이나 물건을 훔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소주생성시기: 고려 후기
유래: 알코올류인 소주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후기로서 원나라에서 처음 수입되었다.
알코올의 증류법은 원래 아랍의 명의인 아비케나가 발명했는데 원나라에서는 이 증류법을 이용하여 소주를 만들었다.소주라는 말은 고려 공민왕 때의 <<최영 장군전>>에 그 이름이 처음 보인다. 조선에 들어서는 1393년 12월에 태조의 맏아들 방우가 소주를 매일 마셔 병들어 죽었다고 적혀 있다.
잘못 쓴 예: 친아들에게 배반당하고 왕건에게 빌붙어 사는 신세가 된 견훤은 매일매일 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그 화를 삭이곤 했다. 출처 : 우리말의 나이를 아십니까
손 없는
날`손을 타지 않는 길일(吉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사를 하거나 무슨 큰 행사가 있을 때, 어른들이 `손 없는 날`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손`은 날수(日數)에 따라 4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손은 음력으로 1이나 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있고, 3이나 4가 들어 가는 날은 서쪽에 있다. 그리고 5나 6이 들어가는 날은 남쪽에 있고, 7이나 8이 들어가는 날은 북쪽에 있다. 9와 10이 들어가는 날은 하늘로 올라가 있으므로 귀신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아무 손도 타지 않는다는 9일과 10일이 길일이 되는 것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송곳
송곳의 옛말은 `솔옷`이다. 이 말이 후에 `송곶`으로 변했는데, 이는 소나무 `송(松)`에 뾰족하게 나온 것을 가리키는 `곶`이란 말이 합쳐진 것이다. 이처럼 `송곶`이란 말은 본래 소나무로 만든 뽀족한 것을 의미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송곶`이 `송곳`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송곳`이란 말에서 소나무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날의 송곳은 쇠로 만든 뾰족한 것으로서 무엇인가를 뚫을 수 있는 도구를 가리킨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수-
흔히들 사주 명리학은 통계학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다. 명리학은 한 사람의 운명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거쳐가게 될 시공간(time-space)을 음양 오행이라는 일종의 부호(code)로 나타낸 다음 그것을 해석하고 추리하는 나름의 강력하고도 엄밀한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통계학이 아니다.
명리학자들은 명리학을 술수학(術數學), 줄여서 술학(術學)이라고 부른다. 술수란 수를 다루는 기술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의 수(數)라는 말은 사실 영어의 수(number)와는 그 뜻이 다르다. 사실 영어 어휘를 우리말로 바꾼 말중에는 원뜻이 같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일반적인데 그것은 가장 근접한 우리말을 그 대용어로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한자어 수(數)는 우리말 속에 너무도 깊게 자리잡고 있다. 예로 ‘할 수 있다’ ‘그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 등등의 문장 속에 자리잡고 있는 ‘수’가 사실은 한자어(數)다. 우리말 속에 너무도 많이 들어가는 탓에 아예 그것이 한자어임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산다.
여기서 사용되는 ‘수’란 어휘는 가능성(probability) 내지는 경우(case)를 의미한다. 즉 ‘할 수 있다’는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고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이로써 이미 우리는 한자어 수(數)가 영어의 수(number)와는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수(가능성)을 다루는 기술인 명리학은 통계(number)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출처 : PRESSian
수라
임금의 진지를 가리키는 `수라`는 몽골어 `술런`에서 온 것으로 본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때, 태자들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水刺`로 적는데, 이는 단지 `수라`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일 뿐 별다른 뜻이 있는 말은 아니다.
임금에게 올리는 밥을 궁중에서 일컫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수릿날
`단오 명절`을 달리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음력 5월 5일, 즉 단오를 나타내는 우리말인 수릿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쑥으로 수레 모양의 떡을 해서 먹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 날은 전통적으로 수리치로 떡을 해 먹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며, 이 말 자체가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농경생활을 해 오는 동안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쬐이는 낭릉 명절로 삼게 된 것이다. 수릿날 정오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던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리치로 떡을 해 먹지만 옛날에는 쑥으로 떡을 해 먹었다. 옛날에는 구설초 또는 술의초라 하여 수리치와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이름으로 사용했다. 단오니 단양이니 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붙인 이름이니 지금이라도 수릿날이라는 우리 이름을 되살려서 써 봄직하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수저
생성 시기: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서기전 1000년경)의 유적에서 출토. 젓가락은 공주 무녕왕릉(500년대)에서 출토.
유래: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한 벌을 이룬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 초도패총에서 출토된 골제품이다. 젓가락은 우리 나라에서는 공주 무녕왕릉에서 출토되었고,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서기전 403년~서기전 221년)에 비로소 기록이 나오므로 숟가락에 비하여 늦게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나라에서 수저를 병용한 것은 삼국시대였으며 중국, 일본에서도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저를 병용하였다. 그러다가 중국, 일본에서는 점차 숟가락의 이용이 줄어들고 젓가락이 주를 이루게 되었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하는 관습은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관습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면서 식사하는 관습이 전통을 이루게 된 것은 우리 일상식의 내용이 국물 음식과 국물이 없는 음식이 항상 같이 나오게끔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우리말의 나이를 아십니까
숙제
"숙제"는 원래 옛날 서당에서 시회를 열기 며칠 전에 내준 시나 글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당이 없어지고 대신 학교가 생겼으니,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을 숙제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생각해 볼 문제 거리"를 숙제라고도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숙주나물, 곤쟁이젓
곤쟁이젓이라는 것이 잇다. 곤쟁이는 등딱지류(甲殼類)의 잎새우목(裂脚類)에 속하는 새우의 일종이다. 서해안 쪽에서 잡히는 이 새우로 젓 담근 것을 두고, 그쪽 사람들은 "자회젓"이라고도 한다. 이걸 일러 "곤쟁이젓"이라 함은, 조선 왕조 중종 때 남곤(南袞)의 "곤"과 또 한사람 심정(沈貞)의 "정"을 합친 "곤정"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이 있어 왔다.
남곤이나 심정은, 다 함께 저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꾀하다가 좌절된 조광조(趙光祖) 일파를 숙청하는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켰던 사람들로 알려진다. 그렇다 할 때 이 기묘사화로 해서, 온통 집안이 쑥밭이 된 자손들말고도, 조광조 일파에게 기대를 걸었던 여항(閭巷)의 불만이, 그러한 곳으로 쏠림으로써 빗대어 욕하자는 게 아니었던가 생각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젓 담아 버릴 사람"이라는 적개심이, 한낱 서해안에서 나는 자그만 새우젓에 비겨지면서 후세인의 마음에 반영되었던 것이라고나 할 일이다.
이 "곤쟁이젓"과 같은 종류의 말로는 "숙주나물"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전라·경상 등의 남쪽에서는 그저 "녹두나물"이라고만 이르는 것을, 경기·충청 같은 중부 지방으로 오면서 "숙주나물"이라고 하는 것인데, 물론 녹두에다 물을 주어서 싹이 나게 한 다음 삶아 먹는다는 점에서는 콩나물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숙주나물의 "숙주"를 신숙주(申叔舟)의 "숙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앞의 "곤쟁이젓"의 경우와 같이 "숙주나물"로써 신숙주 그 사람을 욕뵈려 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신숙주는,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같이, 세종(世宗) 때의 집현전 학사였으며, 다 함께 고명(顧命)을 받은 몸이었으면서도, 몸을 빼쳐 수양 대군(首陽大君)편에 듦으로써 세조(世祖)의 공신이 된 사람이었다.고령군(高靈君)은 후일, 남이(南怡) 장군을 죽이는 일에도 관계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비록 정난 공신(靖難功臣)으로서의 부귀와 영화가 따른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세상 사람들의 미워하는 마음이 작용하면서 제삿상에도 오르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갖다붙여 놓고선 곤쟁이젓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질근질근 씹으면서 말 못하는 어떤 맺힌 마음을 풀어 봤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또한 "곤쟁이젓"의 경우와 같이 옛날부터 불러 내려온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에다 후세인들이 "신숙주"의 "숙주"를 갖다붙였다 함이 더 옳을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곤쟁이젓"보다는 조금 더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왜냐하면, 신숙주 그 사람이 바로 녹두나물, 즉 숙주나물의 수입자(輸入者)였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숙주나물은 수입했다는 말부터가 미덥지 못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수입을 했기 때문에 숙주나물이라 한다면, "곤쟁이젓"의 경우와는 달리 적개심 같은 것과는 관계가 없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유독 중부 지방에서 쓰인다고 할 때에, 수입자건 그렇지 않건 간에 신숙주의 이름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라는 말만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숟가락, 젓가락
숫자, 샛강, 젓가락 등은 모두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이지만, `숟가락`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바뀐 것입니다.그래서, 숫가락으로 쓰지 않습니다.
한글맞춤법 제 29항
: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
보기>
반짇고리(바느질~) 사흗날(사흘~) 삼짇날(삼질~) 섣달(설~) 숟가락(술~) 이튿날(이틀~) 잗주름(잘~) 푿소(풀~) 섣부르다(설~) 잗다듬다(잘~) 잗다랗다(잘~)
`숟가락`의 어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숟은 `쇠(鐵)`의 옛말인 솓이 술로 모음이 바뀐 뒤에 `가락`과 붙으면서 숟이 된 것입니다.(한글맞춤법 29항 참고) 가락은 `손(手)`을 뜻하는 말입니다.그러므로 숟가락은 `쇠로 된 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의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서기전 1000년쯤)의 유적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당시의 숟가락은 뼈로 만든 것이었습니다.반면 젓가락은 우리 나라에서는 공주 무녕왕릉에서 출토되었고,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서기전 403년~221년)에 비로소 기록이 나오므로 숟가락에 비해 늦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수저를 함께 쓰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였으며 중국, 일본에서도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함께 써왔습니다.그러다가 중국, 일본에서는 점차 숟가락의 쓰임이 줄어들고 젓가락이 중심이 되었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는 관습은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식생활(국 문화)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하지만, 숟가락과 달리 젓가락은 `저+ㅅ+가락`의 구조이고 이때 `ㅅ`은 사이시옷입니다.
우리말은 한 글자의 한자말을 피하는 경우가 있어서 `저`에 `가락`을 붙여서 `숟가락`과 같은 짜임새-뒤에 `가락`을 붙여서 늘 함께 쓰이는 식기를 하나로 묶음-로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숟가락 문화가 발달해서 숟가락을 중심으로 젓가락이 파생된 것 같습니다.
출처 : 우리말배움터
술, 수불
술의 어원은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으나, 술이 빚어지는 과정을 바탕으로 그 어원을 찾고 있다. 즉, 술은 찹쌀을 쪄서 차게 식힌 뒤 누룩과 물을섞어 발효시키는데, 이 때는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거품이 괴어오르는 화학적인 발효현상은, 옛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현상을 보고 "난데없이 물에서 불이 붙는다."는 생각에서 "수-불" 하였을 것이고, 결국 "수불"이 수블> 수울> 수을> 술로 변하게 되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물론, 보다 정확히는 "물-불"하였을 것이겠으나, 물은 한자로 수(水)에 해당하므로 "수불"로 바꾸어 표기했을 것이란 추측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고 보는 근거는, 고려 말엽의 기록을 비롯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술을 "수(su∂-pu∂t)"로 기록되어 있고, <조선관역어(朝鮮官譯語)에는 "수본(su-pun)"으로 적고 있으며, 기타 여러 문헌에는 "수울" 혹은 "수을"로 기록하고 있어, 이를 종합하면, 결국 "수불"이 수블> 수울> 수을> 술로 변하게 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출처 : 한국의 전통 민속주
술래
`술래잡기 놀이에서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차례를 당한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밤에 궁중과 서울 둘레를 순시하던 군인을 순라(巡邏), 또는 순라군이라고 했다. 순라가 변해 술래가 되었으며, 찾으러 다닌다는 행위의 유사성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숨바꼭질, 술래잡기, 순라
"숨바꼭질"은 표준말이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숨바꿈질"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소꿉놀이"를 "바꿈살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숨바꼭질"을 "숨는 놀이하는 바꿈살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그러나 "숨바꼭질"은. "순바꿈질"에서 바뀌어간 말이라 봄이 옳을 것 같다. 즉 순(巡)을 바꾸어 나가는 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놀이는 달리 또 "술래잡기"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술래"라는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역을 맡은 아이가 있는 것에서 살펴 "술래"와도 관계가 지어진다.
순(巡)을 바꾸어 나간다는 "순"과 "술래"와도 관계가 있다. 술래는 "순라"(巡邏)에서 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순라"가 글자로는 "순라"지만, 말하고 읽기로는 "술라"로 되는 것이고 그 "순라"가 다시 "술래"로 되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지난날의 순라꾼과 관계되게 되는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이다. "순라잡기"가 "술라잡기→술래잡기"로 되어 간 것이다("질"이라는 뒷가지는 이름씨 아래 붙어서 "노릇"이나 "짓"이라는 뜻을 가지고 쓰이고 "손질"·"발질"·"서방질" 같은 그 "질"이다).
봄·여름에는 오후 여덟 시, 가을·겨울에는 오후 일곱 시에 종로의 보신각(普信閣)에서 종을 치게 되고, 그를 신호 삼아 사대문(四大門)을 닫으면서 통행 금지가 시작되던 조선 왕조 사회였다. 이는 오전 0시 직후에 다시 종을 쳐서 통금을 해제했던 것인데, 밤 종소리가 나면서부터 치안을 맡은 좌우포청(左右捕廳)의 엄중한 경계는 시작되었다. 포교(捕校)와 나졸(邏卒)들이 장안을 샅샅이 순회했는데, 이 순회를 "순라"라 하고 이 순라하는 사람들을 "순라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은, 이러한 순라꾼이 도둑 잡는 일에 빗대어진 것으로서 "순라"가 "술라 →술래"로 된 내력을 알 만해진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스승, 화냥년
`스승`의 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격`이란 한자어가 있지요. `무`는 `여자무당`을, `격`은 `남자무당`을 말합니다. 그런데 옛 문헌을 보면 `무`를 `스승 무` `격`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무당`을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디안 영화나 아프리카 영화를 보면 추장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결국 `스승`은 임금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선생님을 한자어로는 `사부`라고 하는데, `사`자도 `스승 사`, `부` 자도 `스승 부`입니다. 결코 `선생 사, 선생 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무당`이 `임금의 선생님`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일반화되어 `스승`이 되었습니다. `남자무당`인 `화랑이 격`은 오늘날 `화냥년`이라는 못된 욕을 할 때 사용하는 말로 변화했습니다. 이 `화랑이 격`의 `화랑`은 신라시대의 `화랑`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무당`도 고대사회에서는 중요한 귀족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도 `화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무당은 여자무당에 비해 그 위세가 약합니다. 오늘날의 무당의 세계도 일처다부제가 보이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처용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요. 그래서 남자무당은 이 여자무당, 저 여자무당을 찾아다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을 `화냥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에게 쓰이던 것이 여자에게 사용된 것이지요. 간혹 `화냥`을 `환향`, 즉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인들이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는 분도 있으나, 그것은 민간인들이 만들어낸 어원입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시냇물
`시냇물`의 의미를 모르시는 분은 없지만, 그 어원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본래 `시냇물`은 `실`+ `내` + `물`이 합쳐져서 생긴 말입니다. `실`은 `곡(골 곡)`의 뜻입니다. 아직도 고유지명에 `실`이 쓰이고 있습니다. `밤실` 등 무척 많습니다. 결국 골짜기란 뜻입니다. 결국 `시냇물`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이란 뜻입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시앗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속담이 있다.
(1) 시앗 싸움에 요강 장수: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말.
(2)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 부처같이 어진 부인도 시앗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시기하고 증오한다는 말.
(3) 시앗이 시앗 꼴을 못 본다. : 시앗이 제 시앗을 더 못 본다는 말.
(4) 시앗 죽은 눈물만큼: 몹시 적다는 말.
이들 속담 속의 핵심 단어는 ‘시앗’이다. `시앗`은 `첩(妾)`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어서, 앞의 속담 속의 ‘시앗’을 ‘첩’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시앗’이라는 고유어는 한자어 ‘첩’에 밀려서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시앗’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말 친족 어휘에 빈번히 결합되어 나타나는 ‘시’의 어원을 풀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시앗`은 16세기의 "순천김씨묘출토간찰"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서는 ‘시앗’이 아니라 ‘싀앗’으로 나온다. `싀앗`의 `싀`는 `싀집>시집`, `싀아비>시아비`, `싀어미>시어미’ 등에 보이는 선행 요소 ‘싀’와 성격이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앗`의 경우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다. `처(妻)`을 뜻하는 `갓`이라는 단어가 `싀`의 `ㅣ`에 영향을 받아 변형된 어형이기 때문이다(그것에 대해서는 후술됨).
이렇게 보면, 지금의 `시앗`은 16세기의 `싀앗`으로, 16세기의 `싀앗`은 그 이전의 `*싀갓`으로 소급한다고 볼 수 있다. `*싀갓`에서 `싀앗`으로, 또 `싀앗`에서 `시앗`으로 변하는 과정은 음운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고개`가 `배오개`가 되듯이 선행하는 `ㅣ` 모음 뒤에서 `ㄱ`이 `ㅇ`으로 교체되거나, `믭다`가 `밉다`로 변하듯이 `ㅢ`가 `ㅣ`로 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음운 현상이었다. `시앗`이 `*싀갓`으로 소급되고 `갓`이 `처`를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싀`의 정체만 밝혀지면 `시앗`의 어원은 쉽게 드러난다.
`싀갓`이 `본처(本妻)`와 대립되고 `갓`이 `처`와 일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싀`는 `본(本)`과 대립함을 알 수 있다. `본`과 대립하는 의미는 `부차적, 간접적, 소원한` 등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싀`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관계가 소원한` 정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르면 `*싀갓`은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처`가 된다. `본처`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첩`은 `본처`보다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또 부차적인 처이기에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싀`를 의 변화형으로 보고 `신(新)`으로 해석한 다음 `*싀갓`을 `새로운 처`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싀`가 로 소급한다는 근거도 없고 또 아주 이른 시기에는 가 `싀`로 변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는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또 `싀`에서 변한 `시`에 `바깥[外]`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시`를 한자 `시(媤)`로 보기도 하나 이 또한 수긍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싀갓`의 `싀`가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싀아비`, `싀어미` 등의 `싀`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들은 친정쪽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다. 친정 부모와 비교하였을 때, `시아버지나`나 `시어머니`는 바로 그러한 존재이기에 `싀아비`, `싀어미`의 `싀`를 `[新]`로 보거나 이것이 변한 `시`를 `外`의 의미나 한자 `媤`로 보는 시각은 마땅히 교정되어야 한다.출처 : 조항범(趙恒範)/충북대학교
시집 가다`여자가 혼인을 하다` 시집은 시댁(媤宅), 즉 결혼한 남자의 집을 말한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산다고 하여 여자가 혼인하는 것을 `시집 간다`고 표현하게 되었다.
시집은 여자가 새로운 어른들을 섬기며 사는 새로운 가문을 뜻하는 `새로운 집`을 의미하며, `새집(아래 아)→싀집→시집`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시집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여인이 늘 마음을 써 섬겨야 한다는 뜻을 살려 `시(媤)`자를 만들어서 시댁(媤宅)이라고 쓰게 되었다. `媤`자는 원래 중국에서부터 있었던 한자가 아니고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 낸 국산 한자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시치미를 떼다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하다.`의 뜻이다.
백제시대부터 시작된 매 사냥이 고려조 충렬왕 때인 1275년에는 궁중 안에 응방(鷹坊)이란 기구를 두고, 그 후 응방도감이라는 높은 벼슬아치를 둘 정도로 적극 장려함으로써 매우 성행했다.
당시에 웬만한 벼슬아치나 한량이라면 거개가 매 사냥을 즐겼다. 그러다 사냥을 시키기 위해 길들인 매를 다른 사람들이 탐을 내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매가 마치 요즈음의 사냥개 이상으로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이에 따라 매를 도둑맞거나 서로 뒤바뀌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한 특별한 표지가 필요했다. 이런 표지로 매의 꼬리 위의 털 속에다 소뿔로 얇게 만든 명패를 매달았는데, 이것을 `시치미`라고 한다. 따라서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사실로부터 지금과 같은 뜻이 생겨났다.그리고 "정말 그렇게 딱 잡아 뗄 거야?"라고 할 때의 `잡아 떼다`라는 말도 원래는 `시치미를 잡아 떼다`는 말에서 `시치미`가 생략된 형태의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신, 신발
신발은 원래 짚신과 감발에서 나온 말이다. 감발은 발감개 또는 발감개를 한 차림새를 뜻하고 발감개는 버선이나 양말 대신 발에 감는 좁고 긴 무명 헝겊을 말한다. 짚신을 신고 감발을 하는 것을 `신발한다`고 한다. 심부름을 해 준 대가로 주는 돈을 신발차라고 하는데, 심부름을 하려면 신발이 닳기 때문에 신발값으로 주는 돈이라는 뜻이다. 짚신은 볏짚으로 삼은 신인데, 총의 숫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총은 짚신의 앞쪽에 둘러 박은 울타리의 낱낱을 말한다. 꽃신이 총의 숫자가 가장 많아서 한쪽에 칠팔십 개 되고, 다음으로 늘총박이가 육십 개 정도, 어벅다리는 총이 아주 성긴 짚신으로 열 개 안팎의 총을 박아 짠다. 육바라기는 총이 여섯인 짚신으로 중들이 신었다고 한다. 모숨(한 줌 안에 들어올 만한 분량의 길고 가느다란 물건)을 굵게 하여 함부로 삼은 짚신은 털메기, 반대로 곱게 삼은 짚신은 따배기라고 한다. 세코짚신은 발이 편하도록 앞쪽의 총을 약간 터서 구멍을 낸 짚신이다. 짚신은 대개 세로 네 가닥의 날로 짜기 때문에 네날박이라고 하는데, 미투리는 여섯 날이라서 육날미투리로도 불린다. 미투리는 삼으로 삼은 신이다. 잘 삼은 튼튼한 미투리를 탑골치라고 하는데, 예전에 동대문 밖 탑골에서 나는 미투리가 다른 동네 것에 비해서 아주 뛰어났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노를 꼬아 만든 신은 노파리라고 한다. 신에는 진땅에서 신는 진신과 마른땅에서 신는 마른신이 있는데. 물이 새지 못하게 기름을 발라 결은 가죽신인 결은신이 진신의 대표적인 경우다. 결은신은 `겯다`에서 나온 말로 어떤 물건을 기름에 담그거나 발라 기름이 흠뻑 배게 하는 것을 `겯는다`고 하는 것이다. 죽신은 대량으로 만들어 여러 죽씩 내다 파는 가죽신, 요즘의 기성화와 같은 것이고, 짤짜리는 발끝만 꿰어 신는 실내용의 간단한 신, 즉 슬리퍼를 말한다. 쭉신은 해지고 쭈그러진 헌 신을 가리킨다.
신이 벗겨지지 않게 끈으로 발에다 매는 일을 들메라고 하고 동사로는 `들멘다`고 하는데, 신을 들메는 끈은 신들메 또는 들메끈이라고 한다. 그릇이나 신의 둘레의 높이는 운두라고 하는데, 우너리는 가죽신의 운두를 가리킨다. 신벼나는 신의 울과 바닥창을 잇대어 꿰맨 곳이다. 닳아서 해진 구두창을 달창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물건을 오래 써서 해지거나 구멍이 뚫렸을 때 `달창이 났다`고 한다. 감추거나 숨겨 오던 것이 드러나거나 폭로됐을 때도 `달창이 났다`고 한다. 얼음 위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나막신 굽에 박는 징은 재리, 산에 오를 때나 눈길, 또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굵은 철사나 못 같은 것으로 만들어 신바닥에 대는 물건은 사갈이라고 한다.출처 : 토박이말 일곱마당
신구간
신구간이란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의 줄임말이다. 제주를 관장하는 1만 8천여 신(神)이 옥황상제에게 새 임물를 부여 받기 위해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 머문 기간을 일컫는 말인데, 대한 5일 뒤부터 입춘 3일전까지를 이르며 올해의 경우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다. 제주 지역에서는 이 기간중 집을 옮기면 재앙이 접근하지 않고 잡신이 따라 붙지 않는다는 속설에 따라 이 기간 중 이사를 많이 한다.출처 : 중앙일보 01/01/12
신기료 장수
`신을 깁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개 떠돌이 장사치나 기술자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직업을 알리기 위해 특이한 발음이나 억양을 사용하여 소리를 외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소리만 듣고는 언뜻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신기료 장수도 신을 기우겠냐는 뜻으로, "신 기리오?"하고 외치고 다니던 데서 온 말이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신물나다
과식을 했거나 먹은 음식이 체했을 때 넘어오는 시큼한 물을 신물이라 한다. 한 번 체한 음식은 잘 먹게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쳐다보기조차 싫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신물이란 말의 의미가 확장되어 쳐다보기도 싫은 지긋지긋한 일을 가리키게 되었다. 지금은 마음에 없는 일을 오래 계속하여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뜻으로 흔히 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실랑이
실랑이는 "신래위"에서 나온 말입니다. "신래"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신래위를 하는 모습이 남을 못살게 굴거나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뜻이 되었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실마리
실마리는 실의 첫머리를 말합니다. 뒤죽박죽 엉클어진 실뭉치를 풀 때 실의 첫머리만 찾으면 그 뒤부터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지요. 그래서 어떤 일이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뜻하게 되었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심금(心琴)을 울리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심금(心琴)이란 마음의 거문고를 말한다. `심금`이란 말이 나오게 된 유래는 부처님이 설하신 `거문고의 비유`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스로오나`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자 했다. 그러나 고행을 통한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스로오나`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를 본 부처님이 그에게 `거문고의 비유`를 설했다. "스로오나야, 거문고를 쳐본 일이 있느냐?" "예." "거문고의 줄이 팽팽해야 소리가 곱더냐?" "아닙니다." "그렇다. 스로오나야, 거문고의 줄은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늘어지지도 않아야 고운 소리가 난다. 그렇듯 수행이 너무 강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하면 게을러진다. 수행은 알맞게 해야 몸과 마음이 어울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니라." 하셨다. 마음의 거문고인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말이 바로 이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 울리는 마음의 감동을 거문고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다른 사람의 감동적인 행적을 보거나 듣거나 읽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울림을 일컫는 말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심상(尋常)치 않다
심상(尋常)은 고대 중국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심(尋)은 8자 길이를 뜻하며, 상(常)은 16자를 뜻한다. 우후죽순처럼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들고 일어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심상(尋常)의 땅`을 가지고 다투었다고 한다. 평수로 따지면 한 평 남짓한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는 뜻으로 아주 작은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심상은 짧은 길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곧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 비견되기도 하였다. 심상이 짧은 길이를 나타내는 본래의 뜻보다는 보잘것없고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곧 `작은 일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라는 뜻을 담게 되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십년 감수
`몹시 놀라거나 위태로운 일을 겪었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성기가 들어 왔을 당시의 일이다. 고종 황제가 일본에 와 있던 빅터 회사의 기사인 코란을 초청하여 어전에서 원통식 녹음기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명창이던 박춘재가 뽑혀 나와, 나팔통에 입을 대고 원시적인 녹음을 했다. 나중에 원통식 납관에서 박춘재의 판소리가 다시 흘러 나오자 고종은 깜짝 놀라며 "춘재야, 네 수명이 십 년은 감했겠구나"라고 했다. 박춘재의 정기가 녹음기에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부터 십년감수라는 말이 생겼다.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십진발광을 하다
마구 법석을 떨거나 고함을 치면서 미친 것처럼 나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 쓰이는 십진은 본래 진을 치는 습진(習陣)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진을 친다는 것은 대장이 깃발을 들어 지휘하는 대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이므로 명령을 받는 쪽에서는 정신없이 분주히 나대야 하는 것이다. 발광은 말 그대로 광증이 일어나서 주위를 살피지 않고 미친 듯이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없이 나대는 모습과 자기를 못 이기고 미친 사람처럼 격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십진발광을 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말은 주로 중장년층에서 많이 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십팔번
"십팔번"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레퍼터리 중의 으뜸을 가리키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은 일본말인 "주하치반"(十八番)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면, 도도해진 기분이 깨질 만큼 야릇한 마음이 안들는지?
일본의 에도(江戶) 전기의 "가부키"(歌舞伎) 배우에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團十郞) 1세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원한 품은 한 자객(刺客)의 칼에 맞아 죽은, 하여간 그 당시의 대표적 배우였다. 이치카와 9세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집안에 전해져 오는 열여덟 가지의 내로라 하는 교겐(狂言 : 서민의 일상 생활에서 제재를 딴 얘기로서의 희극)을 일러 "주하치반"이라 했다(2세에서 대부분 완성).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藝)"를 이르게 된 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심어져,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국어대사전」)의 뜻으로 되었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싸다싸다
란 말은 "물건값이 싸다" 란 말에서는 저렴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그놈 맞아도 싸지." 에서는 지은 죄에 대해서 받은 벌이 마땅하거나 오히려 적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그런데 "물건값이 싸다"의 싸다는 옛날의 뜻과는 정반대로 쓰이는 경우입니다.
싸다란 말의 뜻은 오늘날엔 "저렴, 안가(安價)"의 뜻으로 쓰이나, 예전에는 그 값에 해당함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오늘날의 싸다와 같은 옛말로는 디다가 있었습니다. 비싸다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당시에는 싸다와 비싸다가 모두 고가(高價)의 뜻으로만 쓰였습니다.
고가(高價)의 비싸다는 비(非)싸다로 생각하기 쉬우나 [빋(값,가치,가격)+ 싸다]로 값이 고가(高價)라뜻을 나타내는 합성어였습니다.따라서, 예전에는 싸다 역시 비싸다와 함께 오늘날의 "비싸다"란 뜻으로 쓰이다가, "비싸다"가 고가를 나타내는 뜻으로 완전히 굳어지게 되자 싸다는 본디와는 정반대의 뜻으로 바뀌어 저렴함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우리말 배움터]
쌀 팔아오다
쌀을 돈 주고 사오는 것을 `쌀 팔아오다`고 하는데 이는 언어 도착(倒錯) 현상이다. 즉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뜻과는 정반대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는 `팔다`라는 말이 `팔다`의 뜻만이 아닌 `흥정하다`의 뜻으로도 쓰였다. 17세기에는 `쌀 팔아 들이다`란 말이 `쌀ㅇ르 팔아 돈을 가져오다`란 뜻이 아니라 `쌀을 흥정해서 집으로 가져오다`란 뜻으로 쓰였다. 이처럼 옛날에 `쌀을 팔아 들이다`로 쓰던 것이 관용적으로 굳어져서 마침내 `사다` 대신 `팔다`가 쓰이게 된 것이다. `쌀 팔아오다`는 `쌀 사온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주로 중장년층에서 쓰고 있는 말이다. 영호남 지방에서는 `쌀 팔아오다`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오늘날의 중부 지방에서는 `쌀 사온다`가 더 널리 쓰이고 있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쌍심(雙心)지 켜다
쌍심지는 한 등잔에 있는 두 개의 심지를 말한다.
심지가 두 개나 있는 등잔이니 불을 붙이면 보통 등잔보다 배는 밝고 뜨겁다. 이 말은 주로 `두 눈에 쌍심지를 켠다`는 식으로 널리 쓰는데 그것은 두 눈에서 불이 활활 타오를 만큼 몹시 화가 나 있거나, 누군가에게서 어떤 잘못을 찾아내려고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살펴볼 때 쓰는 말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썰매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놀곤 하던 생각이 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시골의 깊은 산촌에나 가야 어쩌다 발견하는 것이어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이 "썰매"를 구경도 못한 사람이 꽤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텔레비젼에서 국민학교 학생에게 "인두"를 보이며 이것이 무엇에 썼던 것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까, 한참 들여다 보다가 "화살촉"이 아니냐고 되묻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에게 "썰매"를 보이면, "나무깔판"이 아니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썰매"는 엉뚱하게도 한자어입니다. 즉 "설마"(雪馬)의 음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위에서 달리는 말"이란 뜻이지요. 어떻습니까? 그럴 듯하게 이름을 붙였지요?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슬기롭게 이름을 붙였었습니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쏘다
`쏘다`는 우리말 동사 중에서 비유적인 표현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다. `금과녘을 쏘다`(금메달을 따다)나 `신호탄을 쏘다`(징후를 보이다)등 주로 `화살이나 총탄을 날아가게 하다`에서 연유한 비유법에 즐겨 쓰인다. 요즘 `쏘다`라는 말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한 턱 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언제, 어떻게 `쏘다`가 이런 뜻을 얻게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서로 돈을 내려고 지갑을 서둘러 꺼내는 것을 지갑을 `뽑는다`고 표현했고, 이것이 마치 서로 빨리 총을 뽑으려는 서부극의 등장인물을 연상시켜서 그 내용물인 돈을 내는 것이 `쏘는` 것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1997년을 전후해서 대학가에서 쓰이기 시작한 이 단어는 인터넷 문화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됐다. 시작도 통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을 통한 즉석만남인 `번개`가 신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인터넷대화방에서 "오늘 내가 술 살테니 만나자"는 말은 "오늘 내가 쏠께"로 표현된다. 인터넷 대화방에서 만난 아이디 햇살공주라는 여고생은 "`내다`나`사다`보다 밋밋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7일 밤 10시께 접속해 본 한 인터넷 대화방의 130여개 방 중에서 만남을 제안하는 40여개의 방제목에 `쏘다`가 등장한다. `오늘은 내가 쏜다` `시원하게 쏠게` `신천역에서 쏜다` 등등. 천리안의 양이석씨는 "`쏜다`가 `번개`의 무계획적이고 전격적인 만남의 성격을 잘 살리는 말이라 많이 쓰이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세대들의 감칠 맛나는 언어감각을 광고에서 놓칠 리 없다. 국민카드 광고에서 김소연은 "오늘은 여왕이 쏠게"라고 외친다. 이 말은 이제 신세대들 사이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휴렛팩커드에 다니는 심진보(29)씨는 "요즘은 점심시간이 되면 `누가 밥 살래`라는 말 보다 `누가 쏠래`라는 말이 더 많이 들린다"고 전한다. 출처 : 한국일보
쐐기를 박다
나무를 V자형으로 깎아서 나무로 짠 물건의 틈새를 박아 연결 부분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나무못을 가리킨다. 쐐기는 보통 사물의 네 귀퉁이가 물러나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물건의 틈새에 박아 넣어 두 물건의 사이를 벌리는 데 쓰기도 한다. 나무틀이나 이음새에 쐐기를 박으면 움직이거나 빠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일을 확정할 때 분명히 한다는 뜻으로 쓴다. 또는 남이 일하고 있는 도중이나 얘기하고 있는 사이에 끼어들어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게 하거나 중단하게 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쑥밭이 되다
집이 있던 자리에 집은 없어지고 쑥만 무성하게 자라서 옛날의 자취를 찾아볼 길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쑥은 키가 크기 때문에 다른 잡초보다 더 무성하게 자란다. 한때의 영화나 번영은 사라지고 초라하고 볼품없게 되었다는 뜻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쓸개 빠진 놈
쓸개는 담이라고도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대담한 용기를 내는 장기라고 합니다. 따라서 "담이 크다"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쓸개가 빠졌다"는 것은 비겁하고 줏대가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씨가 먹히다
베를 짤 때 가로 줄을 씨줄, 세로 줄을 날줄이라고 한다. 이때 가로 줄을 이루는 씨실이 잘 먹어들어야 베가 잘 짜진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조리가 있고 실속이 있는 말을 했을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긍정적인 대화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대화에 많이 쓴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씨가 먹히지 않다베는 씨줄과 날줄로 서로 엇갈리면서 짜게 되는데, 세로 줄을 날이라 하고 가로 줄을 씨라 했다. 날실 사이를 씨실이 지나가면서 천이 짜지는 것인데, 이때 씨실이 한 올 한 올 잘 먹어들어야 천이 곱게 짜진다. 그러나 습기가 많이 차면 뻑뻑해져서 씨실이 잘 먹어들지 않아 천을 짜기가 힘들어지는데 그와 같은 상황을 씨가 먹히지 앟는다고 했다. 지금은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나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할 때 그를 핀잔하는 말로 쓰인다.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씨름
`씨름`은 옛말 `힐후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씨름`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씨름을 더 이상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씨름`을 더 이상 분석할 수 없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겠지요.
`씨름`을 `씰우- + -음`으로 분석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음`은 물론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입니다. 그렇다면 `씰우-`는 무엇일까요? 물론 동사어간입니다. 그러나 `씰우-`를 설명하려면 `씰우-`의 어원을 따져야 합니다.
우리 옛말 중에 `힐후다`라는 동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승강이질하다, 논쟁하다, 다투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 `힐후다`가 히읗 구개음화가 되어서 `실후다`가 되었고, 유성음 사이에서 `히읗`이 탈락하여 `실우다`가 되었습니다. 이 `실우다`의 명사형이 `실움`입니다. 이것이 다시 된소리로 되어 `씨룸`이 되고 이것이 다시 `씨름`이 된 것입니다. 대신 `힐후다`라는 동사가 `실우다`로 된 뒤에 이 동사는 쓰이지 않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 동사의 흔적으로 명사형인 `씨름`만 남게 되었습니다.
`씨름`을 몸싸움으로만 연상하지 마십시오. 이 `씨름`은 `입씨름`에도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는 `입씨름`을 `입힐훔`으로 쓰였습니다. 출처 : 홍윤표
씨알머리가 없다
씨알은 새의 종자알이나 곡식의 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씨알머리가 없다`는 말은 근본 태생을 모를 정도로 혈통이나 종자가 낮다는 뜻이다. 흔히 남을 욕할 때 그의 혈통을 빈정거리는 말로 쓴다. 혈통이 좋지 않고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났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것이 없어서 무례하고 건방지다는 뜻으로 쓴다.
출처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